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공작>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됐었다. 늦었지만, 축하한다. 칸 상영 이후 재편집한 거로 알고 있다. 전후 차이점은.
약 4분 정도 편집했는데 너무 스마트해졌다. 칸에서 상영 후 기자들이 루즈한 느낌 등 이런저런 얘길 많이 해줬다. 솔직히 우리 배우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차마? 윤종빈 감독한테 말하기 좀 그랬었거든. 이 자리를 빌려 기자들께 감사를 전한다.(웃음)
4분의 위력이군!
굉장히 많이 줄인 느낌인데, 딱 4분 맞다.
영화 시작할 때만 해도 사회 분위기가 요즘 같지 않았다. 망설임은 없었는지.
우리끼리 밤에 나다니지 말라고 잡혀간다고 농담하곤 했었다. <공작>이 크게 보면 정치 얘기지만, 좁게 보자면 사상과 신념이 다른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볼지는 관객의 몫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두 남자의 우정으로 시작을 잡았었다.
처음 <공작>을 준비하며 두렵다기보다 좀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세대라(웃음) 영화에서 이렇게 김정일 얼굴을 대놓고 드러내도 되나 싶었거든. 묘한 감정이 들었었다.
그럼에도 <공작>을 선택한 이유는.
나는 광대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만 알고 있을 수 없더라.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그야말로 ‘헐, 대박!’ 이런 느낌이었거든. 90년대 이런 사실이 있었다니, 연극하며 그 시대를 살아왔는데도 전혀 몰랐었다. 분명 관객도 잘 모를 거고 나와 같이 놀랄 거라는 게 <공작>의 시작이었다.
극 중 ‘흑금성’의 모델이 된, 실제 ‘흑금성’으로 활동했던 공작원 ‘박채서’ 씨를 만났다고 들었다.
그분이 출소하고 만났다. 평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 실재 인물을 일부러 안 만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뵙고 나면 그 이미지에 나 스스로 가둬질 것 같아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창조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공작>은 시나리오 보며 ‘흑금성’이라는 인물이 너무 궁금했었다.
특히 어떤 점에서 궁금했는지.
우선 그를 움직인 신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신념을 가졌기에 국가의 부름에 응해, 그렇게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 싶더라. 또, 일반 사람 같으면 김정일을 만난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져 버릴 정도로 긴장할 텐데 그 앞에서 술을 안 먹는다고 거절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
극 중 표현처럼 그야말로 ‘호연지기’겠지! 실제 그(박채서)를 만난 느낌은.
그분의 에너지를 보고 느끼고 싶었고, 만나기 전에 당연히 보통 사람이 아닐 거로 생각했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인상이 정말 강렬했다. 보통 상대의 눈을 보면 대체로 성향이 파악되는 편인데, 도저히 파악이 안되더라. 아무리 눈을 봐도 ‘그’를 읽을 수 없었다. 뭐라고 할까 약간 바위 같은 느낌?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 들더라. 그분이 일부러 뭔가를 숨기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그런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됐었다.
만남은 한 번뿐이었나.
아니, 그 후 여러 번 뵀다. 이번에도 언론 시사 끝난 후 뒤풀이에 가족들과 함께 와주셨는데, (영화가) 좋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사모님이 영화 속 내 모습이 남편과 비슷하다고 하시며 특히 좋아하셨다. 내가 그렇게 못생겼냐고 (사모님께) 농담하기도 했다.
바위 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테...
당연히 어렵지. 고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렇게 돼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
좀 전에 말했듯 먼 옛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몰랐던 이야기인데,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허구와 사실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대부분이 사실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에 영화적 상상을 더 해야 하니 극 중 ‘흑금성’을 1인 2역으로 할까도 고민했었다. 그렇게 되면 영화적 재미는 더할지 모르겠으나 너무 할 게 많아지고, 우리 영화가 추구하는 ‘결’과는 맞지 않겠더라. 우린 흔히 첩보물 하면 떠오르는 스릴과 액션을 추구하는 게 아니었거든. 그래서 ‘암호명’으로 활동할 때 사투리를 사용하고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정도로만 차이를 두기로 했다. 이것도 정말 많은 생각 끝에 결정한 거였다.
여타 첩보물과 달리 액션을 완전 배제하고, ‘구강 액션’을 앞세웠는데... 힘들었겠다. (웃음)
처음에 ‘첩보물? 재미있겠네’라고 생각했다가 ‘헉’ 했다. 실제 액션이 없지만, 관객이 액션이 있는 것처럼, 즉 그만큼 다이나믹하고 긴장감 있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윤종빈 감독이 얘기하더라. 그게 말이 쉽지 막상 해보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대사만 하니 긴장감 제로에 각 배우들이 다 따로 놀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 결국 각자 바닥을 친 끝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모여 대화를 했는데, 얘기 해보니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 후 머리 맞대고 합을 짜기 시작했다.
