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최영의 선생의 젊은날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겠다. 투신으로, 가라데의 수장으로 인생을 산 남자의 처음은 분명 혼란과 폭력으로 얼룩졌을테니. 평생을 투신으로 살다 간 단일무술단체로써 세계에서 가장 큰 조직의 창시자를 한 남자를 한국인으로 그리는 것은 더욱 힘들겠다. 무술과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욱 많을 그의 인생에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픽션의 조각을 많이 필요로 할테니. 그러나 무술가로서 그의 진심은 그의 몸짓에 숨어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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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이름 '최배달'이 탄생한 배경도 마찬가지다. 최영의 선생이 '배달'이라는 단어를 한국인의 자의식 속에 고심하여 이름으로 삼았으리라는 판단이 한국인으로서의 성과 일본인으로서의 이름을 이어붙인 이유가 되었을게다. 영화의 원작이자 그 이름을 널리 알린 만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최영의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것도 '최배달'이라는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최영의 선생이 한국인의 자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최영의 총재의 '극진가라데'는 일본 가라데의 한 유파이며 생전 최영의 선생은 국제 가라데 연맹의 장을 맡았던 가라데인이다. 무술인으로서의 최영의는 일본인이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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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가는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무용수나 배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무술가는 손과 발과 다리를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심정적으로 허무주의를 유지했던 [와호장룡]의 주인공들도 입을 통해 나오는 대화가 아니라 손과 발의 격한 움직임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아름다운 무협영화 [와호장룡]은 영화 전면에 무술을 통한 육체의 대화를 뿌려놓는다. 오랫만에 만난 리무바이와 슈리엔, 한두마디 말보다 공격과 방어가 오고가는 간단한 대련. 젠에게서 천부적인 소질을 발견한 리무바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고민할 때는 독백이 흐르기 보다는 여명을 맞아 칼을 휘두르며 유려한 몸짓으로 단련을 수행한다.
최영의 선생의 정신적인 국적을 한국으로 본 만화 [바람의 파이터]의 해석을 충실히 계승한 영화 [바람의 파이터] 역시 무술가에게 몇 마디 말보다 육체의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젊은 최영의의 삶에 범수라는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내러티브와 육체적 시퀀스에 모두 한국인의 자의식을 더한다. 범수라는 인물은 최영의에게 택견을 가르치는 인물로 젊은 최영의와 인간적인 교류를 더해가던 중 독립운동 참가로 살해당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민족적인 완벽함을 유지하는 범수는 질풍노도의 시기 최영의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만들어줌과 동시에 차후 가라데인이 되는 최영의에게 한국적인 동작을 부여한다.
범수의 등장으로 영화 속 최영의는 현실의 최영의와는 전혀 다른 한국적 이상의 최영의가 된다. 실전공수의 달인으로 컴팩트한 동작과 강한 힘으로 적을 단숨에 제압하던 마쓰다쓰의 기술은 몸의 탄력을 이용해 화려하게 회전하여 적에게 몸을 싣는 발차기를 날리는 택견공수 최배달의 기술로 변해버렸고, 영화는 내내 최배달의 몸은 택견을 기억하고 있고 최배달의 정신은 한국혼으로 가득하다고 울부짖는다.
반쯤은 영화적인 선택이었을게다. 카메라 앞에서 화려해야하는 액션영화의 안중에 극진가라데의 실전적이고 군더더기없는 기술은 성에 차지 않았을테고 택견은 영화적 화려함과 민족적 자존심을 동시에 채워주는 훌륭한 선택이었을게다.
지금까지도 감탄을 자아내는 일격필살의 황소잡기를 [바람의 파이터]의 최배달에게선 몇몇 날이 선 발차기에서만 느낄 수 있지만, 평이한 내러티브에 올려놓은 연속적인 대결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훌륭한 선택이 가져온 미덕일게다. 최소한 이 영화, 파이터의 대화는 몸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고 있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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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담백하고 소박한 기술이라도 수년간 연마한 달인이 보이는 기술은 육체적으로 잘 조율되어 있으며 프레임에서도 강렬한 오라를 뿜는다. 잘 단련된 무용가의 움직임이 속성연마한 배우가 프레임에 투영하는 이미지와 다른 것처럼 잘 단련된 무술가의 동작은 급조한 동작이 따라올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액션스쿨과 극진가라데 체험을 통해 화려한 발차기를 선보인 [바람의 파이터]속 최배달의 모습보다 뿌옅게 지글거리는 자료화면 속에서 간단한 수도로 황소를 제압하는 최영의가 더욱 힘있게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다.
