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홈>의 주인공인 열네 살 소년 ‘준호’는 복잡한 가족사를 지닌 소년이다. 아버지가 다른 남동생,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른 여동생을 친형제처럼 챙기고, 그들과 함께 살기를 고대한다. 영화는 이 조금은 특별한 사연을 지닌 소년을 등장시켜 혈연이 아니라도, 꼭 한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도 ‘가족’이고 ‘가정’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개인사가 일정 부분 녹아 있는 <홈>을 첫 장편으로 내 놓은 김종우 감독. 그에게 영화란 처음으로 꾼 꿈이다. 그 꿈의 작은 결과물이자 자신을 새로운 출발선에 놓아준 <홈>에게 김종우 감독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한다. <홈>, 나를 대중에게 알려 줘서 고맙고, 네가 가진 것들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해 미안해....
단편 <북경 자전거>(2014), <그림자도 없다>(2013> 등의 작업을 거쳐 <홈>으로 장편 데뷔했다. <홈> 이야기에 앞서 전작들의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북경 자전거>는 당시 학교에서 진행 중이던 한·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촬영한 거였다. <홈>에 출연한 허준석 배우를 처음 만나는 등 인연이 깊은 영화다. 중국 택시 기사가 한국인 승객(허준석)에게 사기를 당하는 내용인데, 아들과 아버지, 부정(父情)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에서, 한국에서 모두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한다. <그림자도 없다>(2012)는 조선족 노래방 도우미가 주인공으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경계인을 그렸었다.
‘소속감’이라고 하니, <홈>의 주인공 ‘준호’(이효제)가 떠오른다. <홈>은 가족을 갖고 싶고, 가정의 일원이 되고 싶은 열네 살 소년 ‘준호’를 주인공으로 한다.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소속감에 관심이 간다. 말한 대로 <홈>의 ‘준호’ 역시 그렇다. 극 중 ‘준호’와 ‘성호’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다. 엄마와 함께 살던 형제가 엄마가 사고를 당한 후, 어린 ‘성호’(임태풍)를 친아버지인 ‘원재’(허준석)가 데려간다. 하지만, 그는 중학생인 ‘준호’까지 챙길 여력이 없고, 그럴 마음도 딱히 없다. 왜냐하면, 그는 혼외 자식인 ‘성호’를 챙기는 것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또, 그의 원래 가정에는 이미 딸 ‘지영’(김하나)이 있다. 그런데도 ‘준호’는 어떻게든 동생들과 같이 지내고,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사연은 다르나 작품 속에 소속감에의 욕구가 강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혹시 개인적인 결여에서 비롯된 걸일까. (웃음)
그렇진 않다. 크게 결여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계속 관심이 가는 게 (나도) 의문이다. 다만, 다 같이 모여 무언가를 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영화가 그래서 좋다. 여럿이서 함께하는 작업 아닌가. 촬영현장 자체가 너무 좋아서 학교 다닐 때도 동기들의 작업을 자청해서 도와주곤 했었다. 정신없던 시간 뒤에 따라오는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다. 아, 이게 소속감에 대한 결여일 수도 있겠다.(웃음)
그렇게 현장이 좋다니, 좀 더 규모가 있는 영화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웃음)
있었다. 영화를 늦게 시작한 편이라 학교를 마치니 삼십 대 초였다. 연출부로 일해보고 싶었는데, 막내로 들어가긴 너무 나이가 많았다. 나는 괜찮은데 상대가 부담스러워하고 안 써주더라.
<홈>은 <우리들>(2016, 윤가은), <용순>(2016, 신준)에 이은 아토ATO의 세 번째 작품이다. 아토ATO와 인연의 시작은.
늦게 영화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래도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아토ATO 김순모 피디를 만났다. 그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하고, 이후 내부 회의를 거쳐 아토ATO 작품으로 가보자 했다.
첫 장편인데, 단편 작업과 장편 작업의 차이가 있다면.