음, 액션 합 맞추듯 ‘구강액션’도 합이 필요한 거군!
정답! 가령, 내가 대사하고 이만큼 쉴 테니 넌 좀 더 쉬고 들어와.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합을 짠 후 맞춰 나가니 긴장감이 생기고 그 안에서 공기가 형성되더라. 사실 우리가 나름? 프로 배우들이라 서로 속내를 잘 이야기하는 편이 아닌데, 그렇게 마음을 터놓으니 좀 수월해졌었다.
말이 ‘구강액션’이지, 사실 극 중 고성이 오가는 것도 아니다. 전반적으로 아주 차분한 분위기인데,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조용조용 얘기하지만, 그 밑에서는 칼들이 날아다니는 거지. 극 중 한 인물이 만약 손을 올리면 거기에 또 의미 부여가 되니 행동하나 눈짓하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치, 선생님께 혼나는 학생이 또 혼날까 봐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디테일한 동작과 표현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두며 연기했다.
대북 공작원 ‘흑금성’이라는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아무리 액션이 없다고 얘기해도 영화가 지닌 ‘결’과는 다른 기대를 걸고 찾는 관객도 꽤 있을 거다.
당연하다. 나만 해도 처음에 첩보물이라고 하길래, 후에 전혀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예상했던 몇몇 포인트가 있다. 그렇기에 관객이 <공작>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하다. 다만 내가 처음 사건을 접했을 때 받았던 충격과 전율을 관객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노골적인 싸움이나 액션 없이도 이런 긴장감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만 알아주셔도 충분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혹은 기억 나는 장면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뭔가 뜨거움이 올라왔었다.
롤렉스와 넥타이 핀.... 그 마지막 장면을 찍으려고 우리가 이렇게 달려왔구나 싶었다. 생각보다 편하게 촬영했던 장면이다.
이번 <공작>은 특히나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했을 것 같다. 극 중 ‘흑금성’(황정민)의 작업 대상인 ‘리명운’역의 이성민 배우와의 호흡은.
성민 형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같이 있으면 행복한 게 나도 덩달아 잘하는 거 같이 느껴져서다. 연기라는 게 핑퐁같이 주고받는 거라 상대역(리명운)을 성민 형이 한다는 얘길 듣고 박수쳤었다. ‘리명운’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역이 아니거든. 아주 디테일한, 마치 수학 공식 같은 작업인데, 형이 한다니 쌍수 들고 환영했었다. 형 덕분에 ‘흑금성’이 도드라지지 않고 극에 녹아들 수 있었다.
북한 군부 강경파 ‘정무택’을 역의 주지훈 배우와는 <아수라>(연출 김성수, 2016) 이후 다시 만났다.
지훈이는 <아수라> 때도 느꼈지만, 진짜 영민하고 재능있고 똑똑하다. 치고 빠지는 걸 너무 잘한다. 예를 들면, 극 중 김정일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할 때 너무 힘들었었다. 그 장면이 눈도 못 맞추고 로봇처럼 대사만 줄줄이 읊으면서도 내밀한 감정을 보여야 하고, 분위기를 바짝 조여줘야 하거든. 준비를 정말 많이 해갔음에도 이상하게 (연기가) 말리는데, 마치 밧줄에 묶여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첫날 촬영 끝나고 성민 형이랑 한숨 쉬던 중 다음 날 지훈이가 왔다. 우리가 이제 너 큰일 났다고 엄포? 놨는데, 웬걸 너무 잘하고 한 방에 끝내는 거다! 분명 내게 없는 뭔가를 가진 게 틀림없다.(웃음)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과는 첫 작업이다.
윤종빈 감독은 다시 시키기 전에 일단 와서 보라고 한다. 그렇게 다시 하면 콕 집어낼 수는 없지만, 미묘하게 에너지가 달라져 있는데, 감독이 머릿속에 정확하게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촬영 중 카메라가 옆에까지 바싹 들어오는 비클로즈업도 많았는데, 당시는 어디에 사용할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다 활용했더라. 똑똑하고 집요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구상, 안배, 배치가 뛰어나다. 평소 집요하고 예민한 사람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 작업할 당시는 피곤하고 싫기도 하지만 발전하는 게 확 느껴지거든.
극 중 ‘흑금성’의 내레이션이 있는데, 그거 칸에 갔다 온 후 7월까지 계속 수정한 거다! 솔직히 엔지니어와 다른 스태프들은 좀 귀찮아했는데, 아마 나와 감독님만 즐긴 듯하다 (웃음), 그래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뭐, 여하튼 그만큼 집요한 면이 있다.
당신 같이 베테랑 배우에게 그렇게 여러 번 시키다니! 기분이... 어땠나?
