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28일 개봉했다. 개봉하고 나서 하는 인터뷰라 느낌이 다를 것도 같다.
이게 낫다. 사실 개봉하고 나서 해야 맞지. 개봉하기 전에 하면 하는 얘기 빤하니까.
영화를 여러 편 했지만 역시나 개봉 날에는 숫자에 다소 민감했을 텐데.
부담은 전혀 없었다. 기대는…, 뭐 기대까지는 아니고 영화 나온 대로 결과 나오는 거니까…. 그대로 나오는 거지 뭐.(웃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시크릿>에 이어서 계속 어두운 캐릭터를 맡고 있다. 게다가 차기작들 역시 비슷하다. 이러다가 코믹한 캐릭터가 낯설어지는 거 아닌가 싶다.
뭐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코믹한 캐릭터는 너무 많이 해서 이제 좀 재미가 없더라.
하긴 외모로는 이런 어둡고 센 캐릭터가 잘 맞기도 하다. 무표정 할 때는 무서운 느낌도 있고, 카리스마도 넘치니까.
근데 그런 거 있잖나. 웃고 싶을 때는 웃어야 되는데 코미디는 안 그러니까 힘들다. 그냥 “하하하”하고 웃어도 되는데, 코미디는 더 크게 오버해서 웃어야 되니까. 그런 게 더 스트레스일 때도 있다. 요즘은 그런 게 좀 싫더라. 나이 들어서 그런 거 하기도 좀 그렇고, 재미도 없고. 가끔 예전에 같이 작업했던 감독들하고 또 할 거냐고 묻기도 하는데, 전혀 아니다. 전~~~혀. 같이 하고 싶은 생각 단 0.0000000001%도 없다.(웃음)
이준익 감독하고의 작업은 어땠나?
좋았다. 이준익 감독님은 나랑 되게 잘 맞았다. 이 영화도 이준익 감독님 때문에 하게 된 거다. 단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준익 감독님이다.
이준익 감독과는 캐릭터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주로 나눴나?
처음에만 조금 얘기를 하고 그 뒤로는 안 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의 성>의 미후네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 비슷한 얼굴이 나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로테스크하게. 근데 좀 소프트하게 나온 것 같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사실 시나리오는 별로였다. 공감 가는 내용이 아니었다. 재미도 별로였고. 그래서 얘기를 많이 했다. 무조건 시나리오 재미없다, 이해도 안 된다고 하면서.(웃음) 근데 이몽학이 갖고 있는 야망이나 욕망은 좋았다. 어떻게 풀리느냐가 문제였다. 사람들이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떤 게 돌파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다면 실제로 난 이몽학에 가까운 인물이다. 허허실실 같은 건 못한다. 어딘가로 치닫고 하는 게 더 강했으면 싶었다. 더 잔인하게 그리고 싶었다.
송곳니도 그래서 한 거다. 더 악하게 보이려고. 상황을 즐기는 건 아닌데, 명분에 의해서 사람을 죽이니까. 물론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니다. 내가 사람들을 어떻게 죽이냐에 따라서 나를 따르는 수하들도 영향을 받는다. 감독님과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다. 과연 이몽학이라는 사람과 뜻을 함께 해서 그를 따르는 건지, 아니면 이몽학이 정말 무섭고 두려운 존재여서 따르는 건지. 난 아직도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근데 감독님은 전자라고 했다. 하지만 난 후자 쪽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뜻만 맞다고 함께 가나? 어느 순간 이몽학이 눈도 이상하게 변하고 하니까 이 사람을 안 따르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이몽학한테는 썩어빠진 나라를 구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었는데, 갈수록 사사로운 욕망에 사로잡혀 집단을 이끈다.
근데 개인적인 목적도 집단에 의해서 상사될 수 있다고 본다. 그 집단이라는 게 하나의 우두머리를 놓고 봤을 때, 우두머리가 집단을 지배하느냐 집단이 우두머리를 만드느냐는 서로 상호작용이 있어야 팽팽해진다고 본다. 근데 그런 것들이 조금 덜 표현된 것 같아 아쉽다.
