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영화감독이 되기 이전,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인 문화학교 서울 시절부터 자주 가서 영화를 보던 관객이었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병원에서 영양제 주사 맞듯, 기운 빠질 때마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충전하고 그랬다. 어느 날 시네마테크에서 백지수표를 주면서 원하는 영화를 대라고 하길래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참여하게 됐다. 영화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한 한 번 빼고 매년 참석하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추천하고 관객들과 같이 보는 이 시간들이 너무 즐겁다.
회를 거듭해 5회째가 됐다. 이번에는 여러 문제가 있어서 느낌이 다른 것 같은데.
위기감이 느껴진다. 약간 열 받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이전하는 순간부터 생긴 위기감이 고질병처럼 계속 되고 있다. 간간히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좀 더 심각한 것 같다. 근데 이게 참.(헛웃음) 마냥 이렇게 우리 신나게 영화보자 뭐 이렇게만 할 수는 없는 분위기니까. 예전에 영화잡지 키노가 폐간될 때 같은 위기감이랄까?(웃음)
전용관의 필요성에 대해선 말이 필요 없지만, 여러 곳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도 하다.
저번에 박찬욱 감독님이 말했던 것 같은데, 이런 대도시에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 하나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도시라는 걸 떠나, 지금 영화산업의 크기로 봤을 때도 자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해서 비슷하게 경쟁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의 하나잖나? 사실 대단히 자부심을 가져야 되는 지점인데, 이게 단순히 경제학적 논리, 혹은 애국주위에 고취돼서 진행되면 안 된다. 사실 나는 동시대의 동료들이 지금 우리가 감히 싸울 수도 없는 물량과 기술력을 가진 할리우드와 매달 맞붙는 모습이 여전히 흥미롭고 자랑스럽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은 고전을 봐야 된다고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책 읽는 양보다 영화 보는 양이 훨씬 더 많다. 우리 문화 안에서 영화의 영향력이 크다는 얘긴데, 영화를 보는 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가르쳐 줄 생각을 왜 안 하는 지 답답하다. 솔직히 대학 영화과 교수님들한테도 묻고 싶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고전을 보러 안 오는지. 전공을 하는 사람들이 고전을 보고 연구하지 않으면 누가 보겠나? 시네마테크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도 아니잖나? 이런 문화 자체가 당연한 건데, 특수한 것처럼 인식되는 현실이 답답하고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처럼 전 국민이 영화를 좋아하는 나라도 없는데, 고전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다.
이런 위기감이 온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불과 얼마 전에는 <주라기 공원>과 현대자동차 판매량 비교하면서 영화산업이 어떻고 하는 기사도 있었잖아. <아바타> 갖고 또 그럴 거다. 3D에 대한 얘기도 나올 거고. 문자를 알아야 말을 글로 옮길 수 있고, 좋은 글을 읽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거다. 걸음마를 가르치지 않고 피겨스케이팅이 대세라고 바로 피겨스케이팅부터 시킬 건가? 유럽축구나 이런 거 할 때, 광고판에 서울 홍보하는 글자 쓰려고 수억씩 쓰는 게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보다 한국을 찾은 사람들한테 서울에서 이런 영화가 하고 있네, 하는 신선함이 더 낫지 않나?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예술 작품이 365일 서울시내 한 복판에서 상영되고, 그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면, 영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년들이 시네마테크 찾아올 거다. 그런 게 문화적인 영향력이다. 영화 프린트가 미술품처럼 나중에 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세제혜택도 없고 그래서 그런 건가?(웃음) 근데 영화 안 좋아하는 사람 없잖아? 그런 문화를 풍요롭게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이 있는데, 왜 그런 것들에 대해 정치논리를 앞세우고 그런지 모르겠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예전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갔을 때, 알모도바르 회고전을 하고 있었다. 그게 한 사람의 인생에 꿈을 심어줬다. 내 인생의 목표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내 회고전을 하는 거다. 정말 소원이 없겠다. 이런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의 상영은 영화 역사에 기록될 일이다. 멀리 가지 않고 부산하고 비교해도 그렇다. 아니, 서울이 부산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주차딱지 뗀 값만 모아도 뭐 하나 하고도 남겠네.
옛날에 이런 공간에서 영화를 보던 세대들은 그런 추억들도 있잖나.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옛날 사람은 아니다.(웃음) 근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희생> 이런 영화들을 8만 명이 보고 그랬다. 그런 사람들 지금 다 어디 갔나? 먹고 살기 바빠서 일하고 애 낳고 이러고 사는 건데, 솔직히 이런 현실에도 짜증이 난다. 마치 사람이 태어난 목적이 먹고 살기 위한 것 같잖아. 숨통을 온통 조여 놓고 그러다가 한 번 노는 시간 되면 또 미친 듯이 논다. 탬버린 쳐대면서 술 마시고 토하고, 노는 게 더 피곤할 정도다. 문화라는 건 살아가는 방식인데, 좀 더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된다. 그게 미술관일 수도 있고, 공연장일 수도 있고, 거리의 카페일 수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당연히 시네마테크 같은 곳이어야 한다.
요즘의 극장문화라는 것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 문화도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간다.