솔직히 시나리오부터 너무 다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피디와 상의 끝에 그냥 내 식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극 중 ‘준호’에 대부분 초점이 맞춰진 것도 그런 이유다. 혼자 단편 촬영할 때와는 작업 환경이 여러모로 달라서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전까지는 내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던 걸 역할을 나눠서 분담하니 그만큼 내가 결정을 미리, 빨리해야 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이라 하루에 아주 짧은 시간을 촬영했음에도 초반에는 촬영이 끝나면 정말 피곤했었다.
총 몇 회차에 걸쳐 완성했는지. 예산 규모는.
총 34회 차 부산 올로케로 촬영했다. 당시 태풍으로 날씨가 너무 안 좋았었다. 예산은 부산영상위원회 지원금 8,000만 원으로 시작한 건 확실한데, 이후 추가된 금액은 피디의 소관이라...(웃음)
<홈>에 당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밝혔다, 첫 장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전하고 싶었는데, 무엇이 진정성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타인의 이야기보다는 내 이야기, 내가 주변에서 봐왔던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다. 형제의 나이가 8살 차이인 것은 실제 나와 형의 관계가 그렇기 때문이다.
동생 ‘성호’가 주인공이 아니라 형인 ‘준호’를 주인공으로 한 까닭은.
실제로는 내가 8살 차이 나는 동생이지만, 극 중 ‘준호’에 내 모습이 많이 투영돼있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했는데 형은 같이 가지 않고 이후 쭉 혼자 살았다. 당시 형이 함께 가지 않은 것에 크게 의문을 갖지 않았는데,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형이 아버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나고 보니 형의 심정이 어땠을지 많이 돌아보게 되더라. 주제넘지만, 형의 마음을 이해하고 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극 중 형인 ‘준호’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 같다. 아, 예전에도 지금도 형과 너무 잘 지내고 있으니 오해는 금물이다! (웃음)
극 중 ‘성호’가 형인 ‘준호’를 아주 좋아하지 않나. ‘형님이 최고!’라고 말한다. (당신이) 형을 많이 따랐나 보다. (웃음)
극 중 ‘준호’ 처럼 형이 나를 많이 챙겨 줬었다. 형이 소풍 갈 때 따라가기도 했고, 시골에서 자라며 쥐불놀이 등등 놀다가 엄마한테 혼날까 봐 쉬쉬했던 기억도 있다. 나중에 형이 아버지가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도 충격이 아니라 ‘그게 뭐?’ 이런 감정이었다. <홈>을 촬영하면서 형 생각을 많이 했는데, 참 고맙고 한편으론 많이 미안하더라.
‘준호’의 나이가 열네 살인 것, 그가 ‘축구소년’인 것도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열네 살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나이다. 개인적으로 중학생이 되면서 선택과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앞으로 할 일 등등에 관해 자주적으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기인 것 같다. 그 시기에 ‘가족’이라는 고민을 던져준 거다.
‘준호’가 축구소년인 이유는 시나리오 쓸 당시 내가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해서 그 재미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웃음) 또, 실제 우리 형이 축구를 좋아하고 아주 잘 했었다. 어릴 때 내가 지켜봤던 형의 축구하는 모습 그대로 넣고 싶었다.
‘준호’는 어떻게든 새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하는데, 현실이 너무 가혹하더라. 특히, ‘준호’의 친아버지가 사라진 부분에서 마음 아팠다.
누군가 너무 몰아붙인 것 아니냐고 하더라. 그저 현실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어른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말이다. 사정이 딱하다고 자식이 아닌 아이를 거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런 모습에서 ‘준호’를 몰아붙인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준호’의 친아버지는 일부러 작정하고 외면한 것이 아니라 자기 한 몸 챙기기에도 힘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인물이다.
