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에릭 바나)에게 살인병기로 길러지는 소녀, 한나(시얼샤 로넌)는 테니스를 잘 치고, 애완견 트루디를 기른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외우는 거짓말이다. 자나 깨나 방어 본능이 깨어있는 소녀를 드디어 아버지는 세상 밖으로 풀어준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제거하려는 알 수 없는 적이 날아온다.
<한나>를 얘기하면서 감독 조 라이트를 빼놓을 수는 없다. <오만과 편견>과 <어톤먼트>라는 필모그래피를 적어온 그가 감행하는 첫 번째 액션영화는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말이다. 과연 조 라이트는 킬링 타임이 주를 이루는 액션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자 했다. <한나>는 총알과 폭탄이 난무하는 액션 대신 서스펜스를 주 무기로 이미지를 직조한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깔고 빚어내는 하이테크 액션은 시적이다. 오감을 충족시키는데 액션보다는 서스펜스를 주효하게 사용한다.
<한나>의 특별한 감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주고받는 리듬감이다.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녀는 그림 형제의 동화책을 보면서 잠이 든다. 소녀의 순수성은 가공할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신비한 매력을 풍긴다. 한 마디로 시얼샤 로넌의 <한나>는 아름답다. 그가 주인공이 됨으로써 영화의 국적은 북유럽의 신비한 어딘가가 된다. 여기에 적절한 시점에서 터지는 서늘한 액션은 근사하게 다가온다. 물론 음악을 담당한 케미컬 브라더스의 환상적인 일렉트로닉이 일조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한나는 유전자 조작으로 내재된 공포심을 제거한 존재다. 미 국방부의 비밀스러운 지시 하에 군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눈꺼풀 하나 깜빡이지 않고 순록에게 총을 쏘고 사람의 목을 비튼다. 의외로 <한나>는 존재론적인 슬픔에 천착하지 않고 ‘언캐니 밸리(인간과 거의 흡사하지만 인간은 아닌 것들)’를 손쉽게 넘어선다. 조 라이트의 <한나>는 그런 면에서 킬링 타임 액션도 SF드라마도 아닌 어딘가에 자리한다. 북유럽의 동화적 분위기와 하이테크 액션을 버무린 이 영화가 동화의 변주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1년 4월 14일 목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