집단이 이몽학을 왕으로 만드는 것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목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집단의 광기 같은 거다. 우두머리가 큰 뜻을 갖고 있으면, 그가 사람을 죽이던 뭘 하던 그건 다 옳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 사람이 꼭짓점이 돼서 모두가 광기로 치닫게 되는 거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그게 사사로운 목적인지도 모르게 되는 거지. 처음에는 포괄적으로 대의명분을 내세웠는데, 뒤에는 흐지부지되면서 아쉽게 그려진 감도 있다.
그래서 더 인상적인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궁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자 이몽학은 허탈해 한다.
그래서 이 사람한테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거다. 허망해 하는 것에 연민이 가는 거지. 모든 인물한테 그런 게 좀 있었어야 했는데.
원작에 비해서 황정학과 이몽학의 대결구도는 더 커졌다.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거다. 둘이 붙는 장면들이 설명이 부족하다. 과거에 어떤 사건들이 있어서 그것들이 계속 충돌하는 모습으로 이어지면 대결구도의 긴장감이 더 생겼을 거다. 근데 그런 부분이 생략됐다. 인물들 사이의 사건에 포커스가 맞춰졌어야 했는데, 너무 포괄적인 사건에 집중한 것 같다. 가지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두 사람의 검술 장면은 고속촬영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합이 잘 맞았다.
그것도 좀 아쉽다. 칼 쓰는 장면도 고속촬영이 많고 그런데, 칼이 가검이라서 난 안 좋은 점도 보이더라. 막 휘고 그러는 거. 그걸 차라리 컷을 많이 나눠서 빠르게 했으면 더 멋지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분량이 그 정도인 걸 알고 결정한 거다. 그냥 감독님하고 하고 싶어서 한 거라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사실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의 문제니까.
짧게 나오더라도 더 잔인하게 그려져서 강한 이미지를 남겼어야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서 그게 아쉬운 거지.
더 세게 하고 싶었지만, 이준익 감독하고 얘기가 잘 안 된 모양이다.
더 세게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인물이 미워진다고 하셨다. 근데 이도 저도 아닌 것보다는 그게 낫잖아? 그렇지 않다면 거기다 부가적인 다른 장치를 해주던가. <포화 속으로> 같은 경우는 그런 장치들이 충분히 있어서 괜찮은데, 이몽학은 이래저래 아쉽다. 이건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다.
영화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모양이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까.
황정민 씨하고의 작업은 어땠나?
부딪히는 장면이 몇 번 없어서 아쉬웠다. 사람들은 둘이 부딪히는 장면을 보러 왔을 텐데 잠깐만 나오니까. 나중에 둘이 주구장창 붙어서 할 수 있는 영화를 한 번 해야지.(웃음) 둘이 붙어 있으면 뭐라도 나올 테니까.(웃음) 차라리 내가 견자를 할 걸 그랬나?(웃음) 근데 견자도 그렇다. 지금보다 더 철없게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더 생각 없는 애로. 약간 양아치 기질이 있는 애인 거지. 그러다가 아버지 죽고. 근데 아버지에 대한 복수도 있지만 양아치 기운으로 이몽학을 죽이고 싶은 거. 그러다 황정학을 만나서 언뜻 언뜻 배우고, 뭐 그런 게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정민 씨 캐릭터는 원래 좋았던 캐릭터니까 그냥 하면 되는 거고.
혹시 황정학 캐릭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지는 않나?
아니. 절대. 난 또 그런 건 싫다. 황정학은 정민 씨가 딱이었다.
하긴 비주얼적도 구부정하고 흐느적거리는 황정학보다 곧고 정확한 이몽학이 더 어울린다.
근데 그 ‘곧다’라는 게 스탠다드가 아니라 조금 다른 쪽으로 곧았어야 했다. 광기 같은 쪽으로.
