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두 번째이긴 하지만 개봉하는 건 처음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촌스러운 느낌이다. 요즘 내가 너무 촌스럽게 느껴진다.(웃음) 익숙하지 않아서 뭔가 다 엉성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때 처음 공개됐다. 노래를 하는 무대도 있었지만, 영화제라는 특성상 더 긴장되기도 했겠다.
너무 힘들었다. 노래를 하고 있어도 음악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영화 작업의 연장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더 힘들게 느껴졌다.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떻던가?
신기하고 창피했다. 부산에서 큰 화면으로 보니…, 더 많이 신기하고 더 많이 창피했다.(웃음)
<카페 느와르> 이후 두 번째 작품인데, 연기자로서 스스로를 평가 해본다면?
그냥 부끄러울 뿐이다. 평가 이전에 부끄러워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잘했던 점도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 어떻게 영화에 출연하게 됐나?
정성일 감독님이 내 공연 동영상을 보고 은하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면서 나한테 연락을 했었다. 근데 처음에는 무서워서 계속 도망만 다녔다.(웃음)
그래도 결국 출연을 결정했다.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라도 있었나?
내가 홈페이지에 글이랑 사진을 올리는데, 영화 속 내 대사들이 전부 내가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출연하면 안 되는 이유도 몇 가지 말했었다. 나는 연기를 해본 적도 없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연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캐스팅을 하려는 거라고 하더라. 너무 확고하게 내가 꼭 해야 한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래서 나 스스로는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지만 감독님이 그런 믿음을 주니까 한 번 믿어보자 싶었다. 나한테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감독님한테 확신이 있어서 하게 됐다.
<카페 느와르>를 찍고 나서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오면 잘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던가?
할 수 있겠다는 아니고, 그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행복했었으니까. 그랬는데 또 기회가 와서 또 너무 행복했다. 작업하는 과정 그 자체가 너무너무 행복했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줘서 읽어봤는데, 그 때는 내가 맡은 역할이 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근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왠지 혜영 역할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 자체가 나랑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영화와 비교해서도 좋았다. 영화가 아닌, 글로만 읽어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김종관 감독과 주로 어떤 얘기를 나눴나?
많은 얘기를 했다. 캐스팅이 확정되고 나서 음악도 내가 맡았으니까 음악적인 부분에 관한 얘기도 많이 했다. 또 둘 다 술을 좋아해서 얘기할 자리도 많았다. 술 좋아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데 자작하는 버릇도 똑같아서 더 좋았다. 나는 술을 마시면 내 잔에 술이 비면 그냥 혼자 따라 마시는 게 버릇인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불편해하더라.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왜 그러냐며 나를 가엽게 여기더라. 때론 자작하면 앞 사람이 3년 동안 재수가 없다면서 앞 사람이 괜히 화내고 그랬다.(웃음) 근데 감독님이랑 술 먹는데 감독님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작을 해서 너무 편하고 좋았다. 그러면서 편하게 각자 체험했던 사랑 얘기도 하면서 영화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이 생겼다.
감독과 얘기를 하기 전에, 스스로 혜영을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했나?
일단 나랑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다 똑같지는 않지만 30대 초반의 인디밴드를 하는 캐릭터 자체 설정들이 비슷했다. 그것도 그렇고 처음에는 나름 되게 열정적이고 명랑하고 반짝반짝 거리던 그런 여자애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연애를 하면서 상처받고 또 다시 연애하고 하면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고, 나이도 이제 30살이 되면서 점점 생기가 없어지고, 심드렁해지고, 시니컬해진…, 나도 아마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감정이입이 많이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촬영하는 내내 스스로도 다운이 많이 됐었다.
실제로도 좀 심드렁하고 시니컬한 편인가?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좀 그렇다. 실제로 그렇게 밝은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면이 있다. 근데 사실 공연할 때는 그런 면이 도움이 되지 않잖나. 그래서 공연할 때는 나의 그런 본성을 다른 데 둔다. 밝고 활발하고 긍정적인 면들, 웃긴 면들만 꺼내서 한 시간 공연을 한다. 근데 역설적으로 공연할 때마다 한 쪽에 치워놨던 나의 또 다른 면을 영화에 가져다 쓸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되게 하고 싶었던 얘기였거든. 근데 노래는 긍정적으로 하려고 하는 편이라서 그러지 못했다. 좋은 노래가 사람들을 힘나게 하니까. 근데 가끔은 “내 마음은 너덜너덜 걸레가 됐시유” 이런 노래도 하고 싶었다. 주춤주춤하던 찰나에 그런 역할을 맡게 돼서 스스로도 더 캐릭터에 맞춰서 우울하게 지냈다. 근데 또 다르게 얘기하면 행복했던 시간이다. 미뤄놨던 또 다른 나의 속내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요즘에는 희극적인 게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코미디언이나 개그맨들 보면 너무 존경스럽다. 노래할 때 웃을 맛 하나도 안 나도 억지로 웃으며 노래한다. 오히려 슬픈 노래가 표현하기 수월할 것 같기도 한데…. 물론 그것도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음악 작업에도 변화가 있었다. 우울한 노래를 써본 적이 없었는데 영화를 찍는 동안 우울한 음악을 작업해 회사에 가져갔더니 다들 “무슨 일 있었어?”라며 놀라더라. 그러면서 “옛날에 너는 반짝반짝 거렸잖아? 왜 이렇게 변했어?”라고도 하더라. 근데 사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반짝반짝함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또 다른 게 생겼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아마 극중 혜영이도 그러지 않았을까?