경력이 무슨 상관인가! 나에게 <공작>은 처음이자 마지막 아닌가. 일단 개봉하면 다시 수정할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더 발전된 모습이 보일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고맙지. 또, 감독을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도 주연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공작>의 관람 포인트로 빼놓을 수 없는 게 프로덕션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북한에서 촬영했다고 착각할 정도다.
그게 감독님의 의도였다. 정말 평양가서 찍었나 싶을 정도로 보이게 하는 것 말이다. 그러니 미술 담당 등 스태프들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웃음) 진짜 북한(평양) 느낌 나는 곳이 국내에 있다는 게 신기했었다. 예를 들면, 북한 영변 방문 장면은 태백에 위치한 예전 시멘트 공장 뒤쪽에서 촬영했는데, 그곳에 일제강점기 때 숙소로 사용했던 공간이 남아 있었다. 벽에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크게 써놓으니 진짜 북한 같은 거다. 그걸 보고 동네 어르신이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영화의 평이 워낙 좋지만, 혹시 <공작> 관련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 영화와 상관없는 일인데, <신과함께- 인과 연>과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하게 된 게 아쉽다. 그 점 말고는 없다. <신과함께- 인과 연>이 개봉 첫날 120만 명이 넘게 들었다는데.... 참, 그 소릴 듣고 순간 짜증나기도! 하하하
<공작>은 배우 ‘황정민’에게 어떤 작품일까.
연기로 바닥치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한 작품이다. 그간 여러 작품하며 나름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알게 모르게 관성적으로 움직인 면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공작>을 통해 첫 시작 첫 느낌 즉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 했지.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작품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지난 2월 연극 <리차드 3세> 공연을 시작했나 보다.
<공작>은 소리 높이지 않되 그 안에서 다아나믹함을 표현하고 긴장감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연기가 필요했다. 촬영하며 기존에 늘 하던 방식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에 <공작> 끝내고 쉬면서 ‘연기’에 대해 복기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연극을 시작한 거다. <리처드 3세>가 대사가 많을 뿐 아니라 발성도 정확해야 하고 하나하나 해석하고 체크해야 하거든. 그런 것들이 나에게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은 무사히 연극 공연 끝나고 푹 쉬는 중이다. 당시 더블 캐스팅이 아니라 오롯이 혼자 공연해야 해서 몸 관리를 철저히 한 덕분에 지금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다행히 연극을 관객이 너무 좋아해 주셨고, 무대인사 시 기립박수도 쳐주시더라. 역시 어떤 일을 진심으로 충실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많은 현장 영화인이 선호하는 배우인데, 러브콜을 받는 이유가 뭘까. 자평한다면.
음, 개런티가 좀 싸서? 농담이고. (웃음) 아마도 같은 편이 돼주기 때문이 아닐지. 이 사람한테는 뭘 맡겨도 해줄 것 같고, 자기편이 돼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 같다. 나라는 방패막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좀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봐도 좋을까. 물론 여러 종류의 ‘재미’가 있겠지만.
관객에게 책을 선물한다는 느낌으로 작품을 선택한다. 책을 선물해 본 적이 있겠지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사실 책을 선물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을 볼 때 무엇보다 이야기를 중요하게 본다. 서사 안에 여러 인물이 살아 숨 쉬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이야기가 좋다. 현실을 반영하는 이야기나 실화가 바탕이 된 이야기, 꼭 실화가 아니라도 실화 같은 영화를 선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많은 관객이 좋아하는 배우 ‘황정민’이지만, 한편에선 당신이 맡았던 그간 역할에 식상함을 내비치는 분도 분명히 있을 거다.
있을 수 있는데.... 많이는 없을 거로 기대한다! (웃음) 음, 천 명 중 두 분 정도? 나머지 998명은 내 영화를 기다려 준다고 믿고, 그분들을 신경 쓰고 싶다.
얘기했듯 캐릭터보다 전체 이야기가 중요하다. 재미있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비록 전에 했던 형사나 건달 등 비슷한 캐릭터라도 기꺼이 하려 한다.
다음엔 윤제균 감독의 신작 SF <귀향>으로 만나는 건가.
SF 장르가 처음인 데다 한국인이 우주복을 입고 우주에 관해 이야기 한다는 게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 SF 장르니 내가 둥둥 떠 있을 것 아닌가. 현재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라서 무중력 상태에서의 연기를 완전 기대 중이다. 게다가 작업방식도 심성도 너무 좋은 윤제균 감독님과 함께라서 더 좋다. 공작 촬영할 때, 오셔서 대본을 주셨는데 보지도 않고 한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 <공작>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내가 처음 <공작> 이야기를 접했을 때 느낀 놀라운 감정을 맛보셨으면 한다. 그 후 엄지 척! 하고 다른 분께 강추할 수 있는 영화가 되면 좋겠다.
2018년 8월 10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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