지금처럼 거대 배급사가 장악해서 다양한 영화를 못 보고 몇 개의 영화를 빠르게 회전시키는 멀티플렉스 시장 환경은 그냥 데이트 코스의 하나다. 요즘은 영화를 보고 근처 카페에서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도 보기 힘들다. 영화 보는 것도 빨라져서 그냥 시간에 맞는 영화 표 끊어서 본다. 자동차도 엔진을 식혀줘야 오래 쓰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은 더 그래야 되지 않나? 시네바캉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아버지 세대의 기억을 자식 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끈이 되는 거다. 요즘 소시 삼촌팬은 생겼지만, <오즈의 마법사>를 아버지 세대랑 같이 보는 어린 친구들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 생겨야 문화를 보는 눈도 다양해지고 세대 간의 교류도 더 많이 생기는 거다. 또 전용관 역시 깔끔하게 제대로 생겨야 된다.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주차시설도 완비가 돼야 가족 단위로 올 수 있다. 애들이 <뱀파이어> 같은 영화를 보면 얼마나 새롭겠나? 옛날에는 무성영화를 이렇게 실제로 연주하면서 상영했다는 것을 보는 기회니까.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인 학습 시간인 거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라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정말 좋은 시설로, 좋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또 끝나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영화에 대한 얘기도 하려면 커피 기계도 좋은 게 있어야 하고.(웃음) 그런 게 다 문화적인 질에 관련된 것들이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프리미어 시사회도 전용관에서 당당하게 하고 그럼 좋을 테니까.
옛날에는 고전을 보러 찾아다니고 했었는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모든 걸 쉽게 해결하는 경향이 많다.
굳이 표현하면 카페 문화라고 할까? 영화를 보고 토론하고 고민하고 그런 게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영화를 인터넷으로 보고 자기 블로그에 그냥 후두둑 써버리고 끝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미쳐 신경 쓸 틈이 없는 세대들의 특징일 수도 있고,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그런 의도? 어느 순간부터 정보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영화를 제대로 보고 자신의 체험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영화를 알고, 어떤 영화를 봤고, 심지어 본 건지 봤다고 믿는 건지 그것도 헷갈리기까지 한다. 사실 나도 요즘은 영화를 많이 못 보고 있다. 한 사람이 영화를 아무리 많이 봐야 몇 편을 보겠나? 대신 영화 한 편을 보고 그 영화를 내 안에 갖고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중학교 때 동시상영관에서 봤는데, 그 시대는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의 시대였다. 어느 날 극장에 갔는데, <영웅본색> 분위기가 풍기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주윤발과 함께 <강호정>에 나왔던 배우가 메인 포스터에 클로즈업으로 나온 것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들어갔다가 충격을 먹고 나왔다. 홍콩영화는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스타의 장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룡과 주윤발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유덕화라는 배우는 청춘영화의 마스크를 가진 필름 느와르 스타라고 할까? 당시 나를 흥분시켰던 배우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또 예전부터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면서 홍콩영화를 보고 싶었다. 지금 허리우드 극장 자리가 예전에 홍콩영화를 많이 하던 자리이기도 하다. 요즘의 관객들이 <열혈남아>를 보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될 지도 궁금하다.
<열혈남아>를 필름으로 다시 본다는 것에도 의미가 크다.
당시 동시 상영했던 영화가 <영웅투혼>이라고 왕가위가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였다. <열혈남아>의 제작자인 등광영과 주윤발이 주인공인 영화다. 두 편의 영화 다 재미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두 번씩 보며 하루를 완전히 다 보냈다. 그때 프린트로 봤을 때 기억이 좋았다. 처음 스탭프린팅 기법을 봤을 때의 충격이 무척 컸다. 어떻게 한 건지 궁금했다. 슬로우 모션도 아니게 생전 처음 보는 거니까 되게 신기했다. 이 영화를 프린트로 보면 광란의 스탭프린팅을 경험할 수 있을 거다.(웃음)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프린트로 봐야 제 맛이니까.
90년대부터 영화계에서는 디지털 담론이 중요한 화두였다. 최근엔 <아바타>가 방점을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필름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왜 그러게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다. <와일드 번치>를 DVD로 볼 수도 있고, 컴퓨터 파일로 볼 수도 있다. 근데 이런 거다. 우리가 마티즈나 고흐의 그림을 화보집으로 보는 것과 미술관에 가서 진품을 감상하는 것과의 차이 같은 것. 영상기호와 음성기호로 정리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원판이라고 하는, 진짜를 보는 것이다. 결국 진짜가 존재하는 한 시네마테크는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를 감상하는 아주 중요한 행동이다. 영화를 진짜로 좋아하고 아낀다면 시네마테크에서 진짜 영화를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좋아하고, 즐길 줄도 아는 곳에 변변한 시네마테크 하나 없다는 것은 문화적인 수치다. 스포츠 경쟁하듯, 왜 할리우드를 이기지 못 하냐, 아카데미에 진출하지 못 하냐, 이런 얘기할 시간에 시네마테크를 지키고, 새롭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영상 문화를 더욱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열혈남아>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보고, 우연찮게 5~6년 간 매년 한 번씩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더라. 그러다가 결국 필름 상영까지 보게 되어 기대가 크다.
이런 기회가 계속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시네마테크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어야 프린트 수급도 훨씬 좋아진다. 또 스즈키 세이준과 같은 거장들이 시네마테크에 와서 관객과 만나고 그랬는데, 보다 많은 거장들이 올 수 있어야 한다. 또 한국 관객처럼 뜨거운 관객이 없잖나. 그래서 내 영화를 여기서 트는 게 너무 즐겁구나, 이런 마음이 드는 세상이 와야 한다. 생각해보면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될 것 같은 일인데, 생각하니 또 화가 나려고 하네.(웃음)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