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일본판과 큰 변동이 없어서, 회사와 집만 와리가리하며 시계불알처럼 살던 우리의 주인공 존(리처드 기어 분)이 우연한 기회에 심오한 춤바람의 세계에 빠져 댄서의 길을 걷다가 어찌저찌해서 시계불알 같던 생활을 청산하고 인생의 즐거움을 깨닫는다는 스토리다.
하지만 명색이 영화의 본산이랄 수 있는 헐리웃이 일개 일본영화를 그대로 컨닝구하기는 만무한 일. 미국버전은 일본판 <쉘 위 댄스?>를 자국민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약간의 수정, 보완을 가했는데 그 첫 번째로 주인공 존 클라크 역에 개기름 그윽한 느끼한 눈빛이 일품인 리처드 기어를 캐스팅한 점이다.
아니, 매력이라고는 코딱지 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심해 터진 샐러리맨에 불과한 일본의 ‘존 클라크’, 스기야마 역에 뭘 입혀나도 뽀대나고, 뭔 짓을 해도 매력이 넘치는 리처드 기어를 캐스팅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아니나달라 존은 스기야먀처럼 무기력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인물 훤칠해, 직업은 변호사지, 게다가 춤도 척하면 척할 정도로 빨리 배우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니, 한마디로 매력만점의 캐릭터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버전 <쉘 위 댄스?>는 왜와이뭐땀시롱 원작에서 매력빵점으로 그려졌던 인물을 매력만점의 캐릭터로 변모시켰을까? 로맨틱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일본의 <쉘 위 댄스?>를 보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여강사 마이(쿠사카리 타미요 분)와 스기야마 사이에 로맨틱한 기운이라고는 눈꼽 만치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에 반해 미국버전은 도도보다는 섹시한 매력이 철철 넘치는 제니퍼 로페즈를 캐스팅함으로써 리처드 기어와 짝을 이뤄 일본판과는 상반된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더 강조되는 건 존과 그의 아내 비버리(수잔 서랜던 분)와의 관계다. 이 점이 일본판과 미국버전이 확연하게 다른 부분으로, 일본의 <쉘 위 댄스?>를 보면 스기야마가 아내를 대할 때 예의 그 무기력감을 드러내며 퉁명스럽게 대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반면 존은 비버리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외도(?)에 대해 사과하는 등 아내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급기야 영화 막판에 아내를 위해 환상적인 이벤트를 마련하며 감동의 순간을 연출하는데 바로 이 장면에서 리처드 기어만이 우려낼 수 있는 로맨틱함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원작의 느낌과는 상이한 리처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즈를 포진시킴으로써 미국의 <쉘 위 댄스?>는 일본 <쉘 위 댄스>와는 달리 존과 폴리나(제니퍼 로페즈 분)의 끈적끈적한 훈련과정과 존과 비버리간의 러브필 물씬한 화해 장면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원작의 가장 큰 재미였던 조연급들의 이야기가 뭉텡이로 짤려나간 건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기억하시는가,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정열의 지루박 스텝을 밟아 수많은 이를 감동의 도가니탕에 젖게 했던 문제적 댄서 아오끼(다케나카 나오토 분)를.
아시다시피 그가 추는 오바 댄스는 단순히 관객을 웃기고 자빠라지게 하기 위한 오바가 아니다. 윗대가리한테서는 인정 못 받아, 부하직원들한테는 무능력한 선배로 찍혀 기 한 번 제대로 못 피는 회사에서의 한(恨)을 풀기 위해서는 오바로써 정열과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렇듯 일본판 <쉘 위 댄스?>가 절라게 재밌는 영화로 기억되는 건, 다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는 조연급들이 주인공과 지지고 볶고 하는 가운데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들로 그려지며 주인공을 능가하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본판 <쉘 위 댄스?>에 출연하는 모든 조연들은 그들 행동 하나하나에 사연이 있고, 대사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을 만큼 캐릭터가 살아있었다.
그러나 미국버전의 조연들은 앞썰했듯 모든 재미를 존과 폴리나, 그리고 비버리에 몰아주고 있는 전차로 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밍숭맹숭한 캐릭터로 전락하며 그저 주인공 옆에서 악세사리처럼 알짱거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퇴장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아무리 아오끼의 오바 댄스가 독보적이었다고 해도 아오끼의 미국버전이랄수 있는 링크(스탠리 투치 분)의 활약이 미비하다는 점은 영화의 재미를 반쯤 포기한 것과 진배없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패착이라 하겠다. 물론 링크가 이럴 정도니 다른 조연들이야 더 말할 바도 없고...
그 결과, 미국버전 <쉘 위 댄스?>는 미국 관객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이야기의 초점을 오로지 주인공들에게 맞추는 우를 범함으로써 원작의 느낌을 되살리는데는 실패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