시간의 문제인 것도 같다. 반짝반짝하던 20대와 또 다른 것을 알기 시작한 30대의 중간이잖나. 나이를 먹으면서 좀 달라지는 자신을 느끼기도 하나?
나는 혜영이의 대사에도 공감이 가지만 희석씨의 대사에도 공감 가는 게 많았다. 30살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분명 양쪽에서 오는 느낌을 다 받고 있는 것 같다.
극 중 혜영(요조)과 주영(윤희석)은 너무 잘 어울리더라.
너무 좋았다. 나름 첫 남자 상대 배우잖나. <카페 느와르> 때는 상대 배우 없이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캐릭터였으니까. 그래서 첫 상대 배우였는데 너무 여러 가지로 잘 이끌어주고 배려해줬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잘은 모르지만 배우들 사이에는 같이 연기를 해도 상대방보다 자기가 더 돋보이고 싶은 일종의 기싸움 같은 게 있잖나. 비록 내가 발연기였지만(웃음) 희석 오빠 덕에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고맙다. 고마운 거 얘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근데 영화 촬영 끝나고 너무 바빠서 그 뒤의 일정을 나 혼자 외롭게 하게 한 건 괘심하다.(웃음) 만나면 만날 “너는 노래만 하지 왜 연기도 해서 남의 밥줄을 끊으려고 하냐”며 뭐라고 한다.(웃음)
영화 속 에피소드 중에서 혜영과 주영의 남산 에피소드가 특히 인상적이더라. 남산의 아름다운 낙엽길이나 솔직한 대사들도 와 닿고.
촬영할 때 정말 좋았다. 촬영할 때마다 감독님이랑 희석 오빠랑 셋이서 얘기를 많이 했다. 영화에서 희석 오빠 대사 중에 이상한 단어(남자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지칭하는 말)있잖나? 그것도 그 자리에서 그냥 감독님이 정해서 한 거다. 둘이 낄낄거리면서 나를 가운데 놓고 어찌나 깐족대던지. 리허설 때 좀 더 깐족거리게 하다가 그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왔는데 감독님이 오케이를 줬다. 다른 커트도 찍었는데 리허설 장면이 선택됐다. 리허설 때 희석 오빠가 대사도 깜빡깜빡해서 “그 뭐냐, 그거” 뭐 이러면서 말도 대충하고 그랬는데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나도 그 단어를 막상 들었을 때는 경멸하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그 단어가 나올 것을 미리 아니까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안 나오더라. 그래서 리허설 커트가 영화에 쓰이기도 했다.
저예산 독립영화인데다가 에피소드별로 촬영해서 여유는 없었을 것 같다. 현장에서 힘든 점은 없었고?
촬영할 때는 되게 힘들게 한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다 좋았다, 정말로. 내가 추위에 약한데 가을 설정이어서 옷을 가볍게 입느라 안에 핫팩을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도 다 재미있었다. 또 예쁜 낙엽길을 걸어야 하는데 아저씨들이 너무 청소를 잘 하셔서 매번 스탭들이 낙엽 주워서 다시 뿌리면서 촬영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완전 불만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더라.(웃음)
나도 궁금하다. 아직 안 해봐서 내가 어떻게 보일 지 궁금하다. 음악이랑 별개의 연기도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 아니면 음악이라는 것이 나한테 너무 진하게 배어 있어서 다른 연기는 어색하게 보일까? 나 역시도 너무 궁금하다.
지인들이나 주변에 음악하는 동료들은 연기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던가.
역시 넌 노래할 때가 제일 예쁘다고. 아무래도 친구들이라 그런지 연기하는 걸 보면 웃긴 모양이더라. 되게 진지하게 했는데 계속 웃기나 하고.(웃음)
음악이랑 영화, 병행하고 싶다는 욕심이 드나?
