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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지 못하는 소설가 아버지의 부탁으로 본의 아니게 도서관을 들락날락거리며 화집을 빌려던 현채는 어느 날 그 책 안에 적힌 완전 작업에 다름 아닌, 하지만 순수한, 싸랑의 메모를 발견한다. 상당히 선수스런 작업테크닉은 이 화집 저 화집으로 끊임없이 릴레이되고, 끝내 그 짧은 메모 경구에 감복받은 현채는 작심하고 그 글의 작성자인 멋들어진 남정네를 찾아 짱구를 굴리며 추리를 한다. 그런 와중 현채를 소시적부터 짝사랑해온 동하(김남진)는 전철 7호선 기관사가 되어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구애를 펼치는데...
카롤링 봉그랑의 소설 <밑줄 긋는 남자>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기대이상으로 잘 나온 때깔 좋고 내용 깔끔한 로맨틱 추리 연애담이다. 마치, 아직은 사회의 더러운 구정물에 몸이 더럽혀진 적이 없는 동네의 이쁘장한 여동생이 자신의 소박한 로맨스에 약간의 살을 붙여 뽀샤시하게 말해주는 것처럼. 그러기에 이 상큼한 연애이야기는 동세대라 할 수 있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인 그들에게 동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상당하다.
<봄곰>이 기존의 로맨스 코미디 또는 청춘 영화와 다른 점은 우선, 말을 앞세운 채 점입가경적인 에피소드적 소동극을 벌이는 사이사이 줄기차게 삐져나오는 오바질이 눈에 밟히지도 귀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스토리도 그렇고, 서로 치고받는 대사도 그렇고, 결말도 그렇고,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딱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소임을 다한다.
그 다음으로 특이하게도 <봄곰>은 추리라는 형식을 내러티브의 한 가운데 떡허니 위치시키고 드라마가 나아가게끔 얼개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화집에 적힌 사랑의 속삭임과 함께 보여지는 2차원의 그림들을 시공간을 초월, 3차원의 공간으로 끄집어내 현채가 상상함으로써 살아숨쉬는 몇몇의 장면들은 영화에 양념으로 쓰이며 특별한 재미를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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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까놓고 얘기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하지만 말이다.
시종일관 오로지 어떻게든 웃기고 울려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인해 우악스런 호들갑을 스크린에 도배질하는 기존의 그것들보다는 차라리 <봄곰>처럼 대단한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할 바에야 착실하게 자신의 역량에 맞는 것만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게 훨 낫다. 오바와 과욕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기본을 개무시하는 영화가 심심찮게 목도되기 때문이다.
주어진 캐릭터를 스스로 잘 관장하며 말끔한 연기를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여준 배두나와 초짜배기임에도 별 무리없는 모습을 선보인 김남진 그리고 두 선남선녀의 사이 어디쯤 서성거리고 있을 미지의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봄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괴나리 봇짐 싸매고 애인과 가까운 공원에 놀러가듯 편하고 가벼운 자세로 관람행위에 임한다면 의외의 흐뭇함을 가슴살에 담아 극장을 박차고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살짝이 귀띔해드리는 바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봄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이 김남진과 배두나가 라면 먹는 장면이라고 했었더랬다. 허나, 라면을 주식으로 하는 글쓴이 워낙이 라면에 물려서 그런지 몰라도 개인적으론 더 와 닿았던 장면이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현채의 집 앞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다 현채가 현관문을 닫자마자 문을 향해 동하는 나지막히 읊는다.
“사랑해!”
못난 놈 저것도 남자라고....하며 지금 버럭 성질 내실 남자분들 많을 것이라 헤아려진다. 필자 역시 저 닭살스런 말, 글로써만 읽었다면 심히 심기가 불편했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이다. 비록 세음절밖에 해당되지 않는 외마디었다만 어떠한 장문의 연서보다도 그 울림은 깊고 넓었다는 말이다. 이왕지사 보실 거라면 꼭 직접 느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