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 공개 후 평이 좋다. 특히 당신의 연기에 찬사가 많다.
앞으로 더 연기 잘 할 건데? (웃음) 호평 기사를 보고 영화에 도움될지 솔직히 좀 고민했다. <백두산> 카메오 출연의 경우 내가 나올 것을 몰랐다가 나중에 보고 좋다고 평가해 주셨는데 이번엔 (나온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기에 좀 걱정된다.
흠, ‘칸의 여왕’이라는 무게감인가 보다.
그렇다고 해보자, 반박할 수 없다. 영화만 봐주면 좋겠는데 ‘전도연’이 플러스되면 뭔가 무게감을 느낀다고 할까. 좋은 작품이(겠)지만, 좀 다가가기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엄마로 분했던 <생일>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 ‘연희’로 돌아왔다.
간극이 크지? 이번엔 너무 센 데다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따라가고자 했다. 내가 뭔가를 더하면 오히려 부담스럽겠더라.
편하게 연기했다지만, 매우 강렬했다. 중반부 등장하면서부터 극의 텐션이 확 높아진다.
‘연희’가 원체 그렇다. 누가 했어도 파격적인 캐릭터다. 퍼즐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 그녀가 등장한 후 퍼즐이 맞춰지면서 몰입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캐릭터의 전사를 한 번 정도 보여줄 법한 데 없더라. ‘연희’는 어떤 인물인가. 잔혹하지만 한편으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극 중 ‘미란’(신현빈)에게 남편 등 과거 이야기를 하는데 과연 남편일까 혹시 아빠는 아닐까.(웃음) 전사가 필요 없는 게 지금 보이는 그대로인 여자라 오히려 캐릭터에 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흔히 시작이 미우면 끝까지 미워야 한다는 악녀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연희’는 여러 얼굴을 지닌, 마냥 미워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로 이런 면이 시나리오 속에 잘 드러나 있었다.
‘연희’의 양면성이 ‘미란’(신현빈)과의 관계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언니처럼 믿음직하다 갑자기 돌변하며 예상치 않은 잔혹성을 보인다. 한참 후배와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
감정 연기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미란’은 상당히 어려운 캐릭터인 데다 내가 한참 선배니, 후배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 그 친구가 집중할 수 있게 최대한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 했다. 게다가 나는 촬영 중반쯤 들어갔기에 처음엔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신) 현빈이는 계속 함께 작업하던 중이라 익숙한 반면 말이다. 그런 분위기가 어색하고 이색적이라 ‘이건 뭐지’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숏 팬츠에 화려한 점퍼, 화이트 슬림핏 원피스, 롱부츠에 붉은 립스틱 그리고 고급스러운 가운 등 ‘연희’의 의상이 눈에 띈다. 순간 <피도 눈물도 없이>(2002)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사와 캐릭터의 유사성이 전혀 없지만 말이다.
‘연희’는 얽히고설킨 인물과 엉킨 이야기를 하나로 묶고 푸는 인물이다. 의상의 변화로 상황과 감정 표현 등 서사의 많은 부분을 대신했다. 또 ‘미란’의 워너비이기도 했기에 외양적으로도 신경 썼다. 그만큼 의상이 중요했다.
그간 원톱 혹은 투톱인 작품을 주로 했는데 이번엔 윤여정,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진경 등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했다. 멀티캐스팅 영화를 해보니 어떻든가.
묻어갈 수 있어 좋았다. (웃음) 가령 홍보할 때만 해도 내가 수습이 안 되니 옆에서 정우성 배우가 싹 정리하더라. 촬영 현장은 물론 이후 프로모션에서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다는 것에 든든했다. 평소 여러 배우와 만들어 가는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캐스팅 제안이 안 들어와서 못한 거였다. 스스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아니라 실천하는 게 올해 목표다.
‘올해’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항상 마음은 있었는데 실천을 못 했거든. 내가 아무리 편하게 다가간다 해도 관객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칸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일부러 부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내려오지 않으면 누구도 몰라주겠더라. 그게 점차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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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깜짝 출연도 같은 맥락의 선택이라고 봐도 좋을까.
