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여성이 있다. 싱글녀 지흔. 품절녀 경린(한수연). 그들도 한 때는 같은 고민을 했을 거다. 결혼을 할까, 말까. 사랑을 줄까 말까. 그 고민을 두고 내린 각기 다른 결정은 그들의 삶을 확연하게 가른다. 먼저 혼기 꽉 찬 싱글 여성 지흔. 작가를 꿈꾸는 그녀는 단지, 독신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리해고 대상 1호로 쫓겨난다. 해고 통보도 서러운데, 마침 남자친구는 자기 멋대로 일본으로 가버린단다. 홧김에 저지른 음주폭행사고로 집까지 잃게 된 지흔은 친구 경린의 집에 빈대 붙기로 한다. 그것도 혼인신고서에 잉크도 안 말랐을 신혼 부부 집에 뻔뻔하게. 한편 무료한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던 경린은 남편의 직장 후배 동주(김흥수)와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친구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지흔은 경린의 남편 명원(정찬)에게 연민인지 사랑인지 모를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줄거리만 두고 보면, 딱 이 단어가 떠오른다. ‘막장’. 친구 남편과의 사랑, 남편 직장 동료와의 불륜 등, 아침드라마가 사랑해 마다않는 얽히고설킨 스와핑 구도다. 예정된 공식을 따르는 이야기 전개도 새로울 게 없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상투성을 생활밀착형 캐릭터와 상황묘사, 인물들의 심리변화를 통해 상쇄해 나간다. 색다를 건 없지만, 그렇다고 진부하거나 처지는 느낌은 없는, 권칠인표 멜로의 적정 온도는 지키는 작품이란 얘기다. 특히 영화는 서른이라는 물리적 나이가 여자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끈질기게 추적한다. ‘결혼은 해도 고민 안 해도 고민’이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논제를 유부녀와 싱글녀의 극명한 대비로 풀어낸 게, 너무 쉬운 선택인 것 같아 살짝 촌스럽긴 하지만 이 시대 여성들이 꿈꾸는 두 가지 삶을 공감가게 그려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참을 수 없는.>이 권칠인 전작들과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여성의 우정보다 남녀의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에 있다. 이 과정에서 권칠인 특유의 장기인 여자들 간의 유대는 약화됐다. <참을 수 없는.>의 두 여자 지흔과 경린은 <싱글즈>의 나난과 동미(엄정화)처럼 한 지붕 아래에 산다. 하지만 그녀들처럼 서로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지는 않는다. 묵묵히 지켜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할 뿐이다. 그것이 20대와 다른, 30대의 또 다른 형태의 우정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한데, <섹스 앤 더 시티>류의 내지르는 영화를 원했을 여성 관객들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대신 영화는 남성 캐릭터 강화를 대안으로 강구한 모양새다. 정찬이 맡은 명원이라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감독은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아 평범하게 사는 게 정답, 이라고 믿는 이 평범한 남자의 변화를 통해 남성 관객까지도 껴안으려 한다. 덕분에 <참을 수 없는.>는 전작들보다 남성관객들 정서에 호소할 만한 부분이 많아졌다. 물론 그만큼 여성들의 파이가 줄어든 셈인데,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참을 수 없는.>은 참을 수 있거나, 혹은 참을 수 없는 영화로 나뉠 공산이 크다.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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