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의 블라인드가 걷혔다. 소감이 어떤가?
음… 시사 후 분위기는 좋은 편인데, 그만큼 더 긴장되는 게 사실이다. 언론시사 때 밝혔듯이 <블라인드>는 개인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쏟았고, 촬영하면서 많이 외로웠던 작품이다. 그걸 영화에 대한 좋은 반응으로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더 긴장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했다. 시사회 때 “캐릭터 영향을 많이 받아 정말 외롭게 찍은 작품”이라고 말하더라. 정확히 어떤 부분이 외로웠나?
<블라인드>의 ‘수아’는 사고로 동생도 잃고, 자기 눈도 안 보이게 된 아이다. 설정에서부터 답답하고 외로운 캐릭터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걸 누구한테 호소할 수가 없었다. 아픔과 답답함을 혼자 견디면서 범인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나로서는 힘겨웠다. 그 친구를 연기하면서 뭔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나 혼자 헤쳐가야 한다고 느꼈다. ‘수아’처럼, 내 역할 자체를 그렇게 느낀 거다.
‘수아’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고, 극 전체를 끌고 가는 만만찮은 캐릭터다. 처음 ‘수아’를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수아’는 겁은 났지만, 그만큼 놓치기 싫었던 캐릭터다. 처음 <블라인드>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굉장히 궁금했다. ‘내가 수아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표현하는 수아는 어떨까’, ‘아, 내가 정말 해보고 싶어!’ 이렇게 다가갔던 것 같다. 어려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정말 조심스러웠고, 감히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설레는 기분도 강했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수아’의 느낌을 내가 표현하고 만들어 나간다는 설렘이 정말 셌던 거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결과가 어찌돼든 뛰어들어서 해보자고 결심했고, 그래서 나 자신에게 깐깐하게 군 역할이기도 하다.
첫 스릴러 작품이다. 장르적인 부분에 있어서 어떤 점에 특히 포인트를 뒀나?
사실 장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 안했던 것 같다. 난 <블라인드>가 ‘드라마’가 정말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캐릭터가 정말 셌다. 그래서 내 캐릭터를 이 상황 안에서, 이 스릴러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것만 생각하면서 갔다. 기타 상황들은 감독님이나 주변에서 만들어 주는 부분인 것 같고. 내 입장에서는 일단 ‘수아’가 제대로 서 있어야 모든 상황이 제대로 구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 중점을 뒀다.
모 포털 사이트에 뜬 프로필 성격을 보니 ‘감정 기복이 심함’ 이라고 나와 있더라. 실제 그런가? 그렇다면 ‘수아’를 표현하는데 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감정 기복은 어릴 때 정말 심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차분해 진 것 같은데…. (웃음) 감정 기복이라는 게 호불호가 확실하고, 기쁠 때와 슬플 때가 명확하다는 걸 말하는 것 같다. 각각의 상황에 따른 감정의 폭이 넓은 걸 뜻하는 거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기뻐하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슬퍼하고… 이런 느낌? 그런 내 성향이 연기에는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공황장애는 그 부분만 너무 부각되는 것 같아서 이젠 인터뷰 할 때 거의 얘기 안 한다. 그건 영화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원래 갖고 있었던 거거든. 영화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건 사실이고… 실은 지금도 잘 못 잔다. ‘수아’를 만나고부터 4~5개월 동안 ‘수아’인 채로 살아서 그런 것 같다. ‘수아’에게 몰입하다보니까 빛이 사라진 밤 시간대에 더더욱 ‘수아’에게 다가갈 수 있고, 그녀가 이해되더라. 암흑 속에서 생각하는 ‘수아’에 대한 이미지가 낮보다 한층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거다. 그래서 ‘수아’처럼 앞을 못 본다는 게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못 잤다. 무서운 느낌, 답답한 느낌 때문에 이불을 자꾸 걷는다.
‘수아’는 이불을 덮으나 걷으나 똑같은 어둠이지 않나? 아, 그러고 보니 그 대사도 생각나네.
(동시에) “난 낮이나 밤이나 똑같아!” 그런데 진짜 그렇잖나, ‘수아’는.
극 중 ‘수아’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게다가 경찰대 출신에, 뛰어난 감을 가진.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갔나.
