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을 드러낸 <도둑들>은 <오션스 일레븐>과 그릇은 비슷하되 질감에서 많이 다르다. 분명 할리우드 영화와의 차별화에서 성공했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장르 비틀기엔 성공했어도 이야기 자체의 독창성까지 얻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도둑들>은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신파의 강을 건넌다. 동료애를 기대했는데, 사랑이야기를 보고 나온 기분이랄까. 뜻밖에도 영화가 훔치고 있는 목표물은 사물보다 사람이다. 다이아몬드를 향해 쾌속 질주하는 질펀한 난장을 기대하다면, 어리둥절할 수 있다.
<도둑들>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크게 전반과 후반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관객들이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이야기, 다이아몬드를 향한 도둑들의 도둑질이 펼쳐진다. 마카오 박(김윤석)을 중심으로 한국 도둑 다섯과 중국 도둑 넷이 한 팀을 이룬다. 이들 사이에 <오션스 일레븐>의 도둑들이 보여줬던 팀웍을 기대해선 안 된다. 동상이몽. 각자 속마음에 다른 꿍꿍이를 지니고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들에게 필요한 건 팀웍이 아니라 개인기란 얘기다.
이 와중에 마카오 박과 금고털이 대가 팹시(김혜수), 와이어 설계 전문가 뽀빠이(이정재) 사이에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숨은 사연이 있어 보인다. <범죄의 재구성>이 그랬듯 <도둑들> 역시 세 사람의 과거를 조금씩 노출하며 미끼를 던지기 시작한다. ‘세 사람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것은 ‘도둑들이 어떻게 다이아몬드를 훔치는가’와 함께 관객의 호기심을 낚는 하나의 축으로 움직인다. 동시에 누군가에겐 이야기의 호흡과 몰입을 분산시키는 함정으로도 작용한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를 떠올렸을 때, <도둑들>은 다소 산만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영화 흐름의 완급을 조절하는 힘이 아쉬운데, 이는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것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훼손되는 건 케이퍼 무비 특유의 강점들이다. 케이퍼 무비의 백미는 한정된 공간에서 파생되는 리듬감 있는 전개다. 인물들이 모이고 전략을 짜고 작전을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이 주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둑들>의 도둑질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나 쾌감이 신기할 정도로 적다. 특히 이들이 펼치는 작전이라는 게, 캐릭터 이름에서 연상되는 장기의 전시일 뿐이다. 탄성을 자아낼만한 <도둑들>만의 전매특허 기술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실패한 영화인가. 신기하게도, 그렇진 않다. 케이퍼 무비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감독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오히려 성공적이다.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에서 중점을 둔 건 도둑질 자체보다 캐릭터 간의 관계다. 실제로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스릴을 접고 액션과 드라마로 유턴한다. 인물들은 본격 갈등에 휩싸이고, 탄성을 자아내는 아날로그 액션이 등장하고, 배신과 반전의 러브스토리가 만연하는가 하면, 개성 강한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뒤섞인다. 상업 영화가 추구하는 요소들을 너무 의식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것들이 지루함 없이 조율돼 있다.
<도둑들>은 분명 최동훈 감독 최고의 영화는 아니다. 미학적 혁신이 뛰어나지도 않다. 인간의 욕망이 풍부한 해석으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굳이 진부한 사랑이야기를 넣었어야 했냐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건 최동훈의 영화는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을 준다. 조약하다거나 가볍다거나 지루하지 않다. 한 마디로 ‘잘 가공된 웰메이드 오락영화’같은 인상이 그의 영화엔 있다. <도둑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워 죽겠다는 꺼림칙한 뒷맛을 남기진 않는다. 관객들의 여가생활을 책임질 영화로 이만하면 부족함이 없다. 사실 그러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2012년 7월 29일 일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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