비주얼은 완전 현대물에 적합한데 <혈의 누>도 그렇고 사극도 잘 어울린다.
사극에? 괜찮았지? 그지? 비주얼은 좀 좋았지?(웃음)
운동은 꾸준히 하는 모양이다. ‘차간지’라는 단어가 여전히 잘 어울린다.
운동은 계속 해야 된다. 다음 작품 때문에 살도 더 빼야 된다.
액션이 많을 것 같다. 총은 물론이고 몸을 쓰는 액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되지 않을까? 어차피 드라마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는 거니까 할 수 있는 건 싹 다 쏟아 부을 생각이다. 이제 그거 끝나면 늘 얘기하듯 말랑말랑한 멜로 하고 싶다.
늘 그렇게 얘기하면서 연속으로 센 캐릭터만 하고 있다.(웃음)
그러니까. 말랑말랑한 것 좀 하고 싶은데 계속 이런 캐릭터만 하게 되네.(웃음)
드라마 <시티홀> 같은 것이 차승원표 ‘말랑말랑 멜로’라고 생각된다. 잘 어울리더라. 번듯하다가도 가끔씩 망가지는 코미디도 재미있고.
살짝 살짝 망가지면서?(웃음) 원래 그런 걸 좋아하니까. 아까 말했던 ‘곧다’라는 것에, 살짝살짝 엉뚱한 면이 보여야 되는데 너무 정직하게만 곧은 건 싫다는 거다. 감독님들한테 어떻게 표현하려고 하면, 너무 그쪽으로 간 거 아니냐고들 하는데 그냥 하면 너무 딱딱하거든. 스탠다드는 재미없잖아?
스탠다드는 자칫하다 정형화된 캐릭터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정형화되고 고착화된다니까. 그걸 다른 걸로 희석시킬 수 있어야 캐릭터도 부드러운 부분을 갖게 되는 거다. 황정학 같은 사람의 부드러운 말이나 그런 것들처럼. 근데 이몽학한테는 딱딱한 것 이면에 다른 게 없다. 광기나 그런 것들이 필요하거든. 그런 게 이런 딱딱한 캐릭터한테는 풀어진 연기니까. 풀어졌다고 허술하다는 게 아니라 이면에서 보이는 다른 것들을 말하는 거다. 중간 중간 광기가 느껴지는 그런 장치들. 근데 뭐 이미 뚜껑은 열렸으니까. 나보다는 관객들이 더 잘 안다. 너무 정확하게 보시니까.(웃음)
견자와 싸우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런 부분이 좀 보이더라.
견자한테 칼을 겨누는 장면들 이전에 더 나와줬어야 했다. 칼을 통해 보이는 그런 부분들. 박돌석 죽이는 장면도 너무 어이가 없어. 아 나, 내가 그렇게 찍지 말재니까~ 에휴.
이몽학의 잔인함을 원샷원킬로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 뭐 단칼로 확 베고 그런 건 그렇다 하더라도…. 협상하러 오기 전에 이미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거잖아. 어차피 협상은 안 될 거고, 또 다른 놈들한테도 어떤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게 목적이니까. 그렇다면 다른 놈들을 무섭게 하는 방법이 뭘까 이거지. 박돌석의 목을 베면 목이 데굴데굴 구르고, 그걸 이몽학이 들고 다른 놈들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는 거지. 칼 들고 “넌 어쩌고 저쩌고” 이러는 게 아니라 잘린 목을 얼굴 앞에 갖다 대는 거. 잘린 목에서 피 뚝뚝 떨어지고 그런 비주얼을 원했던 거지. 근데 그게 너무 잔인하데. 요즘 애들이 얼마나 그런 것들에 내성이 됐는데. 잔인하긴 뭐가 잔인해~. 에휴.
이거 흥행…, 얼마나 될까? (홍보팀에게)얼마나 들었어? 13만? 그럼 개봉 첫 날 8만 정도네? 평일인데 뭐 괜찮은 수준이네. <아이언맨2>는? 어제까지 50만 넘었지?
