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의 헬스클럽에서 입은 이소룡 추리닝 같은 복장이 은근히 야해서 참 즐겨봤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전 좋았어요. 그렇다고 양복을 입고 운동할 수 없는 노릇이니깐. 근력운동에 좋은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설계된 옷이었어요. 운동하기 편하게 하려고 나름대로 제안을 그렇게 한 겁니다.
이번 영화 <국경의 남쪽> 카피가 ‘차승원의 첫 번째 멜로’여서 영화에 대한 구미가 당겨요. 차승원의 선택은 뭔가 남다르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고 한편으로는 자신감까지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카피가) 공격적이죠. 저를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여타의 배우들하고 저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고 생각해요. 평소 작전을 짜고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지키는 건 있어요. 대중과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무시하지 말자. 대중을 높이 봐도 안 되지만 과소평가해도 안 된다고 봐요.
우리 영화가 멜로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그냥 드라마이어요. 그러니깐 음.... 누구나 태어나서 한번쯤은 사랑이라는 것을 꼭 해보잖아요. 안 해보는 사람이 없다는 건, 사랑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거죠. 거기다 제가 여태까지 하던 장르가 아니라서 이번엔 다른 포맷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가자해서 차승원의 첫 번째 멜로라는 카피를 썼어요. 그래서 일부러 포스터도 단독으로 가고. 힘을 실어주자는 거죠. 어차피 마케팅은 팔기 위한 전략 아닌가요? 그렇다면 구미가 당기게 가자. 그래서 저런 카피를 썼죠.
흔하죠. 멜로 제일 흔해요. 너무나 주위에서 많이 행하는 장르지만 우린 영화에선 뭔가 달라요.
영화 시나리오를 먼저 봤어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멜로지만 그 안에 분단현실, 탈북자 문제도 중요하게 곁들어져 있더라고요. 멜로라고 그래놓고 영화는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지 않나? 욕심 많은 영화로도 보입니다.
아이러니한 건데요. 분단 현실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로서 북한 사람들도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것만 따온 거여요. 그게 특별한 사람, 특별한 사랑으로 많이들 생각하는 데 사실 우리와 별 다를 게 없다는 거죠. 선호와 연화의 사랑을 보고 어쩌면 지금의 우리 사랑방식이 너무 부르주아적인 것 아닌가? 뭐 이런 거죠. 그들에 비하면 우린 너무 쉽게 사랑을 얻잖아요. 선호와 연화는 둘이 살아가는 데 있어 다른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삶과 사랑을 뺏기는 사람들이거든요. 그거는 사실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들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봐요. 우리에게는 커다란 족쇄죠.
혹여나 선호와 연화의 사랑은 안보고 관객들이 분단문제와 현실적인 문제들을 영화에서 더 크게 읽어내려 갈까 걱정은 안 되세요?
북한을 특수한 나라라고만 본다면 그럴 수 있지만 사실 우리 영화에선 그렇게 심하게 도드라져 보이진 않아요. 시나리오에 북한에 대한 선입견이 별로 안 나타나요. 주인공 선호 직업만 보더라도 보통 우리가 말하는 그냥 음악 하는 애여요. 다분히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우리 생각과는 달리 북한과는 안 맞는 직업을 갖고 있잖아요. 시나리오에서부터 그런 편견을 많이 희석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우리 영화 소위 말해서 빈 데가 많단 말이어요. 그 빈 곳을 채워 넣는 작업이었어요. 뭔가 억지로 설정하고 합을 짜기보다, 제가 여태 했던 영화들 대부분 그랬는데, 그냥 놔둔 영화여요. 제대로만 화학작용이 일어난다면 그런 부분에서 대단히 큰 힘을 발휘할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죠.
전작들은 차승원의 원맨쇼 같은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번 <국경의 남쪽>에선 차승원, 한 개인에 대한 의존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중요시 했겠네요?
제가 그동안 광고나 영화에서 봤던 그런 모습이 이번 영화에선 전혀 안 나와요. 지금 내가 행하고 있는 일련의 홍보 방법들은 영화와는 전혀 반대의 모습입니다. 완전히 반대죠. 일부러 그런 거여요. 영화를 막상 봤을 때, 다른 사람이 나와서 연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자 그런 홍보방식을 채택한 거죠. 예전 모습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떤 분들은 저를 그전과는 많이 다른 사람으로 볼 것 같아요. 그걸 기대하는 거죠.
