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흥행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1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참으로 겸손한 규모로 겸손하게 개봉했다. 아무리 르네 젤웨거가 <제리 맥과이어>에서 상큼발랄 매력을 보여주었다 한들 <제리 맥과이어>는 엄연히 톰 크루즈의 영화였고, 르네 젤웨거는 그저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귀여운 여배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성미 넘치는 섹스 심벌’이라는, 참으로 안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으로 칭송받는 콜린 퍼스가 한국 관객들에겐 “저 넘은 누구여?” 소리를 듣고 있던 때였고. 그나마 관객들에게 알려진 휴 그랜트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과 <노팅힐> 등등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진, 그 어리버리 소심 착한 캐릭터가 아니라 무려 ‘악당’이고 실은 ‘조연’이라니, 이 영화의 흥행가능성은 영화판에서 밥 좀 먹었다 싶은 사람들에게서 두루두루 ‘아니올시다’ 평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원작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히트를 치기를 했나, 그것도 아니고, 맥 라이언 언니께서 나오시는 로맨틱 코미디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에게, 듣기에도 요상한 영국식 억양으로 도배된 낯선 코드의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가 먹힐 거라 생각한 사람… 감식안이 대단히 뛰어나거나 대단히 형편없거나, 둘 중 하나였으려니.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흥행에 나름대로 성공한 데다 일부에서 극도의 추앙을 받는 컬트작이 되기에 이르렀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한국에서 개봉했던 그 때, 단 2주 극장에 걸렸던 이 영화는 몇 주 뒤 몇몇 극장에서 재상영을 감행했고, 이래저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본전을 두 번 뽑고도 남을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이 영화의 소문은, 극장에서 간판이 떨어진 뒤에 더 불어났다. 비디오, DVD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꾸준히 사람들에게 어필했을 뿐만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 따위는 연애에 환상을 가득 갖고 있는 여자들이나 보는 거라고 생각하던, 자고로 영화는 액션이 짱이라 외치던 남자관객들도 슬금슬금 이 영화를 나중에사 보고 어머니나!를 외치곤 했으니… 그렇다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매력이 과연 무엇이었단 말이냐?
이제, 이 영화에 얽히고설킨 사연들을 초간단 스피드로 짚어보는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헬렌 필딩의 원작소설은 이해가 가지만 갑자기 제인 오스틴이 왜 튀어나오냐고? 그 비밀을 알려드리겠다. 바로,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출생의 비밀이다. TV 드라마의 숱한 주인공들만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알고 보니 재벌집의 하나밖에 없는 혈통이었다더라, 알고 보니 쌍둥이였다더라, 알고 보니 바꿔치기 당한 거라더라… 따위 상투적인 레퍼토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묘한 출생의 비밀이.
영국의 국립방송인 BBC에서는 곧잘 자기네들의 고전 소설을 TV 시리즈로 각색해 이런저런 배우들을 모셔다가 미니 시리즈로 만들곤 한다. 그 바닥에서도 유명한 수 버트휘슬이라는 프로듀서가 앤드류 데이비스라는, 역시 그 바닥에서 유명한 베테랑 작가를 데리고 1995년, ‘무모한 도전’을 시도한다. 그것은 바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TV 시리즈로 옮기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것이다.
제목은 디립다 거창하고 문학계에서는 근대 소설의 효시라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한껏 추켜세우는데, 엄청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책인가보다 하고 큰 맘 먹고 읽기 시작했다가 애개? 이거 웬 하이틴 연애소설이냐? 며 깜짝 놀라는 소설. 혹자들은 빠져들고 혹자들은 유치하다며 책을 던지고 마는 소설. 그 [오만과 편견]은, 영국 여성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문학 작품이다.
중류층의 똘똘한 아가씨가 상류층의 거만한 미혼남과 사사건건 시비가 붙다가 알고 보니 사랑이었다며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는, 지극히 통속적인 줄거리의 이 소설이 과연 어디가 대단해서 근대 문학의 효시고 대단한 고전 걸작이란 말인가? 라고 의문을 표시할 독자들이 있다는 것, 다 안다. 그런데 여성의 삶이 철저하게 남자들의 경제력에 의존되고, 재산은 철저하게 남자들에게만 상속되는 당시 영국 사회에서, 이 사회 풍속도와 계급간 모습을 리얼리스틱하게 그리고, 당대 소설들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주체적이고 자립심 강한 여주인공이 나오며, 그런 무지막지한 사회의 틀 안에서 사람이 갖기 마련인 어떤 본성들을, 그것도 유머와 재치 통통 넘치는 설정과 문장으로 묘사한다는 건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당시는 동인도 회사니 서인도 회사니 하며 영국이 식민지 경영에 박차를 가하던 때고, 인텔리 및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또 한편으론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가난한 여성들과 심지어 5, 6살 어린아이들도 공장에서 마구 일하던 상황… 기존의 계급 제도에 균열이 오던 그 미묘한 상황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매우 미묘하고 암시적으로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유한 계급의 한남한녀들에 대한 제인 오스틴의 문체는… 자기도 속한 계급이라 그런지 애정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가벼운 냉소가 들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고로 언제나 고개를 30도 가량 위로 들고 모든 사람을 내려다 보는 듯한 남자주인공이 사랑에 눈멀어 흩어질 때, 여성들은 얼마나 짜릿함을 느끼며 흥분하던가. 그리고 영 재수꽝인 줄 알았던 그가 알고 보니 심성도 좋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도 기꺼이 감싸는 따뜻하면서도 현명한 사람이고, 실은 사교성 없는 성격을 스스로 방어하느라 남들에게 재수없어 보이는 것임을 알았을 때, 어찌 이 남주인공에 빠지지 않을 텐가. 얼굴에 거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은 채 여주인공과 계속 다투고 싸우는 척해야 했던 남자주인공, 미스터 다아시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바로 콜린 퍼스였으니…
사회적 체면도 그렇고, 자기자신도 당황할 만큼 뜻하지 않은 사랑의 감정에 제스처 하나,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기자신을 부여잡다가, 호수에 뛰어들고 젖은 셔츠 바람으로 돌아다니다 딱 걸렸네! 여주인공과 마주쳐 버리고, 여주인공이 위기에 빠졌을 때 아무 말 없이 생색도 안 내면서 모든 일처리를 완벽하게 해주는… 연기하기가 꽤 까다로운 이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그는, 심지어 원조 미스터 다아시였던 로렌스 올리비에를 능가해 버릴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역을 맡았던 남자 배우, 콜린 퍼스가 평소에 보이는 처신과 행동거지는… 사람이 참 바르다. 게다가 지적이고 똑똑하다. 오죽하면, 이 사람이 <오만과 편견>의 연기를 하면서 인터뷰에서 했던 캐릭터 분석이, 유수의 문학평론가들도 글이 실리기 어렵다는 문학잡지에 떡하니 실려서 팬들을 뿌듯하게 만들었을까 말이다.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역시나 이 BBC 시리즈와 콜린 퍼스의 미스터 다아시에 홀딱 반해 정신 못 차리고 있던 헬렌 필딩이 쓴… 일종의 팬픽이다.
