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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인형을 부탁해! 가슴 찡한 두나’s 도쿄놀이 (오락성 7 작품성 8)
공기인형 | 2010년 4월 5일 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T-800(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용광로 속으로 가라앉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의 마지막 장면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이들에게 화자 될 수 있었던 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터미네이터의 슬픔에 관객들의 감정이 이입됐기 때문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A.I>에서 양부모에게 버림받고 눈물짓는 소년 로봇(할리조엘 오스먼드)의 사연이 더 안타까웠던 건, 그의 감정이 가짜가 아닌, 인간이 지닌 그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한명,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의 마음을 지닌 존재가 나타났다. ‘공기인형’. 이름 그대로 공기로 이루어진 성욕 해소용 인형. ‘섹스돌’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쓰임새로 탄생한 그녀에게도 관객들은 호의적인 감정을 내어줄까. ‘그렇다’에 강력한 한 표를 던진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된 공기인형 노조미(배두나)는 주인 히데오(이타오 이쓰지)가 출근한 틈을 타 밖으로 외출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게 신기하게 느껴지는 노조미는 우연히 들린 비디오 가게의 점원 준이치(아라타)를 보고 첫 눈에 반하고, 그 곳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된다. 그날부터 노조미는 주인 몰래 비디오 가게를 촐퇴근 하며, 준이치에 대한 사랑을 키워 나간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 강해질수록 노조미는 자신이 성인용 인형이라는 사실에 슬픔을 느끼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인간의 감정을 지니게 된다는 설정은 이미 <터미네이터>나 <A.I> 더 나아가 <바이센테니얼 맨> <아이, 로봇> 등에서 다뤄진 소재다. 그러니, 감정을 갖게 된 인형이 등장하는 <공기인형>의 발상은 결코 신선한 게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인형>은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일단, 인간의 감정을 가지게 된 존재들의 정체성에 물음을 던진 앞선 영화들과 달리 <공기인형>은 인간과 그 인간들의 외로움에 오히려 현미경을 들이댄다는 점에서 그만의 독특한 색을 입는다. 여기에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로봇이나 사이보그와 달리, 속이 텅 빈 공기인형은 군중속의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묘한 매치를 이루며 ‘현대인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메타포로서의 기능까지 더한다.

공기인형이란 소재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운 삶을 어르고, 소통의 부재에 놓인 건조한 그들의 마음을 달래는 이는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로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고다 요시에의 단편만화 ‘공기소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감독은 인간의 감정을 얻어가는 공기인형과 대척점에 선 사람들, 즉 감정이 말라가는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켜 묘한 대치를 이루게 한다. 사람에게 마음을 다칠까 두려워 공기인형에게 애정을 쏟는 노조미의 주인 헤데오를 시작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을 잃고 고립 돼 가는 노처녀, 집에 틀어박힌 거식증 소년, 매일 홀로 식탁 앞에 앉아 모래알 씹듯 식사를 하는 중년 남자, 자신의 삶은 버린 채 숨어서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오타쿠 소년은 모두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초상이다. 영화는 뜨거운 피를 지니고도 싸늘하게 식은 심장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 인간을, 차가운 공기로 이루어졌지만 따뜻한 감성에 목말라하는 공기인형 노조미와 역할 바꾸기를 해 놓음으로서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온다.

사실, <공기인형>의 메시지는 상당히 계몽적이다. 인간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공기인형의 마음을 “나는 마음을 가져버렸습니다.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을 가져버렸습니다.” 식의 자조 섞인 독백으로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도 그리 세련된 방법은 아니다. 자칫하면, 지루하거나 촌스러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기인형>에는 그러한 단점을 사랑에 빠진 공기인형의 섬세한 감정선으로 치환해 내는 서정미가 존재한다. 여기에 비극이나 희극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듯 결합시켜 놓은 비정한 시선도 영화가 식상함으로 빠지지 않게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공기인형에게 자유를 부여했다면, 그것에 숨을 불어 넣은 건 배두나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일본인들이 외국 배우 최초로 일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상인 일본 아카데미상과 도쿄 스포츠 영화대상, 다카사키 영화제 등에서 왜 여우주연상을 그녀에게 안겼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각에서는 배두나가 여러 차례에 걸쳐 알몸연기를 선보인 것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데, 알몸 연기는 결코 야해 보이지 않는다. 혹시 외설과 예술의 차이가 무언지 구분이 안 가는 관객들이라면 이번기회에 그 차이를 복습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지닌 노조미는 인형 제작자 소노다(오다기리 조)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소노다는 슬픔에 젖은 노조미에게 “인간 세상에서 좋은 일은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물음에 노조미는 “인간 세상도 살만하다.”고 답하며 다시금 인간들의 세상으로 발을 내 딛는다. 아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공기인형>에서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이것일 것이다. 비록 지치고 외로운 곳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부딪혀서 살아 볼만한 곳이라는 걸 말이다.

2010년 4월 5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1세기 新인어공주. 비극적이면서 아름답고, 슬프면서 가슴 따뜻한 이야기
-日여우상 3관왕. 배두나의 연기를 보라. 이것인 진정한 두나’s 도쿄놀이
-옴마야~ ‘오다기리 조’도 나오네? 인형보다 더 인형같은 그의 모습에 심장이 후덜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팬이라면!
-배두나의 나체연기에만 집중하는 인간들. 자극적인 건, 비디오 샵에서나 빌려봐라
-서…설마, 섹스돌 홍보 영상으로 비춰지진 않겠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스타일이 아니라면!
29 )
kisemo
잘봤습니다   
2010-04-05 16:07
loop1434
기대   
2010-04-05 15:46
sinaevirus
보고싶어지네요~   
2010-04-05 14:14
sdwsds
오락성과 작품성이 생각보다 높게 나왔네요.   
2010-04-05 13:20
bjmaximus
간만에 두 기자의 평이..   
2010-04-0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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