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치사율 100%의 변종 연가시에 감염됐다. 정부는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하고 감염자를 격리시킨다. 치료제를 찾던 정부는 치료에 효력이 있는 구충제 ‘윈다졸’을 발견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미친 듯이 ‘윈다졸’을 찾아 약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윈다졸’의 양이 많지 않다. 이미 생산 중단된 제품이다. 아내(문정희)와 아이들이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재혁(김명민)도 약을 찾아 사방팔방 뛰지만, 약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속도가 빠르다. <연가시>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빠르다’로 정의할 수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쉬지 않고 몰아친다. 그러니까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도 전에 다음 사건으로 이야기를 밀어붙이는데, 이 방법의 효과가 의외로 크다. 연가시에 감염된 인간들이 좀비처럼 거리를 접수하고, 약을 구하겠다고 서로를 물어뜯는 모습이 긴장을 조성한다. 영화는 이성이 사라진 도시에 음모론까지 끼워 넣어 이야기가 지루해지는 것을 막는다. 끝까지 보게 만드는 영화인 건 분명 미덕이다. 상업오락영화로서의 몰입감은 충분하다.
문제는 이 영화의 미덕이 거기에서 그친다는 점이다. 빠른 속도감을 얻는 대가로 영화는 많은 디테일들을 모른 척 하거나 포기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캐릭터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연가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엑스트라부터 주연까지 모두가 신경쇠약 직전의 사람들 같다. 사람들은 쉬지 않고 소리 지른다. 주인공 재혁은 주식으로 전재산을 탕진했다는 사실에 시작부터 악에 받쳐있다. 주식 실패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 재혁의 동생이자 형사인 재필(김동완)도 마찬가지다. 재난 사태를 책임지고 있는 국립보건소원장은 왜 또 그렇게 참을성 없이 소리를 지르는지. 국무총리도 소리를 빽빽. 연구소의 결정에 시도 때도 없이 태클 거는 연구원 연주(이하늬)도 빽빽. 정신이 사납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 감정을 고취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 속도 강박에 사로잡혀 캐릭터들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인상이다. 당연히 가장 큰 피해는 주인공의 몫으로 돌아간다.
주인공 재혁은 필요 이상으로 오지랖이 넓다. 그는 치료약을 구할 기회를 번번이 눈앞에서 놓치는데, 그게 다 자업자득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뜬금없이 인간애를 발휘해 약을 빼앗기는가 하면, 성미 급하게 굴다가 창고에 있는 약을 통째로 날리는 등의 민폐 설정으로 짜증을 조성한다. 주인공을 영웅화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그렇게 스스로의 꼬리를 밟고 만다. 즉 기존 할리우드 재난 영화 주인공들과의 차별화에는 성공했지만, 그 차별화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 민폐 캐릭터들을 관객이 얼마나 관대하게 받아줄 것인가. 그 여부에 따라 영화에 대한 만족의 크기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연가시>의 단점 보완을 위해 추천해 주고 싶은 치료제는, 안정제다.
2012년 7월 6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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