[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윤여정, 정우성, 전도연 등 화려한 멀티캐스팅을 자랑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김용훈 감독의 첫 장편이다. 신인 감독 입장에서 쟁쟁한 배우를 한자리에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김 감독은 그 공을 전도연에게 돌린다. 얽히고설킨 관계의 중심에 있는 인물 ‘연희’는 여러 레어어를 지닌 카멜레온 같은 인물. 김 감독은 이 역할에 단 한 사람만이 떠올랐고, 예상외로 흔쾌하게 승낙을 얻었다. 이후 영화는 순항했다. 김 감독이 그린 큰 그림 안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이 각기 실력을 발휘한 덕분에 로테르담영화제 특별심사위원상 수상은 물론 평단과 관객 모두에 인정받았다.
첫 장편으로 제49회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특별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 “이미 존재하는 장르에 새긴 강력한 첫 영화. 시나리오, 퍼포먼스, 구조상의 유연성까지 부인할 수 없는 장인정신을 새긴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수상 소감은.
솔직히 우리 영화를 초청했다고 해서 의아했다. 영화제마다 고유의 색을 지녔는데 로테르담 영화제의 경우 실험적인 영화나 독립영화를 선호하는 거로 알고 있었거든. 사실 우리 영화가 아주 독립적이진 않지 않나. (웃음) 실제로 영화제 가서도 좀 튀어 보였고 영화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동떨어진 상업영화라 수상은 기대도 안 했는데 놀라면서도 기분 좋았다. 시작부터 후반 작업까지 과정이 길었기에 뭔가 보상받은 느낌이랄까. 물론 수상 여부가 제일 중요한 평가 요소는 아니지만 말이다. 또 영화제라서 그런지 환호성을 보내는 등 표현이 매우 적극적인 데다 먼저 다가와 환대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이 장편 데뷔작이다. <거룩한 계보>(2006) 연출부로 시작한 거로 아는데 이력 소개를 간단히 부탁한다.
대학 때 휴학하고 <거룩한 계보> 연출부로 참여했다. 졸업하고 CJ 엔터터인먼트 기획팀 인턴으로 일하다 이후 기획팀에 입사했다. 그 후 제작팀과 투자팀을 거쳐 7년 정도 근무하면서 중간에 단편 <삭제하시겠습니까?>(2015)를 찍었다. 35세가 되면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었고, 정말 그만뒀다. 아내에게 2년만 시간을 달라고, 그 안에 뭔가 못하면 다시 생각을 바꾸겠다고 부탁했지. 운 좋게 시나리오를 좋게 봐준 제작사(비에이 엔터테인먼트)가 있어서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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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선구안이 좋은 것 같다.
원작이 원체 흥미로웠고,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보니 영화적으로 바꿀 부분이 많았지만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더라. 제작사에 이야기하니 마침 제작사도 눈여겨 봤으나 푸는 방식에 고민했던 참이라 한번 해보자고 했다.
시나리오 개발에 든 기간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지금 같은 구조를 갖추는데 2달 정도 걸렸다. 여기에 캐릭터와 다른 요소를 추가한 것까지 치면 대략 3~4개월 정도다. 일단 원작이 좋았고 그 기본 위에 몇 가지 즉 엔딩과 기본 배치가 풀리면서 수월해졌다. 처음 뼈대 잡는 데 시간이 걸렸지 이후 개연성을 메우고 조언을 받아들여 다듬는 것은 오래 안 걸렸다.
전체적인 톤앤 매너는 어떻게 가져갔나.
우리 영화를 어떤 장르로 마케팅할지 고민하더라.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게 <지푸라기..>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질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서로 얽히다 보니 조명, 라이팅 등 캐릭터마다 각기 다른 색을 부여했다. 예를 들면 ‘연희’(전도연)는 화이트, ‘태영’(정우성)은 블루, ‘진태’(정가람)은 퍼플, ‘미란’(신현빈)은 주홍 등 고유색을 기본으로 인물들이 만날 때는 융화되도록 신경 썼다. 또 음악도 캐릭터에 따라 달리 갔다. 사우나에서 일하던 중 손님이 놓고 간 돈 가방을 발견하는 ‘중만’(배성우)의 경우 관악기 클라리넷, ‘태영’은 기타, ‘미란’은 현악기 그리고 접점 없는 인물들을 엮는 ‘연희’는 왈츠풍 음악과 함께 등장한다. 여러 요소가 섞여 융합되면서 묘한 느낌을 주려 했다.
톤이나 결에서 혹시 참고한 작품이나 감독이 있다면.
평소 코엔 형제의 서스펜스 구조 안에 유머를 놓치지 않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건네니 한 배우가 어떤 톤을 생각하는지 물어보길래 <파고>(1996)를 얘기했었다. 누군가는 <파고>를 진지한 영화로 보겠지만 개인적으로 그 안에 담긴 블랙 유머에 굉장히 웃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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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같은 시점에 섞어 놓은 시간의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의외의 반전을 선사하는 데 여기에는 형사를 연기한 윤제문 배우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배우님께 죄송하지만, 뭔가 범죄의 냄새를 풍기지 않나! (웃음) 영화의 강점과 약점을 자평한다면.