개봉시에 무중력을 연상하게 하는 가벼운 몸동작으로 저예산의 무명영화라는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은 [옹박]도 마찬가지. 실제로 무에타이를 연마하며 숙련된 육체의 단련으로 나타난 스크린의 '토니 쟈'는 전성기 성룡을 연상하게 하는 아크로바틱 액션을 선보인다. 발매된 DVD를 보면 토니 쟈의 영화속 오라가 괜시리 느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서플먼트 사이에서 보여주는 단련된 동작은 무술가에게 육체의 언어가 가지는 풍부한 표현력을 한 데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 옹박불상을 모신 절에서 보여주는 단련장면을 보면 인체의 각 부분을 단련시킨 후 가장 충격을 강하게 줄 수 있는 방법으로 단련한 무에타이의 직선적인 공격 스타일을 옅볼 수 있다. 영화 내내 보는 것처럼 왜소한 몸과 관련없이 온몸을 실어 쇠처럼 단단하게 단련한 팔꿈치로 적의 급소를 내리치는 치명적인 공격은 파이터에게 백마디 말보다 더 확실한 표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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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화평이 [매트릭스]를 만들며 들인 수련의 시간만큼 인고의 숙련을 거치지 못한 [메달리온]의 여주인공 클레어 폴라니는, 트리니티처럼 유연한 발차기를 선보이되 한발에 적을 고꾸라트릴만큼 위력적인 발차기를 구사하지는 못한다.
유연하되 힘없는 클레어 폴라니의 발차기는 쉰이 넘어서 단련이 입신의 경지에 이른 스턴트무술인 성룡의 발차기에 느껴지는 힘과 비교되어 더욱 앙상하게 느껴진다. 과연 와이어에 매달려 발차기를 날리는 영화적 무중력 상황에서도 성룡의 발차기는 그 발을 맞고 과장되게 날아가는 적이 믿어질만큼 위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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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련이라면 누구 못지 않게 했을 이연걸에 이르면, 파이터에게 주어진 육체의 표현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된다. 짧고 왜소하며 동안을 가진 이 약해빠져보이는 남자의 힘있는 움직임은 [소림사][황비홍]을 거쳐 세간에 널리 알려졌고, 리메이크 [정무문]쯤에 이르면 원작의 이소룡을 의식한 듯 당장 유도부원 30명을 쓰러트릴 듯 위력적인 연속공격을 보여준다. 심지어 형편없는 이야기로 내러티브가 지리멸렬해진 [더 원]조차도 이연걸의 풍부한 표현력은 다른 어떤 무술영화도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서 영화의 이야기 이상을 만들어낸다.
같은 외모의 사람을 영화에 등장시킬 때, 구분점을 만들어 두는 것은 영화적인 상식이다. 아이반 라이트만처럼 애시당초 아예 닮지 않은 이란성 쌍둥이를 등장시킨 [트윈스]나 둘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한 올슨 자매의 [뉴욕미니트]같은 영화가 아니라면, 헤어스타일이나 옷을 다르게 하여 구분하는 [더블반담]이나 사투리로 똑같은 인물에 차이를 두는 [러브레터]같은 구분점을 만들어 두어야 하겠다. 그러나 대단한 작품 [더 원]은 마지막에 남는 두 이연걸의 복장도 같으며(막판에 한쪽이 겉옷을 하나 더 벗긴 하지만) 말투마저 똑같다. 여기서 달인의 육체는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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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동작의 의미는 방어를 위주로 적의 공격을 그대로 이용해 적을 제압한다는 의미다. 주먹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팔괘장. 잘 단련된 유도인이 적의 힘으로 적을 넘기는 것처럼,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하는 팔괘장은 균형과 원형의 움직임으로 적 공격의 강맹함을 그대로 적에게 돌려준다. 반면 직선동작의 무술 형의권은, 반보 나아가 내지른 붕권이 천하를 호령한다는 전설처럼 직선적이고 강맹한 공격력으로 유명한 권법이다. 반발자국 옮긴 형의권의 주먹에 맞으면 그대로 실신할만큼 강맹한 무술.
중국에서 '내가3권(태극권 - 팔괘장 - 형의권을 뜻한다)'으로 불리며 일가를 이루고 있는 전혀 다른 개성의 두 무술을 한 몸에 구사할 수 있는 달인의 육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표현을 [더 원]은 이루어낸다. 강맹한 주먹으로 상대를 죽이려는 악한과 주먹을 전혀 쓰지않고 몸과 팔의 회전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주인공.
영화는 '종합예술'이란다. 영화에는 다양한 표현방법이 공존한다는 이야기일게다. 음악과 그림, 대사와 표정 등이 모두 영화에 풍부한 표현력을 부여한다. 더불어 무술의 세계에 들어온 영화에는 내러티브 위에 얹히는 몸동작도 표현의 일부분이다. 가끔은 빈약한 이야기를 압도할만큼 풍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