만약 병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뭔가를 오래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잘 하고 싶은데 사실은 내가 연기를 잘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좀 달랐다. <카페 느와르>도 감독님의 주문은 “연기하지 마라”였다. 그냥 무대 위에서 노래하듯이 하라고. 나한테는 리딩도 안 시키고 아무것도 안 시켰다. 연기 연습도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니까. <조금만 더 가까이>도 솔직히 원래 내 모습과 너무 부합되는 면이 많잖나. 그러니까 아직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나한테 맞춰지거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는데, 나랑 완전히 동떨어진 그런 캐릭터를 한다면…. 물론 하고 싶다. 근데 할 수 있을 지 솔직히 모르겠다. 노래도 잘 하고 싶고 춤도 잘 추고 싶지만 노래도 안 되고 춤도 안 되는 사람이 많듯, 연기도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또 다시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얘긴데?
너무 행복했었다. 근데 조심스럽기도 하다.
막 시작하는 10대 연기자라면 과감하게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사람으로서 다른 분야를 시작하는 입장이라 조심스러울 만도 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진짜, 순수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다. 근데 이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욕심꾸러기로 보일 수도 있다. “노래나 잘 해라” 뭐 이런 식의 꼬인 생각을 할까봐 걱정도 된다. 또 아직은 배우라는 호칭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고 싶지만 쉽사리 “네! 꼭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얘기는 못하겠다. 마음속으로 짝사랑만 하고 있다.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람이 어떤 이미지가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굉장한 강점이기도 하다.
내가 원래 소심하다. 트리플 A다. AAA 건전지.(웃음) 영화음악은 자신 있게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다. 너무너무 행복했다. 같이 작업하는 게 좋았다. 어찌됐던 내 음악은 내 마음대로 하면 되지만 영화음악은 영화에 맞아야 되고 감독님이나 음악감독님에게 검사 비슷하게 중간 점검도 받으면서 해야 되잖나. 내가 막무가내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근데 그렇게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 음악할 때는 다 혼자 하니까. 아무도 모르는 내 얘기를 내가 끄집어내서 작곡도 하고 혼자 가사도 쓰고. 그게 창조적인 면에서도 되게 외로운 일이다. 영화 작업은 다 같이 부대끼면서 하니까 좋았다. 밴드 같은 느낌이랄까? 또 김종관 감독님이 가사 욕심이 많아서 자꾸 이상한 거 써와서 주고 그랬다. “어때?” 그러면 “이상한데요”라고 해줬다.(웃음) 감독님이 어떤 얘기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했다. 멜로디 쓸 때도 음악 감독님이 이런 식의 멜로디, 이런 식의 코드 진행이 좋을 것 같다고 얘기를 해준다. 그러니까 안 외롭더라. 가사도 같이 보고, 곡도 들려주고 같이 수정하는 식으로. 내가 밴드를 하는 게 꿈인데, 마치 밴드를 하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아니 둘 다 좋다. 둘 다 너무 하고 싶고 좋아한다. 근데 이런 거다. 배우에 대해서는 “나 너 좋아해”라고 말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거고, 영화음악한테는 “우리 사귀자”라고 바로 대쉬할 수 있는, 그런 거다.(웃음)
출연하는 배우가 그 느낌으로 음악을 만들고 노래까지 부른다면 좋을텐데.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우와…. 너무 좋을 것 같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더 효과가 좋다고 생각될 것 같다. 배우의 느낌을 음악으로도 전달할 수 있으니.
그걸 기사로 써줘야 한다.(웃음)
소심한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연기를 하면 제대로 즐기면서 하는 타입 같은데.
너무 행복한 작업이라 그렇다. 너무! 막! 진짜! 영화할 때는 어떤 이기적인 생각도 안 들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다거나 캐스팅 제의 들어왔을 때 조건을 따진다거나 하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진짜 그냥 좋았다. 물론 촬영하면서 춥고 힘드니까 투덜투덜은 했지만.(웃음) 근데 그 작업 자체는 진짜 돈보다 훨씬 더 소중한 일이었다. 그래서 스탭들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다들 나랑 같은 마음이라서 계속 힘들게 영화를 하는 거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걸 부산에서 ‘낚시 손맛’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게 기사로 나가면서 ‘요조, 이제 연기 맛 좀 봤죠’ 뭐 이런 식으로 나왔다.(웃음)
연기를 계속 해야 주성치랑 영화할 기회도 생기지 않겠나?(웃음)
내가 주성치를 너무 좋아하니까 예전에 그런 질문 받은 적이 있다. “주성치가 미녀 배우들과 영화를 많이 찍었는데, 만약 요조씨가 함께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냐”고. 그 질문을 받는데 진짜 한 3분 넘게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상상만 해도 너무 감격스럽고 좋아서.(웃음)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역은 주성치 영화에 만날 나오는 여장한 남자 역할 같은 거다. 남장해서 웃기는 연기 해보고 싶다.