음… 시간과 구조를 뒤틀어 관객이 쉽게 예측하지 못하게 한 것이 강점이 아닌가 한다. 무언가 발견해 나가는 재미를 부여하는 거지. 비선형적인 전개에 퍼즐들이 맞춰지는 순간의 희열이 있지 않을까. 물론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약점이라 한다면, 불친절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거다. 한눈에 모든 것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사실 한 번 더 보고 싶게 하려는 전략적(?)인 의도이기도 했다. 간접적으로 단서를 제시해 놓친 것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말이다.
<지푸라기..>는 윤여정, 전도연, 정우성 등 화려한 멀티캐스팅을 자랑한다. 신인 감독 입장에서 현장 컨트롤하는 것도 만만찮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웃음)
평소 팬인 배우도 있고 대선배님도 있어 처음엔 긴장했지만, 막상 현장 촬영에 들어가 커뮤니케이션할 때는 오히려 편했다. 축구로 치면 모두 스타플레이어라 감독으로서 전체적인 그림만 보여주면 됐었다. 워낙 베테랑이고 전체를 볼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라 디테일한 디렉션이나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었다.
8인의 주요 등장인물 중 캐스팅에 있어 가장 고심한 캐릭터는 ‘연희’(전도연)였을 거다. 어떤가.
‘연희’를 통해 인물이 만나는 구조이고 또 그의 등장 전후로 극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느낌이라 다채로운 얼굴을 가져야 했다. 여자한테는 워너비, 남자에게는 치명적인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배우는 그분(전도연)밖에 생각 안 났다. 신인 감독 입장에서 해 주면 좋겠다고 희망하면서도 분량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선뜻 해줄까 싶었다. 그런데 전 선배가 먼저 해보고 싶은 책이라고 얘기해 주셨고 이후 캐스팅은 말 그대로 순항이었다. 가장 중요한 역이 결정된 데다 전 선배 참여 소식에 다른 배우도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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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원피스, 숏 팬츠, 롱 부츠, 붉은 립스틱 등 ‘연희’의 의상과 화장 등 외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카멜레온 같은 캐릭터라 신마다 의상 콘셉트를 바꾸려 했고 전 선배가 아이디어를 많이 내주셨다. ‘태영’과 있을 때는 조신하면서도 과감하게, ‘미란’을 만날 때는 강한 느낌으로 또 본색이 드러나면서는 화려한 패턴의 의상 등으로 말이다. 이건 ‘미란’도 마찬가지다. 처음의 단색에 무늬 없는 심플한 의상에서 나중에는 화려하게 변모한다. 워너비인 연희를 따라 점점 그녀 화 돼가는 모습이다. 또 전 선배의 팬으로서 예전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였던 코 찡긋하며 웃는 모습과 콧소리 등을 영화 속에서 다시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선배 역시 요 근래 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하다 모처럼 장르적 캐릭터를 맡아 재미있어 하셨다.
그래서 장르도 서사도 전혀 다르지만, 예전 전도연 배우의 모습이 떠올랐나 보다. 전도연 배우와 정우성 배우의 첫 만남인 점도 신선하다.
정우성 선배의 경우 사실 ‘태영’ 이미지와는 너무 멀어 보이는 분이었다. 그 자체로 멋진 분이라 벼랑 끝에 몰린 ‘태영’에 어울릴까 싶었는데 한편으로 그래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하며 보니 뭘 해도 멋있더라. 후줄근한 의상에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그렇다. 선배가 어떻게 태영 캐릭터를 표현할지 궁금했는데 첫 촬영부터 뭔가를 내려놓은 게 보였다. 전체적인 톤을 다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점에 놀랐다.
그(정우성)의 호구 같은 언행에서 오는 블랙코미디적인 면이 영화의 쉼표로 기능한 것 같다. 다른 배우는 어떤가.
‘진태’역의 정가람 배우는 사투리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그게 일반적인 연변 사투리가 아니라 서울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사투리를 억제하고 자제한 말투라 표현하기 어려운데 열심히 해줬다. ‘미란’역의 경우 오디션을 많이 봤었다. 신현빈 배우의 경우 전작 <어떤살인>(20150를 보니 충분히 끌어갈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대체로 원작의 서사를 따라가다 결말을 완전히 바꾼 까닭은.
원작의 엔딩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허무함이 짙게 느껴졌다. 우린 돈 가방이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돈 가방이 주어졌을 때 그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수미쌍관 식으로 오프닝과 엔딩에 돈 가방을 배치한 이유다. 또 영화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자 했다.
결국 돈 가방의 주인은 누굴까? (웃음)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돈 가방을 발견한 그가 과연 집으로 향할까, 아니면 경찰서에 신고할까. 혹은 혼자 떠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물음표로 남기고 싶었다.
너무 이른감 있지만 현재 준비 혹은 개발 중인 작품이 있는지.
<지푸라기..>는 이제 정말 내 손을 떠났고, 기본적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썼던 시나리오를 할지 아니면 새로 글을 쓸지는 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여유를 두고 생각하려 한다.
향후 염두에 둔 소재나 주제는.
서스펜스와 블랙코미디에 관심이 많고 지금 생각하는 아이디어도 그런 쪽이다.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 있고 이번 <지푸라기..> 원작에 꽂힌 것도 그 지점이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일반인이 연계된 욕망과 범죄가 더 서늘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질문!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음, 요즘은 <지푸라기..> 관련 호의적인 리뷰를 기분 좋게 보고 있다. 평소엔 좋은 영화나 소설을 보고, 그 속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할 때 행복하다.
2020년 2월 28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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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