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김수진 기자]
영화는 어떻게 봤는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온 듯하다.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촬영할 때만 해도 걱정한 부분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편집이 촘촘하게 잘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몇 년 전부터 연기에 대한 고민이 잦아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고민한 만큼 내가 무엇을 실수했는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실수가 앞으로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공조>에서의 연기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아마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찍고 난 다음에 연기했던 악역이라 더 그런 듯싶다. 이번 영화 언론시사회에 때도 엄청 긴장했었다. 악역 연기가 어색하면 어쩌지 했는데, 역시나 내 눈에는 실수투성이더라.
무엇이 아쉬웠나.
스릴러라는 장르를 너무 의식하다 보니 결국 과장된 연기를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배우는 그저 연기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스릴러적인 분위기는 다른 영화적 장치들로 충분히 살릴 수 있다. 배우가 직접 관객의 감정까지 끌고 나가서는 안 되는데 이 부분을 간과했다. 특히 법정신에서 전반적인 톤앤매너를 잘못 잡았던 것 같다. 이러한 실수를 타산지석 삼아 앞으로 연기에 임할 때는 좀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출연을 결정하면서 걱정한 부분이 있었다면.
<공조>보다 앞서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다. 단순하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단, 관객들이 악역을 연기하는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봐줄까 걱정했었다. 결과적으로 <공조>가 먼저 개봉돼서 <석조저택 살인사건> 속 ‘남도진’이 이질감 없이 비춰질 듯하다. <1박 2일> 같은 예능프로그램이나, 로맨틱코미디를 주로 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고민이 없을 수가 없더라. 예전부터 굳이 악역은 아니지만 장르적으로 변화를 원하고 있었는데, 그런 맥락에서 결과는 나쁘지 않은 듯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장르적인 변화를 꾀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인지.
40대가 되면서 변화에 대한 고민이 더 늘어났다. 어떤 작품에서든 좋은 배역을 맡아 이를 잘 표현한 배우들을 보면서, ‘그래, 내 생각이 맞았어 저렇게 하면 돼’라고 할 때가 잦다. 또 <1박 2일>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나서부터 더 달라진 것 같다. 알겠지만 예능프로그램을 촬영할 땐 웃기지 않아도 웃어야 할 때가 많다. 그런 와중에 난 휘둘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느낀 만큼만 표현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작품이든 전체를 봤을 때 연기자가 과하게 표현하면 보는 분들이 되려 불편해지지 않나. 앞으로 다가올 연기 동향을 예상해보면 지금까지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배우들이 하는 연기는 대부분 ‘보여주기 식’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호평 받는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전부 담백하게 연기한다. 그리고 나서 연출로 영화, 장르적 재미를 살리는 편이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변화가 생긴다면 잘 얹혀가야지 싶다. 뒤처져서는 안되니까.(웃음)
솔직히 <공조> 출연을 결심할 때만 해도 ‘동판’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서 깨달았다.
지금도 그렇고, <공조>나 이번 영화에서도 몸이 좋아졌다는 느낌이다.
<1박 2일> 때 인어공주 의상을 입은 적이 있다. 그 이후 충격 받아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프로그램은 왜 그렇게 탈의를 시키던지.(웃음) 운동도 운동이지만 식이조절도 중요해서 열심히 병행했다. 사실 <공조> 때는 몸을 만들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그 작품 이후 더욱 운동에 열중했다. 한편으론 그동안 로맨틱코미디에 주로 출연해왔기에 남성적인 느낌을 더 갖추고 싶어서 열심히 몸을 만든 것도 있다.
<1박 2일>은 그밖에 배우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을 줬는지.
출연하기 전만 해도 ‘냉정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또 2년 동안 사극에만 출연해서 비슷한 이미지가 굳혀져 있기도 했고. 그러다 <1박 2일> 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처음엔 죽어도 안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설득 당한 나머지 출연하게 된 것이다. 초반에는 내가 <1박 2일> 출연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긴가민가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출연진, 연출진과의 팀워크가 잘 맞아서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이 잘 됐기에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순수하게 촬영하는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앞서 말했지만 배우로서 연기적인 측면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큰 도움을 줬고 장르적 변화를 시도하게 만든 데 있어서도 <1박 2일>의 영향이 컸다.
그런 장르적 변화를 시도한 이번 영화에서, ‘도진’이라는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연기했는지.
구두닦이로 시작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극장 근처에서 표를 팔게 되고 자연스럽게 외국인들 말을 주워 듣다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게 된 인물이다. 총명해서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언행을 잘 따라 한다. 그러다 사기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부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사이코패스적인 성향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실 전사는 작품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고 감독과도 논의한 바 없다. 그런데 스스로 구체적인 인물의 전사를 만들어야 납득하면서 연기할 수 있기에 나름대로 상상한 것이다.
