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소재다. 자칫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부러진 화살>은 이를 보기 좋게 빗겨간다. 영화판에서 잔뼈 굵은 두 노장 정지영 감독과 안성기 덕분이다. 감독은 ‘석궁 테러 사건’을 촉매제로, 권력을 남용하는 기득권층의 꼼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묘는 사건을 다루는 연출력에 있다. 홀로 사법부와 상대하는 김경호의 이야기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려진다. 감독은 사건의 발단부터 마지막 재판을 오롯이 그린다.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영화의 빈틈은 편집으로 메운다. 구구절절 법조항을 들이대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김경호, 그와 대립하는 판사와 검사의 대결구도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주인공 김경호의 매력도 한 몫 한다. 피의자로서 재판에 서지만, 두려움이 없다. 판사와 검사를 상대하는 그의 모습은 굉장히 당당하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사법부에 일침을 가하는 김경호는 통쾌함을 준다. 안성기는 이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정숙하라”는 판사의 말에 도리어 “자신의 말을 무시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안성기의 연기는 김경호의 성향을 확실히 드러낸다. 대사도 그의 깐깐한 성격을 대변한다. 결과적으로 안성기는 친근한 이미지를 벗고, 냉철하고 강단 있는 캐릭터를 완성해 냈다.
영화는 안성기의 영향력이 컸던 나머지 다른 배우들의 매력은 살리지 못한다. 안성기와 투 톱으로 나오는 박원상은 단순히 조력자로서의 임무에만 그친다. 물론 변호사답지 않은 껄렁껄렁함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지만, 극을 이끄는 힘은 부족하다. 열혈 기자 역의 김지호와 김경호 부인 역의 나영희의 존재감도 미미하다. 그나마 판사로 나오는 이경영, 문성근은 눈에 띈다. 특히 문성근은 실제 정치성향과 다르게 보수 꼴통 판사로 나와 웃음을 준다.
<부러진 화살>은 정지영 감독의 건재함, 안성기의 연기 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설날 다른 영화들에 비해 화려한 배우가 출연하거나,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로 채워지지는 않지만, 그만의 매력은 충분하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다.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