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뒷골목이 거칠수록 여자는 '매혹'을 무기로 삼는다. 비천함을 무기 삼아 아름다워지는 여성들. 때로는 살이 움푹 페인 상처를 안고 들짐승처럼 숨 쉬는 남자들을 향해 가슴을 따뜻하게 데우지만 자신을 향해 총구를 드는 그들에게 사정없이 잔인하게 구는 이들은 펄프문화의 꽃, '팜므파탈'이다. 나른한 표정, 금발로 상징되는 그들에게서 40~50년대의 미국 하위문화의 추억이 생각난다면 이미, <씬시티>의 안주인들이 우리의 마음을 저당 잡은 거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씬시티』의 영화화에 착수하면서 원작을 그대로 영화에 모방하겠다는 다소, 아니 무지막지하게 황당한 계획을 세운다. 당연히 주인공들 또한 방금 만화책에 빠져 나온 듯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찾았다. 첫 번째로 찾은 배우는 마브 역의 미키 루크. 그의 삶 자체가 할리우드의 뒷골목을 방황한 야수의 삶이어서 미키 루크는 마브의 현신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그 다음으로 '브리티니 머피'는 특유의 코맹맹이 목소리와 밉살스럽지만 순수한 미소를 지어, 천박한 순수를 간직한 신경질적인 미인형이다. 어떻게 보는 가에 따라 도시형 프리티우먼부터 <돈 세이 워드>의 '엘리자베스'처럼 일명 '광년이' 캐릭터까지 40여편의 영화에서 팔색조의 끼를 감추지 못한다. 배우로서의 한계를 <8마일>에서 극복한 여배우가 또 다시 <씬시티>의 '셸리'역 한계에 도전하고 성공적으로 일을 마쳤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영화에서 '셸리'라는 느와르의 관습을 벗어난 여성 캐릭터를 대체 어떻게 연기했는가에 대해,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완벽하게 프랭크의 셸리가 된 그녀는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소우주를 적극적인 자세로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전에, <씬시티>에서 '재키 보이'로 분한 베네치오 델 토로가 그녀에 대한 한 말을 소개한다.
"브리트니 머피는 캐릭터에 정말 빨리 몰입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영화인만큼 제작 방식도 모든 것을 '부정'하고 '전복'하는 작업이었다. 난, 그런 낯선 환경에서 브리트니 머피가 단 하루 만에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믿기 어려운 장면을 목격했다. 그녀는 정말로 겁이 없다. 사실, 난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무려 2틀씩이나 걸렸는데 말이다"
사실이다. 이 날까지 하티건을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를 만낝 적이 없다. 신기하죠?^^ 그린 스크린을 이용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만의 신기술이다. 음... 영화 안에서 예를 들자면, 술집에서 모든 배우들이 만나는 장면이 있다. 제시카 알바(낸시 역)는 춤을 추고 있고, 나는 클라이브(드와이트 역)와 미키 루키에게 음료수를 건네준다. 거기다 브루스와도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사실, 촬영장에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엥?! 정말 혼자 연기한 장면인가?
(웃음)놀랍죠? 당사자인 나도 나중에 완성된 그림을 보고 신기해 할 정도였다. 그 장면은 텍사스 오스틴에서 새벽 5시경에 촬영했다.
그래도 세트장에서 촬영했을 것 아닌가?
직접 확인은 못해 봤는데 술집이 <씬시티>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세트로 알고 있다.
당신이 연기한 '셸리'는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3개의 에피소드 전체에 등장한다. 그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확장해 가는데?
사실, 그 이야기들 중 몇 개는 몇 년간의 시간 차이가 나도록 되어 있는데, 셀리는 '씬시티'라는 도시의 성격, 음... 모랄까? 폭력적이고 음울하면서도 순수한 본질을 잃지 않는 도시의 성격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프랭크 밀러(원작자임과 동시에 <씬시티>의 공동감독)가 항상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와 끊임없이 셸리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의논했다.
<씬시티>를 본 후, 많은 사람들이 혁신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내린바 있다. 본인 스스로도 이 영화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영화라고 생각하는가?
