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 그러니까 실화다.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조승우)은 투철한 집념으로 최고의 투수 자리에 오른다.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양동근)은 타고난 천재성을 무기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왕좌는 하나. 왕이 둘 일수는 없는 상황. 이들은 1986년 두 번의 대결에서 1승 1패를 기록한다. 진정한 승자가 다음해 5월 16일 열린 경기에서 가려졌을까. 결과는 2:2 무승부! 연장 15회, 4시간 56분에 이르는 접점에도 결과는 평행선을 그린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대결, 모두가 기억하는 세기의 대결이다.
라이벌전. 보는 사람은 재밌다. 정작 피곤한 건, 그 라이벌전에 휩쓸리는 당사자들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처럼 한때 우정을 나눴던 관계라면, 피곤함은 더 하다. 자신들을 라이벌이라 몰아세우는 세계에서 그들은 상대가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운다. 루저가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다는 기존 스포츠 영화와 <퍼펙트 게임>이 다른 지점이다. 흑과 백으로 나뉜 대결 구도가 아니라는 점도 일견 반갑다.
<퍼펙트 게임>의 소재는 말하나마나 야구다. 하지만 구성은 축구에 가깝다. 전‧후반전이 있는 야구처럼, 이야기는 전반과 후반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전반부는 최동원과 선동열이 라이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의 나열이다. 후반부는 5월 16일, 그 날의 경기다. <퍼펙트 게임>이 한국 스포츠 영화에 어떠한 이정표가 된다면, 바로 이 부분. 경기 장면이 하이라이트가 아닌, 후반 전체를 우직하게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경기 장면이 상당히 매끈하게 잘 빠졌다. 시속 150Km에 가까운 투구를 담아내기 위해 최초로 사용했다는 트러스 카메라, 초고속 팬텀 카메라 등이 제 기능을 해낸다. 다양하게 시도된 카메라 숏들도 스포츠 경기의 긴박감을 높이는데 일조한다. 배경 음악이 과하다 싶긴 하지만, 공기를 가르는 공의 소리만큼은 통쾌하다.
너무 쉽게 허용하는 안타라면, ‘감동’을 위해 적잖게 남발한 인위적인 전술이다. 대표적인 게, 해태 포수 박만수(마동석) 카드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감사용을 뚝 떼어내 이식한 듯한 박만수는 온전히 감동을 위해 존재한다. 다행이라면,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 카드가 구원투수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일 게다. 전형적인 맛은 크지만, 만년 2군 투수의 열정이 폭발하는 순간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분명히 있다. 여성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확실히 구질이 좋지 못하다. 영화에서 여기자 서형(최정원)의 캐릭터는 많은 부분 빈곤하다. 최근 개봉했던 <특수본>의 여형사 캐릭터도 그렇고, 남성 영화 안에서 여성 캐릭터를 잘 그리는 감독을 만나기란 갈수록 하늘의 별따기란 생각이 든다.
연출의 몇몇 아쉬움은, 조승우‧양동근 두 주연 배우의 호연이 만회한다. 여러모로 보나, <퍼펙트 게임>은 감독의 영화라기보다 배우들의 영화다. <말아톤>을 통해 이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 영화’에 출연한 바 있는 조승우는, 또 한 번 실존 인물을 능숙하게 내면화한다. 그 어떤 리그(영화)에 진출해도, 기대 이상의 방어율을 책임질 배우임에 틀림없다. ‘질투와 선망’ 사이의 감정을 깊게 눌러 담은 양동근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조승우‧양동근 두 배우에게도 이 영화는 꽤나 괜찮았던 게임으로 남지 않을까. 흥행이 어떻든.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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