영화 촬영 전부터 시각장애인들을 만나며, 그들이 받는 느낌과 행동을 가까이에서 보고 익혔다. 시각장애인에 관한 책을 읽고,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상을 보고, 대화도 많이 나눴다. 사실 ‘수아’라는 캐릭터가 함부로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조심스럽게 캐릭터에 다가가려 애썼다.
시각 장애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포인트를 둔 부분은 뭔가? 참고한 영상이나 캐릭터가 있나?
안 그래도 다른 연기자들은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연기했는지 궁금해서 많이 찾아봤다. 특히 외화를 많이 봤다. <여인의 향기> <어두워질 때까지> <블랙> 같은 작품들…. 한국작품은 영화보다 다큐멘터리나 단편드라마를 많이 봤다.
촬영 당시 안상훈 감독이 특별히 요구한 건 없었나?
감독님이 내게 요구했던 건 “가라앉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캐릭터 영향을 받아서인지 내 목소리 톤이 자꾸만 다운되더라. 감독님이 “조금 더 당차게 올라왔으면 좋겠다”라고도 말했는데, 영화 촬영 후 편집물을 보니까 정말 전반적으로 좀 가라앉아 있더라. 그래도 밝고 씩씩한 ‘수아’를 만들려고 애썼다.
극 중 ‘수아’의 뒷모습 씬이 많다. 그건 아무리 밝고 씩씩한 ‘수아’여도 그녀가 지닌 어쩔 수 없는 아픔을 얘기하는 건가 싶더라. 뒷모습도 연기자가 책임져야 하는 연기의 한 부분이 아닌가 해서 묻는 거다.
그럼, 뒷모습 연기도 연기다. 뒷모습 씬처럼 내 얼굴이 직접 노출되지 않는 다른 씬들을 촬영할 때, 단 한 번도 그냥 나(김하늘)인 것처럼 눈에 초점을 두어 앞을 보고 연기한 적은 없었다. ‘수아’의 손을 클로즈업으로 잡든, 발을 찍든, 뒷모습을 찍든… 난 늘 ‘수아’인 채로 연기했던 것 같다.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몰입도가 높았네. ‘수아’에 집중해서 생긴 에피소드는 없나?
촬영장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는데, ‘슬기(애완견 달이)’랑 등장한 초반 씬을 찍을 때였다. 난 항상 “컷!”소리와 함께 촬영이 끝나면 내 연기를 체크하러 바로 모니터로 달려가거든. 그때도 그랬다. 그런데 어우! 무슨 물체에 걸려서 모니터로 달려가는 순간 넘어졌다. ‘수아’에 너무 몰입해 바로 눈앞의 물체를 인지를 못했던 거지. 그때 바닥에 엎어져서 무릎에 멍이 들었는데, 감독님한테 바로 가서 “(극에 완전히 몰입한 것 같아)너무 기분 좋다”고 말했던 것 같다.(웃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촉각! 난 촉감을 좋아하거든. 제일 좋아하는 감각이다.
왜?
음, 이렇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말하긴 좀 그런데…. (뜸 들인다) 그냥 툭 얘기할게.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난, 사람이 죽은 후에 들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영(靈)’이 있다고 믿는 건가?
응. 그런데 죽은 사람이 촉감을 인지할 순 없을 것 같다. 이거 좀 이상하게 들리려나? 어쨌든, 그만큼 난 촉감을 전할 수 있는 촉각이 굉장히 중요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느끼는 촉감 이런 것이. 또, ‘촉감’이라는 단어 자체가 왠지 내겐 굉장히 애틋하다.
‘누나들의 로망’ 유승호와 호흡을 맞췄다. 어땠나?
승호 어릴 때 작품들 보면서 나도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고, 좋아했다. 연기하면서도 편하고 좋았다. 그 친구가 ‘기섭’을 어떻게 연기할 지 궁금했었고, 촬영장에서 승호가 ‘기섭’ 연기를 할 땐 느낌이 매우 새롭더라. 함께 연기하면서 신선하고 좋았다.
안내견 ‘슬기’로 출연한 달이와의 호흡은? 시사회 현장에선 호흡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것 같던데?