‘도진’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공감되던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악행을 저지르는 것에 있어서 적어도 죄의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연기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시나리오 상에선 멜로 라인이 너무 많아서 보는 분들이 지루해 하거나 지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자주 논의 했다. 오히려 이런 멜로 라인에 의문점을 넣어 서스펜스적인 재미를 부각시키는 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감독님이 나와 이야기를 나눈 대로 편집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멜로 라인이 원작과는 다소 상이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렇게 원작을 읽은 분들이 간혹 있어 더 부담스러운 거다!(웃음) 책을 읽을 때 상상했던 그림이 있는데, 영화가 이와 부합하지 않을 경우 얼마나 실망이 크겠나! 그러나 원작이 워낙 사랑을 받았다지만 옛날 작품이라 읽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고, 원작 스토리가 워낙 탄탄하니까 본 분들이든 못 본 분들이든 만족하며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수와의 액션신도 있었는데, 어땠나.
좁은 공간에서 3일 동안 찍은 장면이다. 여타 작품 속 액션신처럼 멋있다기보다는 쇠파이프 들고 엉겨 붙어 싸우는 액션인데. 보는 분들이 부디 긴장감을 가지고 봐주길 바란다.
고수와의 합은 어땠나.
연기할 때는 진지한 친구고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뭐 그런 배우와 연기할 때는 힘들지 않기 마련이다.
많이 친해졌나.
사실 난 깊게 친해지기까지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한번 친해지면 오래간다. 새로운 환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맨날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그렇다.(웃음)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 가장 자신과 닮은 캐릭터는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광식이 동생 광태>(2005)에서의 ‘광식’이와 닮은 것 같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말주변이 없어서 더 ‘광식’이 같았다.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툭툭 말하는 스타일이고 돌려서 이야기 할 줄 모른다. 내 자신을 포장할 줄 모른다고 할까. 좋게 말하면 가식적이지 않은 것인데, 사실 사람이 가끔은 자신을 포장할 줄도 알고 가식적일 때도 있어야 하는데 난 너무 그렇지 않아서 고민이다.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는데, 연기는 어떻게 하는지 신기하다.(웃음)
그래서 연기를 하는 거다. 연기를 할 때 일상에서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대신 드러낼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 그런 맛에 배우 생활하는 거다. 더군다나 상처 주는 말도 못하는 스타일인데 연기하면서 마음껏 풀 수 있지 않나. 정말 즐겁다.(웃음)
맞다. 그전까지 출연 제의가 들어오는 작품을 살펴보면 로맨틱코미디 장르가 거의 90%이상이었다. 얼마나 지겨웠겠나.(웃음) 물론 시나리오가 들어온 건 고마운 일이지만 스스로 지쳤던 것 같다. 인터뷰할 때마다 항상 받는 질문이, ‘비슷한 역할이다’ 였다. 항상 난감했다. 앞으로 출연이 정해진 몇몇 작품이 있다. 장르적으로 모두 달라서 스스로도 기대된다. 지금도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방향성이 어느 정도 확립이 된 시점이라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는 것 같다. 이런 가치관을 추구하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전보다는 나아지지 않겠나 싶다. 아,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앞으로 진짜 잘해야 할 텐데 큰일이다.(웃음)
연기 생활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는지.
뭐 배우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연기가 안될 때 가장 힘들지 않겠나. 다른 고민들도 있겠지만, 연기가 안 될 때가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 드라마 <구암 허준>을 찍을 때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가끔 쉴 때는 뭐하나.
그냥 집에서 45도로 누워있는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집 거실에 앉아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침실에만 있는다. 차라리 원룸에 사는 게 낫겠다 싶은 마음이다. 물론 그냥 누워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도 본다.(웃음)
최근에 본 영화 중 맡아보고 싶었던 역할이 있다면.
<모스트 원티드 맨>(2014)에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한 ‘군터 바흐만’을 연기해보고 싶다. 호프만이 내 롤 모델이기도 하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이 대부분 기억에 남는다. 또 <로스트 인 더스트>(2016)의 ‘마커스 해밀턴’을 연기한 제프 브리지스도 인상 깊었다. <시카리오>의 배우들도 모두 장르를 좇아가지 않고 담백하게 연기해 마음에 든다. 앞으로 이런 연기를 추구하고 싶다.
감독이 배우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할 때는 아무래도 배우가 부족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인데. 배우가 생각한 방식대로 했는데 감독의 기대에 반만 충족하고 말았다면 감독의 요구사항이 늘어 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00% 가까이 배우가 해냈는데 감독과 상충되는 지점이 생긴다면, 그때는 서로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충분히 논의를 한 이후에 차분히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실상 연출자라는 자리가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배우만큼 디테일 하지 못할 때가 아주 드물게 있다. 물론 배우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러니 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냉정한 편인가.
그렇다. 이번 작품이 좋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전성기라고 생각하는지.
내 기분만큼은 전성기다. 인기를 떠나서, 에너지가 넘치는데 그게 바로 전성기 아닌가. 그렇다고 어떤 계기가 있는 건 아니다. 대중은 <공조>가 잘됐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공조> 개봉 전부터 연기하는 게 행복했다.
그렇다면 최근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매일 집에 가서 옷 갈아 입고 누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때만큼 혈액순환이 잘 될 때가 없다. 남 부러울 게 없다. 이후 영화 한편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2017년 5월 15일 월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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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씨네그루(주)다우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