희극적인 요소가 존경스럽다고 했는데, 웃기는 연기 잘 할 수 있겠나?
아우~!! 주성치랑 같이 하는데?!(웃음) 나는 나무라도 하겠다. 돌 이런 것도 좋고!
나는 음악할 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반에 인터뷰할 때, “요조씨는 음악할 때 어디서 영감을 받느냐”고 질문을 하면 주성치 영화라고 답했다. 보통 음악하는 사람들은 우상이 있잖나? 비틀즈나 마돈나 등등. 근데 나는 주성치라고 하니까 주성치는 음악 안 하지 않냐고 한다. 근데 <소림축구>에서 노래 부른다. 호텔 캘리포니아! (휴대폰을 들고)들어봐라. 벨소리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 (음악이 나오자)거 봐라 주성치도 노래하잖나.(웃음)
잔인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주성치 영화중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꼽아 본다면?
제일 자주 보는 건 <소림축구>다. 나를 뒤집어지게 하는 코드가 많이 있다. 제일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는 <희극지왕>. 가장 두려운 건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이다.
두렵다니? 무슨 의미인가?
내가 원래 슬픔을 좀 무서워한다. 그래서 슬퍼지는 게 너무 싫다. 슬픈 영화도 잘 안 보고. 근데 <서유기>를 어렸을 때 봤는데, 너무너무 슬펐고 당시의 나한테는 좀 어려웠다. 그래서 뭔가 굉장히 슬픈데 확실히 이해가 안 가니까 나중에 커서 다시 봐야지 했다. 근데 지금 다시 못 보겠는 거다. 그 슬픔이 아직도 생각 나서. 그래서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언젠가 큰 맘 먹고 봐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월광보합>을 보며 미친 듯이 웃다가 <선리기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주성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초반에 모든 것에 주성치라고 답했다. 어떻게 음악을 하고 싶나? 주성치처럼 하고 싶다. 영감은 어디서 얻나? 주성치의 영화. 모든 게 다 주성치. 그때는 이상형도 주성치였다.
이걸 주성치가 알아야 되는데.
이런 적도 있었다. 내가 주성치 티셔츠를 팔 때 초상권 문제가 있을 거라고 하더라. 난 오히려 걸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럼 나의 존재를 아실 테니까. 걸려라.(웃음) 근데 연락 한 번이 없더라.
나를 혹사시키면서 쾌감을 얻는 걸 하고 있다. 나한테 제약을 거는 거다. 채식만 해.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를 해보고 있다. 근체 채식은 정말 안 될 것 같다. 고기 너무 좋아한다. 술도 먹어야 되는데 절대 안 되지.(웃음) 그리고 또 남 뒷담화 안하기도 하고 있다. 이것도 엄청 힘들다. 이 제약을 걸고 있던 와중에 전주에서 연극을 본 적이 있다. 근데 연극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같이 본 사람한테 그 얘기를 하고 싶어 죽겠는 거다. 연극에 대해서 막 비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거려서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웃음) 너무 힘들어 하다가 결국 했다. 술 먹고. 그것도 연극본지 한 3~4시간 뒤에 열변을 토하면서.(웃음)
영화를 하게 되더라도 음악 작업이나 공연에는 변함이 없겠지?
물론. 음악 작업 계속 하고 공연도 간간히 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 썼던 음악을 따로 발매하려고 작업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 음악은 영화에 맞춰져 있다 보니 이미지 나올 때에 맞춰서 길이를 늘이고 그랬다. 근데 노래만 들을 때는 노래에 맞게 3~4분 정도로 줄여야 하니까.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
열심히 찍었고,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가까이>는 어떤 의미인가?
음…, 음…, 어떤…, 어떤…, 하나의 유기체 같다. 진짜 유기체. 그래서 내가 얘를 살아있는 애라고 생각한다. 일, 작업 이런 차원이 아니라 인연 같은 단어를 붙여야 될 것 같은 느낌? 사실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얘한테 고마워해야 할 부분이 있다. 살아 있는 대상한테 하는 그런 고마운 느낌. 하나의 인격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영화 찍은 것도 그 친구를 알아갔던 시간 같고, 또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마음껏 우울할 수 있고, 우울한 노래도 썼고, 이런 게 이 친구한테 받은 도움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생명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너무 고마운 친구다.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