말 그대로다. 배우는 영화예술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평소부터 생각해 왔다.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했을 때,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했고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배우가 누릴 수 없는 특권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정말 행운과도 같은 일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자만 <씬시티>는 정말 새로운 영화다. 미국 사람이라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음.. 왜냐하면 아주 예기치 못한 독특한 영화들이 미국에서 출연하기 때문이다. 장담하건데, <씬시티>는 20년 후 예술적인 천재의 작품으로 영화수업에 이용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 뛴다. 영화의 한 부분으로 나를 출연하게 해준 밀러와 로버트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느 정도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의문점 또한 생기는 대답이기도 하다. 그린 스크린 앞에서 허공에 대고 혼자 연기했는데 아무리 감독에 대한 신뢰가 높다고 치더라도 배우로서 불안하거나 의문이 쌓였을 텐데.. 아~ 물론 영화가 나쁘다는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내가 무턱대고 대답할 리가 있겠는가? ㅎㅎ 나름대로 배우로서 확신에 찬 부분들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과학 기술, 아니 영화 안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완벽하게 사용할 수 없던 섬세한 영화제작 방법이 로버트 감독의 지휘아래 완벽하게 소화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만화책을 각색한 것이 아니라 영화상에 그대로 옮겨다 놓았기 때문이다. 만화나 소설을 영화화한 적은 많다. 그러나 영화적인 것이 만화나 소설로 개작된 적은 별로 없다. 아니, 아예 없다. 난 놀라웠고 곧, 그것이 가치 있는 작업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현대적인 느와르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실을 아우르며 드디어 탄생했다고 <씬시티>를 보고나서 확신했다. 정말 흥미진진한 작업이었다.
공동 감독을 맡은 로버트와 프랭크가 셀리 캐릭터에 관한 주문이나 설명은 뭐였나? 혹시 당신이 연기하는 데 있어, 전혀 다른 연기주문을 두 감독이 동시에 한 적도 있는가?
역시! 이 질문 나올 줄 알았어. 로버트와 밀러가 나를 혼란스럽게 한 적은 한번도, 결코 없었다. 나는 영화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기 전부터, 프랭크 밀러를 위해, 셸리를 연기했다. 전부터 로버트와 나는 함께 일하기를 원해왔고 나도 그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입장이기도 했다. 캐스팅 배경에는 프랭크가 셀리가 등장한 한 토막의 그림에 대해 멋지다고 말했고 로버트는 그 순간에 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 뒤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배우 입장에서는 나를 떠올려줬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했고, 셀리가 어떤 여성인지 정확하게 기억해 내고서야 시나리오를 읽었다. 만화책으로 읽든 시나리오로 읽든 대사는 훌륭했고 매우 재미있었다. 그러고 나서 프랭크를 만났는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음... 어쨌든 한바탕 바람이 불겠군' 제 말의 뜻을 알겠죠? 프랭크는 내가 셀리에 대한 해석이 만화를 그리고 있었을 때의 자신의 생각과 똑같다고 하면서 만족을 표했다. 지금 생각해도 프랭크를 처음 본 날은 매우 만족스럽고 흥분되는 날이다.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씬시티>의 웨이트리스 셸리는, 프랭크가 생각한 바로 그 셸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당신이 연기한 그녀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 씬시티의 셸리다'하면서 쾌재를 불렀을 정도였으니...
당신이 그랬다고 하니 기쁘다. 감사하다.
