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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인터뷰] 제2부 ‘푸른’ 해를 향한 고독한 카리스마, 오광록을 만나다
취중 인터뷰 | 2004년 4월 5일 월요일 | 서대원, 심수진 기자 이메일

독특한 캐릭터로 눈길을 잡아챘던 '마지막 늑대'의 악당 3인방
독특한 캐릭터로 눈길을 잡아챘던 '마지막 늑대'의 악당 3인방
<마지막 늑대>에서 그 특유의 목소리로, “아~름답다”라는 대사를 하시잖아요. 그건 원래 있던 대사인가요, 아니면 애드립이신가요?
아, 그거요. 원래는 ‘독수리’ 역할이 거의 대사가 없었어요. 네 마디인가 다섯 마디였던 거 같은데…정선에 촬영 이틀 전에 도착했을때, 구자홍 감독이 그 장면에 대사를 넣는다면 어떤 대사가 좋을지를 묻더라구요. 그래서 “여기냐, 아~름답다”라는 대사를 얘기했더니, “좋다” 그래서 하게 됐죠. 첫 번에 오케이가 났어요.

영화에 출연할 때 그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 기준이 어떤 거세요?
시나리오가 좋아서 작업을 하기도 하고, 감독의 작가적 기질이 좋아서 할때도 있구요. 우정 때문에 굳이 할 수는 없구요.

영화 언론 매체가 이런 부분은 정말 피하고, 지양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까 시사 끝나구 개별 인터뷰를 하는데 어떤 여기자가 상당히 이상하더라구. 도전적으로 따지듯이 질문하고…불쾌하더라구. 영화 전문지들이 막 그러는 건 아닌데, 성격 자체가 조금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악의적이라기 보단 약간 사시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잖아. 나는 그냥 그런 사람들은 안 보지.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쪽으로 빠져서 유명해진 배우들이 적지 않은데요. 앞으로 연극이나 영화 둘 중에서 더 매진하고 싶으신 분야가 있으시다면요?
(생각에 잠기며) 영화 무척 좋아해요. 연극은 배우한테 아주 매혹적인 분야구요. 무대는 깊숙이 발을 들여놓는다고 하거든요. 무대에 깊이 발을 들여놓고, 호흡이 걸려서 무대의 시간을 다녀오면 몸상태가 바뀌어요. 근육도 바뀌구요.

영화라는 건 호흡을 끊었다 가야 해서 어려움들이 있는데…음, 영화는 하다보면 만들고 싶어지죠. 만든다는 건 잘못된 표현일지 모르죠. 영어로는 메이킹이란 표현을 쓰는데…. 시도 그림도 삶이 만나는 것들, 마음에 젖었다가 배어나오는 것인데….
영화도 결국 삶이 나타나는 것이니까 만들어지는 작업이 아니라…그래요 쩜쩜쩜(…)으로 놔둬야겠다. 아직 내가 가는 봉두(峯頭)의 어느 지점이니까.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지망생들은 정말 많잖아요. 하지만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은 건강한 선수들이 많아서…물론 어렵죠. 미술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겠는데, 자기가 하는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구해서 작업을 할 수 있다면야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어요…. 근데 요즘은 다른 일을 해서라도 개척을 해나가는 청년들이 많으니까….
청년은 푸른 해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내 마음의 정열들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푸름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어떡하겠어요? 미래의 멋진 작업들을 생각하면서, 단지 꿈이나 저편의 이상만이 아니라 내 살아가는 날들의 푸른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개척해나가야지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서 “예술가에게 담배는 저 링겔병과 같은 거야”라는 대사를 하시잖아요. 술과 담배 중에 어떤 게 개인적으로 그런 무게감을 가지고 있나요?
저한테는 담배가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왜냐면 시하고 보내온 시간들이 있으니까. 예전에 연극을 1년에 한 편, 많으면 두 세 편 정도 했었어요. 연극 한 편이 끝나고 나면, 지쳐서 담배를 많이 피게 됐죠. 20대 때는 많은 천재(天災)에 몸을 담그게 되지. 그게 담배였고….

술도 연속될 때는 휘둘려서 마시기도 하는데, 자리가 불편하면 술은 안 마셔요. 술은 즐겁게 마시지 않으면, 자리를 피해버리게 되죠. 몇 시간 있어도 몇 잔만 마시게 되고, 오래 못 있어요. 선배들이 많으면 길어야 세 시간 정도. 그 다음 자리는 못 갔죠.