(웃음) 아니, 달이가 워낙 주인을 좋아해서 그때 그런 거다. (언론 시사일, 김하늘-달이의 투 샷 촬영 시 달이가 말을 듣지 않아 김하늘이 애를 먹었다) 촬영장에선 달이와 호흡이 너무 좋았다. 달이가 연기를 워낙 잘한다. 특히 ‘슬기’가 ‘수아’를 구하는 씬에서는 그런 느낌을 잘 살리더라고. 영화 보면 좋지 않나. 나도 개인적으로 동물을 좋아해서 촬영 내내 달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기특했다. 달이 덕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시각 장애를 체험하는 전시 <어둠 속의 대화>도 체험했다면서? 나도 얼마 전 다녀왔다. 어땠나, 영화에 도움이 많이 됐나?
충격이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전시체험을 했는데, ‘수아가 이런 느낌이겠구나’, ‘눈이 안보이면 이토록 깜깜하구나’… 이렇게 어둠의 느낌이 직접적으로 와 닿더라. 전시공간은 100% 암전이었다. 조금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완전한 어둠은 처음이었다. 완전한 어둠을 겪고 나니, 시각장애인들이 평소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는지 알 수 있었다. 1시간 반(체험시간)이 30분처럼 짧게 느껴지더라. 전시 체험했다고 했지? (긍정) ‘수아’는 그 느낌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친구다.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으로, 범인에 맞선 ‘수아’가 빛을 없애려고 일부러 정전을 유도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 나 그 장면 너무 좋았다. ‘수아’ 입장에서 너무 공감 가는 장면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시각장애인이 더 강하니까. ‘수아’는 그걸 알고 빛을 없앤 거다. 그 장면은 ‘수아’의 강함과 현명함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앞으로 또 다시 시각장애인 역할이 들어온다면?
글쎄…. 난 이번 역할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인터뷰 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무척 매력 있었다. 그래서 안 한다는 말은 못할 것 같다. 아마 다시 시각장애인 역을 맡는다면, ‘수아’와는 또 다른 인물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좀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매력이 컸다는 말인가?
맞다. <블라인드>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맛이 강했던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로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대다수다. 가령, <7급 공무원>의 ‘수지’ 같은 경우는 좀 과격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과격한 사람도 있을 것 같고, 내가 그렇게 과격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수아’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가 아니지 않나. 그런 캐릭터를 표현한다는 데 짜릿함이 있었던 것 같다.
글쎄, 우선 미성년자는 못 본다.(웃음) (<블라인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영화가 스릴러다 보니까 로맨틱 코미디처럼 선뜻 권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그래도 모두가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스릴런데 따뜻하거든.
시각장애인들도 영화 해설 도우미와 함께하면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들에게도 <블라인드>를 추천할 수 있을까?
그럼! 자신 있다, 그 부분은. 왜냐면 영화 촬영 전 시각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들은 <블라인드> ‘수아’ 같은 부분을 원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물 속에서 시각장애인은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다른 이들이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그들은 그런 걸 원치 않았거든. 시각장애인들은 자신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표현되길 원한다. 난 <블라인드>에서 그들이 원하는 그런 캐릭터, 밝고 강한 ‘수아’를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반가워하지 않을까.
‘연예인’ 김하늘의 시작은 ‘스톰’ 전속모델이었다. 당시에 꽤 중성적인 이미지였다. 그래서인지 남자 팬 못지않게 여자 팬도 많은 여배우이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응, 그 얘기 정말 많이 들었다. 그리고 뭐, 지금도 여성 팬이 더 많은 것 같다. (웃음) 그렇긴 한데… 글쎄, 나는 중성적이라는 느낌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데뷔 초에는 다듬어지지 않았고,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래도 스스로 많이 다듬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갈수록 여성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래? 나 (데뷔)초반이 더 여성스럽지 않았나? (웃음)
처음부터 배우가 꿈은 아니었다면서. 김하늘이 배우를 안했으면 뭘 했을까?
음… 그러게, 김하늘 뭘 했을까…. 그냥 평범했을 것 같다. 평범하게 결혼하고,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꿈(평범하게 살고 싶은)을 꾸고 있다고 봐도 되나?
아니, 그렇진 않다. 그냥 지금 내 모습이 딱 만족스럽다.
얼마 전 KBS 예능 ‘1박 2일-여배우 편’에 출연하며 호응을 얻었다. 평소 김하늘은 예능 프로 출연이 흔한 타입은 아닌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게다가 야외 촬영인데?