TV 방영시간마다 거리가 쥐죽은 듯 조용해져버리는 런던 거리를 사랑한다고 브리짓이 썼던 구절이 있지 않던가. 브리짓이 우울할 때마다 친구들이 들고와 밤새 또 보고 또 보고 하던 게 <오만과 편견> 테이프, 그 중에서도 젖은 셔츠 씬이 아니던가. 한술 더 떠서, 속편이자 이번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의 원작이기도 한 [브리짓 존스의 애인]에는 브리짓이 콜린 퍼스를 인터뷰하러 가는 장면까지 나온다! 기억하시는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콜린 퍼스가 맡았던 그 캐릭터 이름이 ‘마크 다아시’였음을. 성도 똑같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원작을 각색하고 원작에 없던 장면을 넣으면서 굳이 <오만과 편견>을 언급한다.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아시가 살던 대저택의 이름, ‘펨벌리’가 영화로 오면 브리짓이 일하는 출판사 이름이 되어 있고, 출판사 리셉션 장면에선 <오만과 편견> 출연자였던 크리스핀 본햄 카터가 카메오 출연을 한다. 대니얼 클로버(휴 그랜트)와 브리짓이 보트 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지는 장면, 그것은 단지 영화 <타이태닉>의 오마쥬 및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패러디가 아니라, 실은 <오만과 편견>의 젖은 셔츠 씬의 패러디인 것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개봉된 이후, 원작소설의 판매부수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번 <오만과 편견>을 방영했던 EBS나 케이블 방송 등의 게시판에는 <오만과 편견>의 재방을 요청하는 글들이 러쉬를 이루었다. 그리고 실제로 On Style 같은 케이블 방송에서 이 시리즈를 다시 방영해주기도 했고. <노팅힐>에서 보듯, 미국인의 영어 악센트가 섞여야 관객들에게 좀더 편안함을 주었던 영국산 로맨틱 코미디였으나, 완전히 영국식 악센트의 영어로만 이루어진 로맨틱 코미디, 또한 ‘워킹 타이틀’ 표 코미디가 완전히 한국 관객들에게 친근함으로 자리잡게 된 계기가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 할 수 있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러브 액추얼리>의 슬리퍼 히트를 기억해 보라.)
이제,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혈팬들은 처음 속편의 광고물이 극장에 거대하게 붙는 그 순간, 저마다 인터넷에 들어와 ‘드디어 개봉한다’며 감격의 기쁨을 나눴다. 이런저런 변화의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한 건지, 영화사에서는 전편 때와는 딴판으로 여기저기에 광고를 도배하고 있는 것 같다. 역시 원작소설에 없었으나 영화에서 만들어져 관객들에게 무한한 재미와 웃음을 선사했던 ‘두 남자의 유치찬란 격투씬’이 이번 속편에도 들어가 있는 듯하다. (예고편을 보니...) 대니얼 클로버의 느물느물한 성격은 한층 강화된 것 같고. (세상에, 마크 다아시에게 “그렇게 사랑하면 결혼하지?”라고 한 다음 “난 유부녀가 더 땡겨”라고 말해 매를 버는 대니얼 클로버라니. 쿡쿡~)
겉만 번드르하고 매력적이지만 실속없는 남자와 눈에 잘 안 띄지만 알고 보니 진국인 남자 사이에서 한 여자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는 흔하고 흔하다. 하지만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이루어낸 것은 좀더 특별하다. 뚱뚱하고 술고래에 줄담배를 피워대고, 어처구니없어 민망할 지경의 실수만 연발하는 여자가 ‘귀여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여자도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뭇 사람들을 유쾌하게 녹여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가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또한 그저 마케팅 리서치 결과를 참조해 책상 머리에서 ‘장르영화의 공식’을 이래저래 끼워맞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현대 도시인의 당면한 과제를 풍부하게 덧붙여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뽑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이것이 그 사회에 내재한 단단한 문학적 / 문화적 토양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대목에서는, 영국 사회의 문학적인 기본 사회 토대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이제 속편이 개봉대기 중인 지금, 우리는 과연 이 속편이 전편의 아우라를 얼마만큼이나 이어가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