평상시 남는 시간에 비디오나 DVD를 즐겨서 보시나요?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가 있으시다면요?
개인사적인 이야기하고 많이 연루가 돼서 얘기를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문학에 관해서도 그렇고…. 아무튼 6~7년 정도 휴지(休止) 상태처럼, 놓아두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시도 그렇고. 어느날 쓴 풀을 씹었다고 그래야 하나. 그런 시간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제가 하나의 책을 놓게 되거나, (생각에 잠기면서) 올해나 내년이 지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야기하기로 하구요.
물론 영화 좋아하죠. 그런데 휴지 상태기 때문에…뭐, 요즘은 특별히 선택을 안 해도 좋은 채널들이 많으니까. 다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좋은 영화를 만나면 보기도 하구요.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이 있으시다면요?
그것도 천천히 기회가 닿으면 얘기하기로 하구요, (생각에 잠기며) 외국배우 한명 얘기할까요? 그 영화가 어땠다 그런 거 말고, 그냥 잭 니콜슨이라는 배우에 대해 잠깐 얘기할게요. 어느날 우연히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연출했던 밥 라펠슨 감독의 <맨 트러블(Man Trouble)>이란 영화를 보게 됐어요. 그 영화에 나온 잭 니콜슨의 뒷통수…흘러가는 강을 보고 있는 잭 니콜슨의 그 뒷통수의 휴머니티…하하하하.

엉뚱한 얘긴데 작업을 할 때, 그렇게 휴머니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늑대>에서 ‘독수리’가 우리가 익히 아는 악당일 것인가. 그건 감독과 피디의 고민과도 만났던 부분인데요. 전형적인 악당이 아니라 미워할 수 없는 악당 삼인조가 됐으면 했었어요.

난 악당이라는 건, 그의 생 자체가 처형당한 것 같아. 어쩌면 내가 보고 있는 삶에 대한 비극적인 시선이기도 하겠지. 점점 더 빛을 터뜨리면서, 그 푸른 빛을 터뜨려가는게 인생인데, 물론 영혼으로 다가가게 되겠지만…악한 사람들, 후진 인생들은 인생 자체가 처형이기 때문에, 난 그들이 그걸 추구하거나 꿈꿀 것 같지가 않아. 어떨때 그들의 눈빛을 보게 되면, 아주 외로워. “네가 무슨 그런 얘기를 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할 수 없는 인생들이 있겠죠.

배우나 작가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그러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선한 이들이 괴롭힘을 당하면서 살고 있구나’와 같은 다수결의 시선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그들의 고독과 그렇게 처형으로 가게 했던, 그들의 영혼을 잠식해버린 사회를 다루어야하는 거 아닌가? 그런게 저의 배우로서의 연기관같은 거에요.

요즘 탄핵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여쭤어봐도 될까요?
촛불시위에 대해선 나 역시 이 사람들 바보 아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터무니없는….
갑자기 젊은 시인의 시가 생각나네. 구광본이라구 지금은 나이가 제법 됐을 것 같은데…한 15~17년 정도 전쯤, 스물 두 세살 정도 됐던 젊은 청년의 시였지. 민음사에서 나온 『강』이라는 시집이었는데,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그 시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기린이 아니라 기린을 그린 그림이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내가 그린 그 기린은 캔버스를 뚫고 나와 저 콩크리트 바닥 위에 발자국을 찍는다’라는 구절이에요. 그런 것이 청년의 정신인데요. 와, 이 시 진짜 오랜 만에 생각난다.

태양을 볼 때가 있었어요. 막 스물 일곱인가 여덟 됐을 때 해를 참 많이 봤었죠. 어느 겨울인가, 해를 보다보면 눈도 많이 탔지. 해를 보다 보면, 끝선들이 어디론가 아득히 비어져버린 것 같은 거에요. 그리고 흑점은 새가 나르는 것같이 멀리서 푸른 새처럼 타오르는데… 사람들을 계속 어둡게 살게끔 몰아가는 이 사회는…작가들은 사회에 있지 말아야지….