개인적으로 여행을 너무 좋아한다. 특히 국내 여행. 그리고 평소에도 ‘1박2일’을 즐겨 봤고, 그 프로그램이 우리나라 곳곳을 도는 프로그램 아닌가. 그냥 평소에 친구들하고 여행가는 느낌으로 생각했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 중 원래 알고 지냈던 배우가 있나? 여배우들 간의 기 싸움(?) 등 긴장감도 있었을 법 한데?
원래부터 친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긴장감, 기싸움 같은 게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거기 출연해야겠다고 결심한 다른 배우들도 다 나와 같은 마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한 번 재미있게 같이 놀자!’ 이런 느낌? 그런데 선배님들이 좀 많으셔서 완전히 흐트러져서 놀진 못했다. (웃음)
‘1박 2일’ 출연을 후회하진 않나? 혹은 반대로, 득 된 게 있나?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득이라면 다른 여배우들과 더 가까워지게 됐다는 걸 들 수 있지. 지금도 다들 연락하고 지낸다.
아, 그렇구나! 사실 난 그 부분은 많이 생각 안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끌리는 작품을 선택했던 건데….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작품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고르나?
우선 재미와 완성도를 보고, 그 안에서 캐릭터를 본다. 난 정말 캐릭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나리오가 재밌고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해도, 내가 캐릭터에 매력을 못 느끼면 작품을 선택하지 않게 되더라.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 ‘김하늘을 대표하는 작품’ 하나만 고른다면? 이를테면 한국의 김하늘을 모르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에게 단 한 작품만으로 본인을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우, 뭐야!(웃으며 손사래) 음… 개인적으론 <그녀를 믿지마세요>의 ‘영주(극중 사기극을 벌이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내가 너무 사기꾼처럼 비춰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웃음) 글쎄…, <블라인드>가 제일 편하지 않을까. 캐릭터 특성상 상대적으로 연기력이 부각되는 작품이니까.
그렇다면 출연작 중 가장 본인과 닮은 캐릭터는?
일단 ‘수아’랑은 닮지 않은 것 같고…. 그 외에는 굉장히 많다. <7급 공무원> ‘수지’도 비슷하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 ‘영주’ 성향도 있고, <동갑내기 과외하기> ‘수완’ 같은 부분도 있고, 좀 어릴 땐 <동감>의 ‘소은’ 같았던 것도 같고…. 캐릭터별로 다 조금씩 닮은 부분이 있는 같다.
현재 영화 <너는 펫>(감독 김병곤) ‘지은이’ 역을 맡아 촬영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블라인드> ‘수아’와의 차이를 들어 소개 좀 해 달라.
‘수아’랑은 완전히 다른 친구다. ‘지은이’는 결혼을 뒤로 미루고, 자기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가는 요즘 여성과 많이 비슷한 것 같다. 일은 똑부러지게 하는 요즘 여성들, 의외로 사랑에는 좀 서툰 부분이 있기도 하지 않나. ‘지은이’는 그런 부분을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 같다.
<블라인드>와 <너는 펫>처럼 전작과 차기작의 갭이 클 경우, 이를 어떻게 메우나?
현장 분위기가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내가 ‘수아’ 옷을 입고 ‘수아’ 머리를 하고 <블라인드> 현장에 가면 저절로 ‘수아’ 느낌이 나온다. 그러니까 현장 분위기가 자연스레 나를 ‘수아’로 만들어 주는 부분이 있는 거다. 그런 걸 공기라고 해야 하나? 그래, 작품마다 촬영장 공기가 다른 것 같다. 내가 <너는 펫> ‘지은이’로 빨리 전환해 촬영할 수 있었던 이유가, <블라인드> 때와는 공기 자체가, 현장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블라인드> 촬영장에서 ‘수아’였던 내가, 다시 ‘지은이’에 맞는 옷을 입고 분장을 한 후 <너는 펫> 촬영장에 들어서면 느낌이 달라지는 거다.
공간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면, 현실과 연기의 구분도 뚜렷할 것 같다. 일상생활과 배우활동, 이분법이 뚜렷한 편인가?
응, 뚜렷하다. 연기할 땐 정말 연기자고, 평상시엔 그냥 ‘김하늘’이다. 그냥 스스로 느끼기에 연기자와 평소 김하늘이 다른 것 같다.
여유가 생기면 주로 뭘 하나? 김하늘이 혼자 있을 땐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다.