퍼센테지는 달라도 두 영화가 양분하는 구도가 될 줄 알았는데, 조금 밀리긴 한다.
양분? 반반으로? 에이~ 나는 개봉날 정해지고 나서 뭐가 붙었냐고 물었더니 <아이언맨2>래. 그래서 감독님한테 “왜요? 도대체 왜 그날이에요?”라고 막 따졌잖아.(웃음) 감독님이 아직 젊은 애들의 매운 맛을 못 봐서 그래.(웃음) “야, 영화가 성격이 틀린데?” 그런 얘기는 다 하지. 매운 맛 좀 한 번 봐야 돼. 에휴. 아니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이건 만에 하나도 없지. 그냥 말도 안 되는 영화랑 붙은 거야. 도대체 왜 그랬나 싶어. 물론 흥행이 잘 되면 좋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왜 이게 흥행이 안 됐을까?” 이러는 건 좀 아니잖아? 안 될 요인이 너무 많잖아? 에휴. 안 되도 뭐 당연하게 생각되는 거지. 8만이면 많이 든거네. 그럼 다른 영화들은 1~2% 되겠네? 거기 안 낀 게 어디야.
그래도 차승원, 황정민에 이준익 감독 신작인데.
아, 정말 점유율 1~2% 이러면 난 정말 울 것 같아.
옛날에 1~2%의 쓰라린 기억이 있었잖나?
<국경의 남쪽>? 아니 그래도 <국경의 남쪽>은 첫 주에 10% 정도는 됐다. 3등을 해서 문제였지.(웃음) 그때 같이 붙은 영화가 <미션 임파서블 3>였는데, 그게 80% 정도였거든.
대중영화를 지향하니까, <국경의 남쪽>이나 <아들> 같은 영화를 할 때는 걱정도 됐을 것 같다.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얘기니까. 내가 코미디나 규모 있는 영화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영화도 좋아한다. 지금도 좋아하고. 근데 문제는 그런 영화를 하는 내 모습을 관객들이 좋아하냐는 거지. 내 결론은 안 좋아하더라는 거야. 그게 문제지.
아무래도 관객의 기대치는 코미디나 카리스마 있는 센 캐릭터에 있는 건 사실이니까.
옛날에는 그런 게 스트레스였는데, 이제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아주 냉정하게 판단하면 나를 그런 식으로 보지 않는데 굳이 내가 그런 식으로 하려니까 힘들어지는 거거든. <시티홀> 같은 걸 왜 좋아하느냐,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거지. 아까 정확히 표현해줬는데 관객들은 그런 비주얼에 코미디도 나오고 하는 그런 모습을 좋아하거든.
실제로도 좀 그렇잖나? 카리스마 넘치게 생겼지만 농담 좋아하고 장난 좋아하고.
<포화 속으로> 같은 차승원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차승원이고, <시티홀>의 차승원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차승원이다. 어차피 내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걸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국경의 남쪽> 같은 것도 좋아하거든. 그 사람의 상황이나 그 사람의 선택, 특히 마지막 부분은 내 감성과도 맞아. 근데 그건 내 생각이라는 거지. 보는 사람들도 그걸 좋아하느냐는 다른 문제니까. 그런 내 모습에 몰입할 수 있나? 100%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면서 딴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니까.
<아테나: 전쟁의 여신>이 분명 셀 거란 말이지. 첩보 드라마니까. 그 다음엔 뭘 할지 모르지만, 연달아서 다섯 작품에서 센 캐릭터를 했으니까 이제 슬슬 재미없어질 것도 같다.(웃음) 나는 전적으로 상황에 맞게 변화할 거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거다. 만약 어떤 작품을 했는데 잘 안 됐다, 그럼 다음 작품에서 다시 잘 하면 되는 거니까. 물론 매번 잘 하려고 노력은 하겠지. 근데 예전처럼 “왜 안 됐지?”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물론 좋은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을 수 있지만, 이번에 안 되면 다음 작품에서 내가 못했던 부분을 하겠다는 거지.
