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지구에 도착한 <혹성탈출>은 걸작이었다. 인간이 유인원의 지배를 받는다는 설정은 충격적이었다. ‘주인공이 그토록 벗어나려했던 혹성이 알고 보니 지구였더라’는 <식스센스> 뺨치는 결말도 있었다. 뜨거운 찬사가 이어졌다. 이후 많은 속편들이 원작의 영광 재현을 기대하고 개봉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작 <혹성탈출>을 탈출하는데 실패했다. 원작의 벽이 너무 높았으므로, 감수해야 할 부담도 많았다. 2001년 팀 버튼발 <혹성탈출>마저 혹평으로 쓰러진 이후, <혹성탈출> 시리즈는 10년 동안 아무도 가지 않은 행성으로 남겨졌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 찾아갈 때까지 말이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혹성탈출> 시리즈의 7번째 작품이다. 심지어 프리퀄이다. 영화는 원작에 집착하는 대신, 전작들이 손대지 않은 미지의 영역, ‘인간은 왜 침팬지에게 지배당하는가!’에 파고든다. 그 중심에 유인원들의 혁명을 이끌게 될 시저가 있다. 시저는 고도의 지능을 지닌 유인원이다.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의 임상실험이, 시저를 탄생시켰다. 윌의 보호 아래 자란 시저는 초반, 침팬지라기보다 막내아들 같은 포스를 풍긴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머리가 커 가고, 질풍노도의 터널을 지나면서 시저는 고뇌하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마침 자신의 동족들이 인간의 야욕에 의해 희생당하고, 실험용 쥐처럼 염가 처리되는 비정한 현실을 목도한 시저는 자신이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걸 자각하기 시작한다. 유인원계의 모세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원작 못지않은 또 하나의 걸작이다. 영화는 시저의 변화와 감정을 착실하게 스케치하면서 관객들을 강하게 붙들어 잡는다. 드라마는 탄탄하고, CG 영상은 유려하고, 연기력들은 출중하다. 특히 <반지의 제왕> 골룸과, <킹콩>의 킹콩을 거친 앤디 서키스의 감정연기는, 실제 배우들의 밥그릇을 위협할 만큼 놀랍다. “모션 캡처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영상을 탄생시켰다”는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의 말도 괜한 허풍이 아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의 웨타 디지털 모션 캡처 기술은 <아바타>의 나비족들이 보여 준 모션 캡처 보다 한 걸음 더 앞서 있다. 감정 전달 면에서 특히 그렇다.
알려졌다시피, <아바타>의 샘 워싱턴은 온몸에 각종 센서를 달고 연기하는 고생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실제 모습이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졌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이번 영화의 유인원들에게도 같은 이유로 후보 지명을 거부한다면, 반란을 일으킬 관객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만큼 그들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말이다. 여러모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는 원작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명작이다. <혹성탈출>을 레퍼런스 삼아 속편을 제작해 온 영화들에게, 새로운 ‘레퍼런스’가 나타난 게 틀림없다.
2011년 8월 18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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