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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들, 좋은 감독 <굿 다이노> 피터 손 감독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픽사 디즈니의 20주년 기념작, 16번째 작품. <굿 다이노>의 수식어다. 한국에서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감독과 애니메이터의 국적이다. 영화를 연출한 ‘피터 손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이고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한국에서 의대를 다닌 한국인이다. 덕분인지 영화의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다. 개봉 첫 주말 45만 명, 누적관객 53만 명을 기록한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평론 사이트 로튼 토마토 지수도 76%다. 국내외 반응 모두 좋은 셈이다.

피터 손 감독이 애니메이션에 뛰어든 이유, 바로 어머니다. 뉴욕으로 이민 와 식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감독의 부모는 매출이 좋은 날이면 어린 형제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갔다. 그러나 영어에 익숙지 않은 탓에 늘 형제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곤 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울린 영화가 있다. 바로 <덤보>다.” 바로 이때 “애니메이션의 힘을 알게 됐다”는 피터 손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했다. 차후에는 캘리포니아로 건너 가 애니메이션 전문 학교에 입학했다. 캘리포니아는 신세계였다. “뉴욕에서는 항상 황인종이라 놀림 받았으나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무도 내 피부색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만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이후 피터 손 감독은 픽사에 입사했다. 어느덧 15년차 사원으로 <굿 다이노>를 연출하게 된 그는 “픽사는 정말 가족같은 분위기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두에게 훌륭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픽사 내에서도 그는 특별한 영화 감독이다. “<니모를 찾아서> 당시 수족관을 그린 내 그림을 보더니 나를 스토리 부서에 보냈다. <인크레더블>을 할 때는 운 좋게도 아트 디자인 스토리 보딩, 애니메이션 부서까지 섭렵할 수 있게 됐다.” 감독으로서는 드물게 여러 부서를 섭렵한 이력을 갖추게 된 셈이다. 이후 “구름에서 전세계 모든 아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그는 “<굿 다이노>를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 빨리, 많이 실수를 하라”는 교훈을 배웠다. “그래야 더 빨리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에 내 모든 진심과 마음을 쏟아 부어서 하는 것, 그리고 모든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것”. 피터 손 감독의 원칙이다. 매 5주마다 작품의 진행상황을 비평 받았다는 감독은 타인의 쓰라린 조언을 듣는 것에 망설임 없다. “내 모든 것을 쏟아낸 스토리가 비판 받으면 심정에 비수가 꽂히는 것처럼 아프다”면서도 “내 심장이 짓밟힐지라도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영화를 발전시키는 게 내 의무”라고 단언했다. 좋은 영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감독의 열정은 영화 곳곳에 묻어있다. 감독은 영화 속 배경을 실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따 와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직접 그려냈다. 반경 500km의 산맥과 들판의 지형도를 그대로 딴 뒤 이를 바탕으로 높이, 강의 위치, 고도를 구성하고 이 위에 풀, 나무, 바위 등을 얹어 배경을 구현했다. 더불어 사전 답사를 하면서 본 풍경을 유화로 담아 내 스크린에 표현하고자 한 들판 풍경의 분위기를 잡아냈다. 영화 속 구름 역시 신기술을 도입해 표현했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서는 구름을 직접 그리지만 우리는 구름을 벽돌처럼 만들었고, 이 구름을 조립한 뒤 조명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구현해 실제 자연의 느낌을 구현하려 했다”.

감독의 노력은 기술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드니스 림 프로듀서의 강력한 지원 하에 그는 “모든 박물관을 방문했다.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본 아주 큰 공룡을 스케치해서 공룡의 생김새, 구조, 골격 사이즈 등을 해부하듯 스케치했다”. 또한 “공룡 뼈가 주로 발굴되는 북서쪽을 직접 답사했다”. 그 곳에서 그는 “놀랍고 경이로우면서도 무시무시한 자연을 느꼈다”. 강에서 레프팅을 하다 카메라를 잃어버렸던 경험을 통해 강의 위험성을 깨닫기도 했다. 이 경험에 착안해 감독은 “강의 느낌을 영화에 담아내려 했다. 영화가 평화로울 때는 강이 투명한 유리처럼 표현되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강물은 시퍼렇거나 흙탕물이며, 유속이 매우 빨라진다”고 소개했다. 또한 감독은 그곳에서 목축업을 하고 있는 한 가족을 만났다. “두 명의 백인 부부가 다섯 명의 아이티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기여하는 것을 봤다. 그 모습을 통해 진정성을 느꼈다”는 피터 손 감독은 그들의 모습에서 ‘알로’ 가족의 영감을 얻었다.

<굿 다이노>의 소재를 잡게 된 계기를 묻자 감독은 “소년과 강아지의 이야기를 그리는 게 원래의 뼈대였다. 그러다 소년 역을 공룡이, 강아지 역을 인간 아이가 맡으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다. 좀더 발전시켜 생각해보니 초식 공룡들이 계속 살아 있다면 농부가, 육식 공룡들은 카우보이가 될 것 같았다. 티라노 사우르스를 카우보이로 표현하면서 존 웨인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더불어 “미국에서는 과거에 집착하느라 현재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을 ‘공룡’이라 부른다. 알로 역시 과거에 집착하지 않나. 그런 한계를 스팟과의 관계를 통해 풀어나가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제작자 '드니스 림'
제작자 '드니스 림'
영화의 숨은 재미는 또 있다. 바로 피터 손 감독이 직접 목소리를 연기한 ‘우드 부시’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갖 동물들을 뿔에 얹어 놓고 맹신하는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캐릭터다. 어떻게 그 역할을 하게 됐냐고 묻자 피터 손 감독은 “우드 부시는 알로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숲속에서 40년 동안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하며 만든 캐릭터다. 처음 스토리 보드를 만들 때 ‘얜 이럴 거야’하며 캐릭터 연기를 시범 삼아 해 본다. 그런데 드니스 림 제작자가 내 연기를 보더니 재미있어 하더라. 난 감독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지 않나. 하지 않겠다고 고사했지만 디즈니 수장이 내게 명령했기에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며 웃었다. 드니스 림 제작자는 “개인적으로 피터 손 감독은 좋은 배우라 생각한다. 그는 아마 코미디 연기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며 “피터 손 감독은 특별하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해내는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평했다.

한국에서는 꿈의 직장으로 알려진 픽사, 그 곳에서 감독이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묻자 피터 손 감독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장 중요한 감독의 자질은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를 만들고 그리고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감독은 함께 일할 애니메이터를 선택하는 기준 역시 덧붙였다. "그 사람만이 기여할 수 있는 것, 그 사람만이 가진 취향이 제일 중요하다. 다른 것을 따라 하는 것에는 관심없다"는 그는 픽사를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관점을 가장 잘 제시할 수 있는 곳, 나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곳, 바로 픽사다." 좋은 아들이자 좋은 감독인 피터 손 감독의 <굿 다이노> 이후의 행보가 진심으로 기대된다.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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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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