앞으로 특별하게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요?
일단 연극 제작을 하고 싶어요. 영화로 보자면 아주 작은 소규모의 액수겠죠. 하지만 그 제작비를 좀 까먹고 싶어요. 희곡을 쓰고 싶구.

'마지막 늑대'의 홍보사인 이손필름의 권용주씨도 보다 못해 술한잔!
'마지막 늑대'의 홍보사인 이손필름의 권용주씨도 보다 못해 술한잔!
제작하는 연극에 직접 출연도 하실 예정이시구요?
출연이요? 출연은 동지들이 하는 거니까. 제가 희곡을 쓰고 제작하더라도 우정출연해야죠. 생각했던 작업이 있어요. 다리 하나를 절면서 대사는 여섯 마디 이내로 줄이구, 노래 한 곡 정도 하는 역할로 잠깐 등장하고 싶어요.

사람들한테 오광록은 이런 배우다라고 남고 싶지 않은 이미지가 있으시다면요?
잘하기도 했고, 못하기도 했는데…. 잘했다는 기준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푸른 해의 기준으로 봅시다. 명확하게 표현이 안 되는데 못했던 걸 인정하거나 고쳐가지 않고 좋았던 멋의 순간으로….

페이소스가 짙은 역할들을 왠지 좋아하실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정말 하고 싶은 역할 중에 바보 역할도 참 좋아요. 연극하면서 바보에 다가갔던 역할들이 한 세 번 쯤 있었죠. 무구함이 좋아요. 천진함은 누구나 사랑하는 것이니까. 저는 거대한 기론 속에 저를 두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제 자존심이죠. 그래서 질문을 피해가는 것도 있어요. 연기란 말도 사실 좋아하는 말이 아니에요. 어느 시간이 지나면 삶의 이력처럼…독립군의 이력도 있듯이 야생의 이력처럼 묻어나오는 거니까요. 삶은 기술보다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연극하면서 이십년이 지났는데, 제가 배운 건 사람에게 잘 하는 게 가장 좋은 배우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끝인사 부탁드릴게요.
저는 배우 오광록입니다. 너무나 많은 감독, 작가, 시인들, 예술가들이 있지만 삶은 누군가가 디렉팅을 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죠. 그건 진짜 마음의 동지들, 평화를 사랑하는 친구들만이 전해줄 수 있는 것이라구 생각하구요. 언제나 ‘첫’은 속눈썹에 묻어있듯이 사람에게 잘 하는 사람이 최고로 좋은 작가죠.

푸른 해를 살아갑시다. 너무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너무나 많은 격정들과 파토스, 물빛 속에 천연색이 있듯이 난무하는 칼라속에 흑백도 보시구, 슬픔도 사랑하시구요. (술잔을 들며) 작은 잔이지만 큰 바다를 마셔요.


마치며

이렇듯 군데군데 문학적인 향기를 머금은 오광록씨의 답변들은 때로는 온전히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어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또 조금더 내밀한 사이가 된 뒤에야 그의 삶과 생각을 흘깃 엿볼 수 있는 질문들도 있었기에 왠지 모르는 아쉬움이 남았던 취중인터뷰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는 그가 말한 휴지 상태를 불러일으킨 건 뭐였을까를 생각하다, 문득 어느 시인의 싯구가 떠올랐다. ‘내가 한때 몸을 내주고 그 안에서 행복하고자 했던 것들…피와 살의 찌꺼기라고도 부르지 못할 이 허튼 몸부림의 궤적을 으깨어다오’. 그는 마치 이 싯구처럼 치열하게 앞을 향해 달려가다가도 문득 멈춰서서 이런 쓰라린 회의와 자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채찍질 할 것만 같은 배우였다. 그가 사랑하는 시(詩), 평화, 연기, 또 알 듯 말 듯한 푸른 태양을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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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및 정리: 심수진 기자
인터뷰: 서대원 심수진 기자
촬영: 이기성 피디

6 )
pretto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2010-01-30 16:16
qsay11tem
좋은 활약을   
2007-08-09 21:13
kpop20
익숙한 배우   
2007-05-27 11:25
js7keien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배우 오광록 씨,
이 기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게 많네요   
2006-10-02 12:04
soaring2
아 저배우 이름이 오광록이군요?   
2005-02-13 07:04
cko27
ㅎㅎ 아주 개성이 철철 넘쳐흐르시는 분이네.   
2005-02-0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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