나 성향이 좀 바뀐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생활하는 걸 좋아해서 거의 집에만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밖에서 사람들 만나고, 늘 활기차야 하는 일이니까. 그게 힘든 부분이 있어서 혼자 쉴 때는 주로 정적인 편이었다. 그런데 차차 성향이 바뀌었다. 일적인 부분을 떠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내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게 되더라. 그래서 요즘엔 동적으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사람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가고. 아, 난 정말 여행을 너무 좋아해! 시간 날 때마다 여행을 한다니까.
최근엔 아무데도 못 갔다!(낙심한다) 난 한 시간 정도만 시내 외곽을 돌고 와도 에너지를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엔 그렇게 잠시 여행갈 짬도 없으니까 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로케촬영도 좋아하는 편인데, 최근엔 로케도 없다. 다 세트촬영이라니까.(웃음) 그래서 요즘 너무 갑갑하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지….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책이 아닐까. 책은 좋아하나?
책 너무 좋아하는데, 읽을 시간이 없어서 문제다. 요즘엔 도통 짬이 안 나서 그냥 ‘아, 교보문고 가고 싶다’ 이런 생각 한다. 사실 난 촬영 후라든가, 고민이나 생각이 많을 때, 또 머리가 아플 때 주로 책을 꺼내든다. 책을 읽으면 머리가 정화되면서 생각들이 선명해진다. 음, 그러니까 음악 들을 때나 여행 갔을 때의 느낌이랑 비슷하다. 사실 음악이나 여행을 통해 받는 느낌 보다 책을 통해 받는 느낌이 좀 더 정교하고 세게 다가오는 것 같다. 전에 읽었던 책은 그 느낌을 알고 있고, 끊어 읽지 않고 빠른 속도로 훑을 수 있으니까 좋다.
사람들이 김하늘을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나?
적어도 자기 몫을 충실히 해 나가는 배우라고 기억해줬으면 한다. 김하늘 하면, 그래도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해선 누구보다 충실히 하려고 하는 배우라고 말이다.
연기에서든 인생에서든, 롤 모델이 있나?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은 인간적인 면에서 너무나 닮고 싶은 사람이다. 감히 그녀를 따라갈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녀를 보여주는 책이 꽤 출판된 걸로 아는데, 많이 찾아 읽었다. 오드리 헵번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낀 점들을 자식한테 해준 이야기라든지, 배우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느끼는 디테일한 감정들, 그리고 그녀를 평가하는 주변의 감독·배우·스텝들의 이야기들에 관한 이야기들 말이다. 외적으로 보이는 오드리 헵번의 연기나 선행활동보다, 그녀가 한평생 살면서 갖고 있던 가치관, 그녀만의 마인드가 너무 좋았다. 따뜻하더라. 존경스럽다고 해야 하나.
따뜻한 느낌, 온기를 중시하네. 아까도 감각 중에서 촉각을 제일로 치고.
응, 난 따뜻한 느낌이 좋다. 배우로선 세련된 느낌이 좋겠지만, 사람으로선 따뜻한 느낌이 더 좋다. 내가 촉감, 촉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나는 여자 친구들과 스킨십 하는 것조차 꺼려했다. 특히 왜, 그 미국식 스킨십 같은 거 있지 않나. 그런 진한 스킨십은 부담스럽고 거북해서 싫어했다. 그런데 요즘엔 내가 먼저 많이 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을 안았을 때의 느낌이 좋더라. 특히 아기, 아이들을 안았을 때의 느낌이 정말 좋다. 이제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면 와락 안아주고 싶고 이런 마음이 절로 든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따뜻한 느낌, 말을 하지 않고도 느끼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걸 깨우쳐가는 것 같다.
그건 나이 먹어가면서 느끼는 좋은 점일까?
응, 나이 먹는 게 썩 좋지만은 않지만, 굳이 꼽자면 그렇지.(사이) 솔직히 나이 먹는 게 뭐 좋겠나. (웃음)
솔직하네.(웃음) 그런데 그동안 정말 ‘수아’로 살면서 외로웠나보다. 온기, 사람, 촉감에 대한 얘기에서 특히 생기가 넘친다.
응. 촉감으로 만나는 사람들… 그런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블라인드> 촬영을 통해 느꼈다. 그래서 요즘엔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어’,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미소)
2011년 8월 11일 목요일 | 글_유다연 기자(무비스트)
2011년 8월 11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