어른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건 알겠는데, 좀 더 인물에 사연을 부여할 수도 있었을 거다. 인물의 전사가 부족한 느낌이다.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완성해 놓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웃음) 함께 살고 싶은 ‘준호’의 마음과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꼭 같이 살지 않아도 가족이라는 메시지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것들은 설명이 부족해졌다. 너무 몰방했다고 할까. 또, 한편으론 이야기가 아침드라마 같은 자극적인 설정인데, 각자의 사연을 풀어 신파적 요소를 넣으면 그야말로 아침드라마같이 될 것 같았다. 나름 영화적 매력을 부여하고자 한 시도였는데, 성공인지는....
‘준호’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연속적으로 겪는데 감정의 표현이 별로 없다. 후반부에 몰아준 느낌이다.
영화를 본 우리 어머니도 그런 이야길 하셨는데, 뜨끔했다. 극적 효과를 주고 싶은 욕심에 그렇게 된 것 같다. 중간 중간 ‘준호’의 속내를 좀 더 표현했어야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잘 나왔으면 하는 생각으로 공(?)들여 촬영한 장면은 ‘준호’가 친구들로부터 맞고 돌아와서 ‘원재’에게 같이 살고 싶다며 우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준호’가 친아버지와 만나서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얘기하는 장면이다. 촬영 중 계속 날씨가 나빴는데, 그 날은 유독 날씨가 좋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웃음) 구상하고 준비했던 여러 요소를 시나리오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좀 전에 말했듯 ‘준호’의 감정이 후반부에 집중 폭발한 것도 그렇다. 또, 인물들의 전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해 그 결과 극 중 이모, 친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이 야박하고 나쁜 인물로 그려진 것 같아 아쉽다.
<홈>은 당신에게 어떤 작품일까?
나를 새로운 출발선에 놓아준 작품이다. ‘김종우’라는 감독이 있다는 걸 알려준 작품이라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하다. <홈>이 가진 게 많음에도 내가 잘 표현해주지 못해서다.
7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접고 호주로 떠났다고 들었다.
아, 그렇게 말하니 뭔가 거창하다. 그런 거 아닌데...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5년을 일하니 25살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일도, 꿈도 없었기에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고민했었다. 당시 친척 형이 호주에 간다기에 따라갔는데, 그곳에서 영상 관련 쪽 사람들과 만나서 친해졌다. 그들이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는데 이런 세계가 있나 싶게 신세계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영상 쪽으로 일을 하고 싶어서 뒤늦게 영상학과에 진학했고,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하고 싶더라.
당신에게 영화란.
영화는 내가 첫 번째로 꾼 꿈이다. 영화를 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었다. 영화를 시작한 후 시나리오 쓰고, 캐릭터를 만들면서 타인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게 나를 변화시켰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된 거다. 이런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앞으로의 새로운 꿈이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드라마 장르를 하고 싶다. 옛날 홍콩 누와르 영화를 좋아했었는데, 먼 훗날 얘기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 얼마전 <독전> 시사표를 여차저차 구해서 봤는데, 재미있더라.(웃음)
좋아하는 영화를 꼽는다면.
다르덴 형제와 지아장커 감독을 좋아한다. 그들이 약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너무 좋다. 부족하지만 닮아보려고 노력한다. 이번 <홈>을 만들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을 봤는데, 가족을 그린 그 결이 정말 좋더라.
다음 작품은.
구상한 게 있긴 한데, 제작될지는 모르겠다. 불법체류자의 자녀인 여고생이 주인공이다. 어두운 현실에도 밝은 소녀로, ‘아멜리아’(<아멜리아>, 2001)나 ‘마츠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2006) 같은 긍정적인 캐릭터로 그리려고 한다.
최근 인상적인 일이나 행복한 순간은.
최근 VIP 시사회가 있었는데, 그 전에 정말 걱정을 많이 했고 겁이 났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오셔서 함께했는데,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 보는 참 감사한 순간이었다.
2018년 6월 1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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