처음 연기를 할 때에 비해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에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안 그러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안 되겠더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면 나중에 상흔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대충 한다는 건 아니다. 나름 경험도 있고, 생각하는 것도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나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경제적으로 살고 있는가를 고민한다. 최선만 다 해선 되지 않는 나이니까. 자동차로 치면 앞으로 가는 건 그냥 기능이다. 자동차라면 당연하잖아? 그 외에 부가적인 옵션들이 문제다. 내가 최선을 다하는 건 자동차가 가는 것처럼 당연한 거니까.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 뭐 이런 얘기 할 필요도 없지. 내가 앞으로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써먹어야 될 것인가가 중요하니까. 내가 더 이상 해보고 싶은 것이 없다면 불쌍한 거니까. 근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못 해본 것도 많고, 여전히 불평불만도 있고 그러니까. 더 좋은 작품을 만나서 그런 불평불만들을 줄이고 싶다. 물론 개봉날 예매율 당연히 보지. 그거 안 보면 사람도 아니지.(웃음) “나는 흥행하곤 상관없어요~” 어디다 대고 감히 그래?(웃음) 근데 그걸 보면서 “이거 뭐야?” 이러지는 않지. 아주 객관적인 수치가 나오는 거니까 거기서는 스트레스는 안 받는다.
다른 감독들하고는 다시 작업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이준익 감독은 어떤가? 다시 작업하고 싶지 않나?
해야지. 이준익 감독님하곤 해야지.(웃음) 감독님이 잘 할 수 있는 게 있거든. 살살 꼬여서 그걸 해야지.(웃음) 이준익 감독님은 열 사람 중에 아홉 명 정도의 사람이 좋아할 만한 감성을 갖고 있거든. 뭐 한 사람 정도는 싫어하겠지. 근데 아홉 명은 그의 얘기를 듣다보면 이 사람의 진정성을 알게 돼. 정말로 폐륜아가 아니면 다 느끼지.(웃음) 영화 안에서 어찌됐던 감독님은 나은 존재잖나. 그 사람의 소양이 영화에 묻어 나오거든. 너무 깊게 들어가는 거 말고 가볍게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믹스하면 좋거든. 고기도 너무 빡빡하면 안 돼 마블이 있어야지. 근데 기름이 몸에 안 좋다고 마블을 없애면 고기가 맛이 없어져. 그러니 살살 꼬여서 다음 작품 하게 해야지.(웃음)
현장 분위기가 매우 좋았을 것 같다.
재미있었다. 감독님이 스트레스를 안 주는 타입이다. 제일 좋은 건, 감독님은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배우가 하는 행동이 옳다고 믿어준다. 반대인 감독들이 있다. 나를 계속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허허 참나. 이 배우는 계속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찍어왔단 말이야. 근데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나를 설명해야 돼. 그 전 상황은 상관없이. 미친 거지.(웃음) 근데 이준익 감독님은, 만약 내가 담뱃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테이블이 아니라 의자에 놓아도 그냥 믿어줘. 왜 테이블에 안 놓고 의자에 놨는지 설명하라고 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래서 배우가 다음 행동에 흠뻑 취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지. 그게 배우한테는 굉장히 고마운 일일뿐더러 내가 어떤 연기를 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연기를 잘하건 못하건 진실된 감정을 보여야겠다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그게 좀 늦게 왔다. 한 5년 계획하고 왔는데 10년 걸렸다.(웃음) 이런 모습을 한 5년 후에 써먹어야지 했는데.(웃음)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이겁니다”는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것들을 요새 좀 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이러다가 나중에 코미디를 다시 하더라도 다른 게 나올 것 같다.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기자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게 나쁘기도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지금 나는 80%는 좋다. 안 좋은 점은 체력이 저질이 된다는 거?(웃음) 운동은 열심히 하지만 기본 체력하고는 또 틀리니까.