안판석 감독님이 그렇다면, 배우 차승원에게 특별하게 주문한 것 없었나요?
배우한테 하는 요구라는 게, 이 배우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자라는 부분도 있고요. 배우의 잠정은 기술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배우를 어떤 샷으로 담고 어떻게 들어가면 그 눈이 좋을 때가 있어요. 그건 기술이거든요. 근대 대부분의 감독들은 배우의 소양과 자질에 근접해 접근하는 감독들이 별로 없어요. 결국 배우의 다른 걸 영화에서 써 먹는다는 거죠. 제가 했던 광고들이 대표적인 예들이죠. 그런데 안판석 감독은 그걸 안 써먹어요.
감독님과 작품 하면서 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겠어요?
저는 다른 영화를 찍을 때도 감독님들하고 대화를 되게 많이 하는 편이어요. 3~4개월 영화 찍으면서 같이 생활하다 보면 배우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걸 써 먹는 감독들이 정말 좋은 감독인거죠. 안판석 감독은 다른 의미에서 배우 차승원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그게 너무 반가운 거고.
그렇다면 당신의 첫 번째 멜로영화는 어떤 점에서 기존의 멜로 영화들과 차별성을 두고 있는 건가요?
짜임새 있고 세련된 시나리오는 정말 솔직히 말해서 기획성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영화고요. 그런데 드라마라고 하는 건 그게 아니라고 봐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다치지 않게 고스란히 옮겨 놓았을 때, 난 그게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분히 현실적이어서 보고 싶지 않은 거는 영화에서 보기를 꺼려해요. 삶에 있어서 늘 그런 일을 겪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우리 영화는 그렇지 않아요.
인터뷰 하는 방식으로 찍은 이유는 남한에 넘어 왔는데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게 살다보니깐 아니었더라. 뭐 이런 얘기죠. 사랑이라는 게 남녀가 좋아하면 끝날 줄 알았더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그게 아닌 게 돼버린 거죠. 너무 많은 변수가 많은 게 세상이고 그냥 그러면서 살다가 죽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의미에요. 씁쓸하죠.
세련되지 않은 대사나 사는 모습은 진솔할 수 있겠지만 관객들이 차승원의 다른 모습에 쉽사리 동요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전 이런 부분이 걱정되던데.
20대 여성의 감성이 틀리고 30대 여성이 틀리고 그리고 40~60대 여성의 감성이 틀리죠. 그러나 기본적인 감정의 축은 안 변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고 느끼고, 우리가 행동하는 이런 것들은. 근대 이미 2백 년 전에도 역사의 기록을 보면 애들이 나댄다는 이런 기록들이 있거든요. 매번 반복이고 답습이어요. 그 당시 극작가의 기록을 보면 요즘 배우들은 애드리브를 너무 많이 쓴다고 적혀 있어요. 희한하죠? 지금하고 똑같죠. 그러니깐 이야기라는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거죠.
얼마만큼 좋은 이야기로 관객들한테 설득력 있게, 힘 있게 다가갔을 때 정말 좋은 기획성 영화보다 훨씬 더 세게 깊게 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내가 좋아서 선택한 영화니깐 이런 식으로 얘기하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하하)
<혈의 누> 당시 현 싸이더스 김미희 대표가 모 매체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거기서 김미희 대표는 언론들이 차승원의 연기에 대한 평가에 많은 불만을 가진 듯했다. 김미희 대표는 ‘차승원 같은 배우 없다.’라고 당신을 옹호하던데, 이렇게 좋은 인간관계가 다음 영화 선택에 많은 영화를 주나? 결국 김미희 대표와 이번 <국경의 남쪽>을 다시 작업했다.
아니 뭐 그런 얘기들도 하더라고요. 선뜻 시나리오를 내주긴 그렇지 않느냐? 자기가 보고 순화하고 거르고 해서 양질의 시나리오를 건네줘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저도 마찬가지고요. 남들 같았으면 선뜻 할 수 있는 영화인데, 나는 이 사람하고 1~2년 볼 사이도 아니고, 내가 이 영화를 해서 최대한 뭔가를 해야 되는데, 만약 내가 이 시나리오가 별로 마음이 안 드는데 했을 경우, 그냥 인맥에 의해서 한 거면 결과는 뻔한 거죠. 그러니깐 사실 더 힘들 수도 있어요.
