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원장 연희(김윤진)에겐 심장이 필요하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딸을 살릴 심장이. 밤낮으로 심장 기증자를 찾지만 딸에게 맞는 심장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 때, 뇌사상태에 빠진 중년의 여성이 병원에 실려 온다. 모성은 예리하다. “저 심장이다! 내 딸을 살릴!” 한편 동네 양아치 휘도(박해일)는 돈이 필요하다. 어디서 돈을 구하지? 그 때, 재혼한 엄마가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심장이식에 동의하면 거액을 주겠다는 한 여성의 제안을 받는다. 예상했겠지만, 제안을 던진 여성은 연희다. 엄마에 대해 애정이 없는 휘도는 그 제안을 쉽게 응한다. 하지만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엄마의 진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휘도의 마음은 바뀐다. “내 엄마의 심장을 줄 수 없어!”
안타깝게도 <심장이 뛴다>는 스릴러와 드라마의 혼합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장르적 쾌감이 미약해 ‘스릴러’라 부르기 마뜩찮고, 이야기 구조가 허술해 ‘감동 드라마’라 칭하기 주저해진다. 극한으로 치닫는 두 남녀의 행동을 납득할만한 설득력이 약한 건, 석연찮은 부분이다. 영화는 ‘두 남녀의 대결’이라는 목적을 위해 리얼리티도 군데군데에서 훼손시키고 만다. ‘심장은 하나, 살릴 사람은 둘’ 이라는 기본 설정은 흥미롭지만, 이를 체계화시킨 시나리오는 작위적이란 얘기다. 대낮 도로에서 앰뷸런스를 너무나 쉽게 탈취하는 휘도도, (지극히)개인적인 약점 하나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의사도, 보호자 확인도 없이 의식 불명 환자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간호사도, 불법 장기 브로커를 대동하고 난동을 부리는 연희도 모두가 무리수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그토록 허술한가라는 의문에 탄식과 짜증이 적지 않게 섞여 나온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두 주인공의 사연에 몰입하기보다, 관조하게 된다. 부실한 설정 속에서 사건의 긴박감은 소멸된다. 연희의 ‘내리사랑’도 휘도의 ‘치사랑’도 어느 지점에선가 변질된 느낌을 준다. 분명 사건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부단히 치닫고, 두 주인공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지만, 그것이 보는 이들의 심장까지 뛰게 할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는 박해일, 김윤진 두 배우의 힘이다. 당초 이 영화의 제목은 <대결>이었다. ‘대결’의 주체인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주요 핵인 셈이다. 다행히 배우들의 연기는 좋다. 박해일은 특히 좋다. 김윤진의 경우, <세븐 데이즈> <하모니>에 이어 다시 모성을 무기로 삼았다는 점에서 식상한다는 비판을 받들 수는 있다. 하지만 강단 있는 모성을 김윤진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낼 배우가 아직 충무로에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만의 몫을 해 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두 배우의 힘을 다한 ‘대결’도 영화를 완전히 구원하지는 못한다. 기본 소재가 좋고, 배우들의 연기가 나쁘지 않고, 영화를 뒷받침 하는 제작비도 제법 큰(걸로 아는)데, 감흥이 안 일어난다면, 이를 효율적으로 통솔하지 못한 연출을 탓할 수밖에 없다. 특히 모성을 부각시키기는 과정에서 힘을 쏟은 신파코드가 과하다. 모성이 꼭 신파여야 하는 건 아니다. 모성에 꼭 눈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는 <마더>의 김혜자가 선보인 모성과 비교했을 때 보다 명확해 진다. <마더>의 모성은 그 흔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도, 맹목적이고 헌신하는 사랑을 증명했었다. 이래저래 여러 면에서 <심장이 뛴다>는 아쉽다. 한국영화로서 2011년 첫 포문을 여는 이 작품에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를 외치고 싶은 이유다.
2011년 1월 3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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