영화의 상당부분에 걸쳐 폭력성이 강도 높았다. 여성인 당신에게 미친 영향이나 문제는 없었는가? 사실, 씬시티의 셸리 그대로여서 영화를 보며 즐겁기도 했지만 배우이기 이전에 여성인 당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영화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할까봐 걱정해주는 건가?(웃음) 오! 염려해줘 너무 고맙다. 그런데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영화의 소재들은 아주 해학적이다. 내 유머 감각이 뒤틀려 있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촬영장에는 영화스텝뿐만 아니라 내 어머니도 와 계셨다. 어머니는 내내 웃고 계셨다. 믿어지는가? 나이 드신 양반이 내 연기와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주 즐거워했다는 게... 물론, 비폭력적이고 코미디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는 사실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양의 피가 빨간색이 아닌 흰색과 노랑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실제적인 문제들이 잘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음......... 내 말은, 로버트가 폭력적인 영화들을 만들고 있고, 쿠엔티도 마찬가지며 프랭크는 그것들을 글로 쓰고 있을 뿐이다. 단지 그것을 원하는지 아닌지는 영화를 보길 원하는 알맞은 연령의 관객들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셸리뿐만 아니라 <씬시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남성주의 시각에서 양식화된 즉, 남자들의 환상이 짙게 묻어 묘사되어 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영화에서 여성들이 묘사되는 방식이 심한 여성혐오증을 가진 사람이 창조한 캐릭터가 아니라 여권주의자적 입장에서 그려진 걸 알았다. 씬시티의 여자들은 한 무리의 늑대들이고 ㅎㅎ, 서로를 돌보고 있다. 이들은 폭력적인 도시 씬시티에서 자급자족하기 위해 올드타운을 스스로 지키고 있다. 씬시티의 남성들은 적어도 80% 이상 천벌을 받는다. 이것만 보더라도 결코 남성주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일수록 그것에 대해 말하고 논쟁할 거리를 주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영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씬시티>가 좋은 영화라는 말을 하는 거다. 너무 속보이나? (웃음)
전혀 아니다. 나는 <씬시티>의 엄청난 암흑 속에서 훌륭한 유머를 맛보았다. 프랭크의 글은 현실에 관한 기발한 유머와 풍자가 숨어 있다. 그는 리듬감이 좋은 글을 쓰기 때문에 그걸 연기로 표현하는 작업이 즐겁고 또한, 깊이 있어 좋았다. 캐릭터들의 대사는 과거 회상하는 식으로 느껴질 정도로 센티메털해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를 상기시켜 현대적인 느와르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영화상의 장소와 시간을 지금도 느끼고 있을 정도다.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원작자 프랭크 밀러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들 중 하나로 셸리로 알려져 있다. 셸리를 연기하는 입장으로써 기분 좋은 소리가 아닐 수 없겠다.
우리가 영화를 촬영하고 있을 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맹세코 정말 몰랐다. 설사 알았다고 해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셸리는 거친 외모의 소유자였고-그녀가 못생겼다는 소리가 아니다-올드타운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다. 그렇지만 셸리는 외모와는 달리 매우 상처받기 쉬운 성격의 연약함과 순진함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 소개되지 않은 원작의 다른 시리즈를 보면 셸리와 재키보이, 드와이트의 역사가 설명되어 있을 정도다. 인정 많은 셸리가 거친 도시에서 일하면서도 다른 여자들처럼 창녀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원작자 프랭크가 셸리를 왜 좋아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당신의 얘기를 들었지만, '씬시티'는 정말 살아가기 힘든 장소다. 그걸 영화로 보는 일은 즐겁지만 말이다.
씬시티에 살던 나는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면 며칠 동안 살기엔 즐거운 장소지만, 영원히 그 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프랭크 밀러는 당신이 전에 생각하던 대로 어둡고, 비뚤어진 사람인가?
나는 전에도 그를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흠.. 조금은 괴짜 양반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생각은 했다. 아주 쬐끔~ 말이다. 프랭크는 너무나 부드럽고, 친절한 남자다. 이 인터뷰를 그가 꼭 봐야 하는데.(웃음) 그는 매우 온화한 태도를 지녔고, 똑똑하다. 재치가 있는 사람이다. 중요한 건 그가 전혀 잘난 척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라는 거다. 영화에 신부 역으로 실제 출연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영화중에 당신 스스로 '한계의 벽을 뛰어 넘어 어떤 일을 만들고 있다'라는 설레임에 휩싸이게 만든 작품이 있는가?
지금까지 4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실제 삶보다 과장된 어떤 것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곤 두 배로 오싹함을 느껴왔다. 말할 것도 없이, <8 Mile>에서의 싸우는 장면과 이 영화에서의 모든 순간이 그래왔다. <씬시티>는 한계의 벽을 뛰어 넘는 것을 초월한 작업인 만큼 놀라운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아름답고, 놀라우며 독창적인 이 영화를 통해 개인적 삶마저 활기를 띠게 됐다.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하다. 당신의 성의 있는 대답에 마지막으로 감사를 표한다.
내가 더 고맙다. 다음에도 이런 훌륭한 작품을 가지고 다시 만나 뵙길 희망한다.
자료협조:쇼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