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들이 만나게 되는 제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어딘가 모가 나 있거나 구구절절 사연 한 번 기구하다. <파파로티>의 장호(이제훈) 역시 다르지 않다. 폭력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성악을 꿈꾸고 있으니, 상진과 장호가 톰과 제리처럼 맞부딪치는 건 당연지사. 영화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난 두 남자가 싸우고/화해하고/오해하고/이해하고/동지애를 쌓아가는 과정을 익숙한 패턴으로 전시해 나간다. 어딘가 시대에 뒤떨어진 영화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낮에는 학생-밤에는 조폭이 되는 장호의 이중생활 덕분에 영화는 또 하나의 사연을 품을 기회를 얻는다. ‘장호와 장호가 믿고 따르는 조폭형님 창수(조진웅)’의 관계가 그것인데, 아쉬운 건 이 드라마 역시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들의 이야기는 신파의 강마저 건넌다. 남자다움과 의리로 조직폭력은 미화되고, 이야기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마음 따뜻한 엔딩으로 내닫는다.
안일한 이야기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배우들의 진면목은 더욱 빛난다. 밀도 낮은 서사에 의해서 배우의 연기가 사장되는 경우와 달리, <파파로티>는 배우가 내러티브의 구멍마저 길어 올리는 영화다. 도식적으로 얽힌 갈등 라인이 한석규를 통과하면서 현실감 있는 디테일을 얻는다. 어눌하지 않은 성악 제스처와 무대매너와 표정연기를 보여준 이제훈의 존재감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파파로티>는 영화의 요소에서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괜찮은 배우가 장악해 낼 수 있는 존재감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영화인 셈이다.
클래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야심이 그리 크지 않다. 클래식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별은 빛나건만’, ‘네순 도르마’ 등을 선곡한 걸로 보면, 이 작품이 ‘적당한 유머와 익숙한 감동’으로 대중에게 안전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작품임을 다시 한 번 간파할 수 있다. 대중적인 영화에서 이 방법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소름> <청연>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확인한 윤종찬 감독의 소유격이라 할만한 그 무언가의 부재는 확실히 아쉽다. <파파로티>는 윤종찬 감독 영화 중 가장 좋은 흥행 스코어를 얻을 가능성은 농후하지만, 대신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는 관객은 가장 적을 영화다.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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