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들여다보면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집으로...> 등 감독의 전작과 비슷한, 이른바 ‘이정향 스타일’이 엿보여 흥미롭다. 인물 구성이 단출하고, 그들이 한 집에서 아옹다옹 하는 와중에 이야기가 진행되며, 집주인이 손님을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의 설정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정향 감독의 화법은 <오늘>에 이르러 톤이 한층 낮아지고 무게감이 더해졌다. 또, 이야기가 밖으로 확장된 느낌이다. 이는 주제의식이 좀 더 깊고 진지해진 까닭이다. 그로 인해 다소 말이 많고 설명적이라는 인상이 들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럴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한다.
영화는 용서라는 화두를 던진 뒤 인물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따라간다. 감정적인 접근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으로도 파고드는 점은 <오늘>의 가장 큰 미덕이다. 가령, 영화는 신앙의 이면을 조명하며, 선의를 위한 종교적인 행동양식이 오히려 상처를 곪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불합리한 사법제도를 꼬집기도 한다. 피해자는 수감됐던 가해자의 출소 소식을 알 수 없는데 반해, 가해자는 마음만 먹으면 피해자의 정보를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점 등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영화는 사회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바꾸어 생각하는 건 아닌지, 또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정보(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불합리한 사법제도 등)를 너무 막아놓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용서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또 옳은 것일까. 나는 지난날 내게 상처 준 가해자를 스스로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너무 쉽게 용서한 적이 있었나. 반대로, 남의 상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용서 운운한 적은 없었나. <오늘>은 관객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영화는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용서’의 개념을 흔들어놓는다. 그로인한 영화의 진동은 리듬감이 약해 흥은 좀 안 날지 모르지만, 결코 소모적인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다혜의 대사 중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겐 용서하지 않을 자유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내게 그걸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오늘>은 그걸 알려주는 영화다.
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 글_유다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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