하루 잠깐 가서 촬영한 거라 주변에서 아무도 몰랐고 나 역시 잊고 있었다. 개봉하니 깜짝 놀라면서 연락 오는데 그 반응이 새롭더라. 아마 관객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차후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선택을 이어가고 싶다.
이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도 다양한 선택의 하나인 것 같다. 감독 역시 첫 장편을 내놓은 신인 감독이다.
내가 내 필모를 너무 사랑하나 보다.(웃음) 말로는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시나리오에서 타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럴 수 없었다. 지금까지 신인 감독과의 작업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동의 되면 그것이 대중적이든 그렇지 않든 함께했다. 사명감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영화가 메이드 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번엔 특히 이야기가 좋았다. 김용훈 감독이 봉 잡은 거인지도.(웃음) 여담이지만, <백두산> 관객수가 훅훅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하룻밤 자고 나면 백만씩 증가해 있는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용훈 감독이 전도연 선배가 수락하면서 이후 캐스팅이 순항이었다고 특히 고마움을 표하더라. 게다가 로테르담영화제 심사위원상의 영광을 안았다.
로테르담영화제에 간다기에 아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지겠다는 생각이 순간 스치더라. 또 수상 후 바로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왔길래 축하한다고 답하면서 ‘음 작품적으로 도움이 되겠죠. …’라고 덧붙이기도. 기쁘면서도 영화제 수상작은 비대중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한편으론 걱정됐다.
‘연희’에게 호구 잡힌 ‘태영’역의 정우성 배우와 첫 호흡이다. 다른 작품으로 또 만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는데 잘 맞았나 보다. (웃음)
사실 정우성 배우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의아했다. 극 중 ‘태영’은 벼랑 끝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인물인데 그(정우성)는 너무 많은 지푸라기를 가져 보여서 말이다. 첫 촬영이 ‘태영’집에서 찌개 끓이는 시퀀스였는데 캐릭터에도 배우에도 익숙하지 않아 좀 당황스럽더라. 그러다 점점 익숙하고 재미있어지는데 촬영이 종료돼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아쉬웠다. 또 정우성 배우가 해석한 ‘태영’이 우리 영화의 블랙코미디적인 요소의 한 부분을 만들었고, 영화에 굉장히 좋게 작용했다.
다양한 작품에 목마르다고 여러 차례 밝혔는데 향후 배우로서 욕심이 있다면.
욕심이라기보다 ‘칸의 여왕’을 올라서고 싶은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이게 더 높은 곳을 지향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말했듯) 그 타이틀을 극복하고 싶다는 의미다.
무얼까. 필모에 천만 영화를 추가하는 걸까. (웃음)
에이, 꼭 천만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한번 해보고 싶긴 하다. 잘 모르겠지만, 예전 내 별명이 ‘영화나라 흥행공주’였다. 진짜다.(웃음) 지금까지 작품 선택에 좀 더 완벽하려 했다면 지금은 좀 부족해도 메워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시나리오가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는데 혹시 예능에 출연할 생각은 없는지. 단기간에 연기 외 다양한 모습을 보이기에 최적화된 영역이 아닌가 한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할 줄 모르고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한 번 해보고 싶긴 한데… 캐릭터가 아닌 개인 전도연을 노출하는 데 자신이 없다고 할지 두렵다고 할지 좀 그런 게 있다. 생각은 계속 변하는 데 누군가는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할지 모르지 않나. 가령 젊을 때 내 꿈은 현모양처이고 배우를 오래 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강점과 약점은. 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까.
항상 홍보할 때 그렇다. 농담이고 솔직히 살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절박하진 않았던 것 같다.
자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약점을 묻다니! 우리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것에 깜짝 놀랐다. 그만큼 선정성과 자극성에 기대치가 높아질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 그게 우리 영화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마치 책을 읽듯 자극적이고 끔찍한 상상의 여지를 남길 뿐 직접 보여주진 않으니 말이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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