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한 백수 생활을 즐기던 알렉스 하퍼(테일러 키취)는 해군 장교인 형의 강압적인 권유로 해군에 입대한다. 군대에 가서도 정신 못 차리는 건 마찬가지.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그러지기 일쑤고, 여자 친구이자 해군 함장의 딸인 사만다(브룩클린 데커)와의 결혼도 순탄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태평양 한가운데에 정체불명의 외계 함선이 나타나고, 순찰을 위해 파견된 하퍼의 인생도 변화를 맞는다.
완구 전문업체 하스브로(Hasbro)는 이제 완구 업계에서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큰 손이 된 듯하다. 로봇(<트랜스포머>), 액션 피규어(<지.아이.조>)에 이어 동명의 전투 보드게임 ‘배틀쉽’ 마저 영화판으로 입양 보냈다. 줄거리도 캐릭터도 없는 이 보드게임의 판권 구입이 과연 경쟁력 있는 선택일까. 적어도 유니버설의 눈에는 이것이 블록버스터물로의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여겨진 모양이다. 2,200억 원(2억 달러)이라는 거대 예산이 투입됐다.
어마어마한 제작비 중 작가 고용에 쓰인 돈이 얼마인지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이리도 허술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의아해서 하는 말이다. 백지 상태에 가까운 보드게임을 영화화 하면서 작가진이 찾은 묘책은 외계인. 그리고 진주만에 (박물관 용도로) 박제돼 있는 미주리호(일본의 2차 대전 항복 조인식이 열렸던 역사적인 군함)다. 문제는 작가진의 두뇌 용량이 외계인을 컨트롤할 만큼 용의주도하지 못하고, 미주리호를 상대할 만큼 진지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캐릭터는 식상하다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매력이 없고, 외계인의 행동엔 일관성도 설득력도 없다.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는 또 왜 그리 어설프고 과장됐는지. 맥없이 풀려 버리는 결말엔 허무한 마음만 푹푹 내려앉는다.
그렇다고 <배틀쉽>의 기술적 성취와 오락성마저 폄하할 생각은 없다. 허술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는 않다. 다행히도 <배틀쉽>의 비주얼은 꽤나 볼만하다. 건물이 풍비 박살나고, 거대 함선이 찢겨져 나가고, 도로가 갈라지는 장면의 스펙터클은 기대 이상이다. 재난 블록버스터가 갖춰야 할 기본 볼거리는 갖춘 느낌이다. 원작 게임(숨어 있는 배를 찾아 공격하는 게임)을 아는 관객이라면, 게임의 룰을 차용해 벌이는 군함과 외계함선의 전투도 흥미롭게 다가갈게다. 그러니 볼거리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는 관객의 선택을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꼭 명심하길 바란다. 생각은 고이 접어 두고 관람해야 한다는 사실을.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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