모델 일을 접고 연기자로 본격 데뷔하던 시절 당신을 보고 멜로에 딱 어울리는 마스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야 당신은 멜로를 선택했어요.
지금 내가 생각하는 멜로와 기자님이 생각하는 멜로는 틀린 게 있다. 사실은 한국멜로 다분히 장식적인 구석이 많잖아요. 만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영화 속에선 자기들 끼리 슬프고 자기들 끼리 기쁘잖아. 그게 너무 싫은 거야. 뭔지 알겠죠? 내가 어떤 장르를 찍든 간에 앞으로도 그렇고 내가 사람들과 동떨어져 생활하면 안 된다는 거죠. 내가 자꾸 사람들 속에서 섞여서 살아야 되는데 직업상 나는 철저히 혼자고 보는 사람들은 굉장히 다수잖아요. 이 다수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걸 연기해 내려고 지금 굉장히 노력하고 애쓰는 중이거든요. 10명 중에 한 사람만 틀린 감성의 소유자라고 해도 배우는 나머지 9명의 감성을 연기하는 게 의무인 사람이다 보니 사람들과 자꾸 동떨어져 있으면 연기를 못한단 말이어요. 나에겐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내가 어떤 장르를 선택하고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는 다음 문제지, 지금 중요한 거는 바로 그거라는 거죠.
하나 받았어요(하하). 나 그거 굉장히 위로로 삼고 살고 있는 사람인데. 진짜로 하나도 못 받았으면.... 내가 상복은 없는데요. 대신 다른 걸 얻었잖아요. 상 이외에 많은 걸 얻었기 때문에...
그렇죠. 영화와 광고로 요즘 들어 바짝 버셨죠.
(하하)네. 바짝 벌기도 벌었지만 내 나름대로 견고하게 지금에 왔단 말이죠. 누구처럼 진짜 상을 넣어 둘 때가 없을 정도로, 한 해에 17개씩 받는 설모 배우 뭐 이렇게, 그 한해에 18개의 상이 있었어. <오아시스>로 18개 중 17개를 받고 한 개를 못 받아 간 거야, 그 해에. 내가 그래서, 인터넷 찾아보면 지금도 있을 거야 ‘17개를 끝으로 상을 마감해준 설경구 선배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뭐, 이런 말을 내가 했다고. 근대 나는 지금 이 행보가 기분이 굉장히 좋고요. 다음 영화할 때도 스스럼없이 나아갈 수 있어 좋아요. 그래서 전 괜찮아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왜 이번에 후보에 안 올랐다니? 우씨~ 야! 어떻게 물어 좀 봐봐. 주최측에 물어봐 누가 담당인지? 그 인터뷰 빼!” 이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게 얼마나 웃긴 일이야.(하하)
그래도 아쉽지 않나요? 이번 <국경의 남쪽>으로 차승원이 연기상 하나 받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우리 팬까페 애들도 ‘오빠 왜 주연상 후보에 안 올라와’,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래요. 사실 문제야 많죠.
하지만 상 이외에 하느님이 너무 많은 걸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날 자극시켜서 조금씩 조금씩 진일보 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 한발자국 나가는데 그렇다고 멈추지는 말자, 걷더라도 뛰는 시늉이라도 하자는 게 현 차승원의 목표이자 입장이어요. 내 비록 지쳐서 걷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뛰고 있다는, 그걸 항상 내 머리에 각인 시키고 행동하고, 연기하고 현장에서 일하고, 이렇게 만나서 인터뷰합니다.
매사에 자신감 있고 여유 있는 차승원으로 대중에게 비치지만 영화 속 ‘선호’와 차승원이 무척 닮았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안판석 감독님은 나보고 허망한 놈이래. 선호가 허망한 놈이잖아요. 어느 날 감독님이 나보고 ‘허망한 놈’이라고 말하더라고. 나한테 허망한 게 보인데요. 내가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방법은 두 가지여요. 왜 그러니깐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닮고 싶은 인물이 있듯이 내가 닮고 싶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거고. 두 번째는 나와 전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나와 동일한 코드를 지니고 있다면 선택해요. 나와 동일한 코드가 선호에게 있어 선택을 하게 된 거죠.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권영탕 사진기자
☞ 차승원의 쥑이는 표정들 감상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