연기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 여유가 생겼다기보다 그냥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아닌 건 쉽게 놓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마 20대였으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랬을 텐데, 지금은 선택에 있어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경험도 있으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 여유라기보다 내 선택에 대해서 굳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보는 눈이 더 생긴 거지.
지금 <아테나: 전쟁의 여신>은 촬영 전인 걸로 아는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준비라고 해봐야 특별한 건 없고 그냥 살 빼고 몸 만드는 정도? 예전 같으면 대본 왜 안 나오냐고 막 그랬을 텐데, 에휴, 이제 뭐 나올 때 되면 나오겠지 그냥 그런다.(웃음) 그런 걸로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대작을 한다는 것에 큰 부담도 없다. 사실 10월에 방송하고 난 이후에 대작 후유증으로 내 생활도 다소 바뀔 테지만, 이제 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덤덤한 거지.(웃음) 그냥 재미있게 하자는 거다. 또 한 회에 끝나는 게 아니라 20부작이니까 한 회에 올인하고 그런 자세가 아니라 계속 즐기는 마음으로 할 생각이다.
시나리오도 안 보고 출연 결정을 했다고 들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역시 이준익 감독 때문에 출연했다고 한 걸 보면, 작품 선택 기준에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 같다.
일단 정태원 사장님하고 세 번째 작품이다.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 사람의 추진력과 에너지는 정말 높게 산다. 제작자로서 그냥 관조하지 않고 계속 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도 내 성향과 맞다. 두 번째는 버젯이 좋았다. <아이리스>보다 2배가 커졌다. 물론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좋은 드라마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가 이런 큰 드라마를 또 언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해보지 않은 첩보물이라는 것도 좋았다. 근데 사실 첩보물이라는 게 허무맹랑하잖아?(웃음) 아마 장르 중에 제일 허무맹랑할 걸? 특히 우리나라에선. 뭐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운다지만 어찌됐건 한국 안에서 벌어지는 얘기잖아?(웃음) 근데 재미있을 것 같더라. 또 우성이도 캐릭터가 요원이랍시고 힘주고 그런 캐릭터 아니거든. 여자 캐릭터들이 좀 어려울 것 같아서 걱정이긴 하지만.(웃음)
아직 이다. 사실 지금은 <포화 속으로> 후반 작업 때문에 정신이 없다. 이게 마무리가 돼야 다음 작품이 스타트가 되는데, 아직은 정신이 없다. <포화 속으로>는 CG도 엄청 많고 그래서 지금 장난이 아니다.
<포화 속으로> 현장 공개 이후, 후배 여자 기자들이 권상우 씨랑 탑이 안 보일 정도로 차승원의 카리스마가 강하다고들 하더라.
남자 볼 줄 알네.(웃음) 근데 분장한 거 보면 깜짝 놀랄 거다. 탑도 탑인 줄 모를 정도야.(웃음)
제작보고회랑 시사회 일정이 나와서 이제 슬슬 시작된 느낌이다.
5월 10일에 제작보고회 하고 그걸 시작으로 스타트가 될 것 같다. 롯데도 이번에 한 번 잘 돼야지. 힘든 시기도 많았는데. 난 이렇게 적극적인 회사가 좋아. 안일한 배급사보다.(웃음) 그래서 롯데가 좋아. 잘 돼야 돼. 또 시네마서비스도 잘 돼야 되는데.
한창 코미디 할 때는 김상진 감독도 그렇고 시네마서비스 라인하고 작업도 많이 했으니.
강우석 감독님 요즘 힘드시다고 그러던데. <이끼>가 잘 돼야 된다. (재떨이를 보더니)근데 내가 오늘 담배를 반갑이나 폈네? 미친 거지. 저질 체력에 담배까지 못 끊고 있으니.(웃음)
2010년 5월 5일 수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2010년 5월 5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