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부에서 현수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듯 <분노의 윤리학>은 여대생을 죽인 사람을 찾아내기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 살인사건을 재구성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녀를 직·간접적으로 죽인 네 명의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그들이 여대생과 무슨 관계이며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밝혀진다. 이들이 어떻게 여대생과 개인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었는가가 영화상에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흥미를 유발하는 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뉘우치기보다 서로의 악행이 더 나쁘다고 지적하기 바쁜 인물들이다. 이들은 남에게 공격을 받으면 치졸한 변명을 늘어놓다가도 공격을 가할 때는 법의 심판자처럼 군다. 악인들의 아이러니한 행위자체는 쓴웃음을 짓게 하며, 영화가 블랙코미디 성격이 강한 부족리극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분노의 윤리학>은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서로 다투는 치졸한 형국을 긴장감 있게 표현한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에서 비롯된다. 이제훈, 조진웅, 김태훈, 곽도원 그리고 문소리까지 주요 배우들은 저마다 캐릭터의 양면성을 보여주며 누가 더 악인의 최고봉인지를 겨루는 진검 승부를 벌인다. 하지만 감독이 배우들의 연기력만큼 완성도 높은 연출력을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분노가 영화의 중요한 소재이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극에 달한 감정만 선보인다. 감정의 진폭이 시퀀스에 따라 폭넓게 넘나들지 못하니 어디서 웃어야 하고 어디서 심각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블랙코미디의 맛을 제대로 살리기에는 감독의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2013년 2월 21일 목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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