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90년 당나라. 고종 황제가 죽은 뒤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측천무후(유가령)는 정식으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중국 최초의 여황제가 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즉위식을 얼마 안 남겨둔 어느 날부터 그의 신하들이 인체자연발화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죽는 일이 발생하고, 사람들은 여자가 황제가 되려했기에 하늘이 노했다며 측천무후에 대항한다. 이에 측천무후는 자신의 최측근인 정아(이빙빙)와 당대 최고의 수사관인 적인걸(유덕화)에게 이번 사건을 맡긴다. 사건을 파헤치던 적인걸은 하늘의 저주가 아닌 음모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즉위식에 이보다 더 큰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한때 측천무후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던 적인걸은 국민의 안정과 나라의 평화를 위해 황제를 돕기로 한다.
적인걸은 우리에게는 낯선 인물이지만 중국에서는 인기가 높은 실존 인물이다. 630년 태어나 측천무후 시대에 재상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황제에게 과감하게 직언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황제에게는 신임을, 조정대신들에게는 모함을 당하기도 했다.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중국 주재 네덜란드 외교관 로베르트 반 홀릭에 의해서다. 반 홀릭은 18세기 무명작가에 의해 쓰인 ‘디공안’과 ‘적공단안대관’을 번역하고 각색했다. 이후 여러 이야기와 소설에 등장한 적인걸은 특히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가는 천재 수사관으로 그려지면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서극 감독은 적인걸과 측천무후라는 중국 역사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시대적인 인물을 배경으로 스펙터클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인체자연발화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120m짜리 거대불상 통천부도와 엄청난 규모의 낙양성 등이 시각적인 쾌감도 전한다. 또한 귀도시의 암거래 시장, 무극관 등의 특정한 장소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도 장관. 홍금보가 무술 감독을 맡은 <적인걸>은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전통적인 방식의 무협 액션이 펼쳐져 서극의 전성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스펙터클을 담아낸 방식이다. 차라리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썼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CG는, 영화의 스펙터클한 비주얼에 오히려 해를 입히고 말았다. ‘나는 CG’라고 광고라도 하듯 그려진 매 장면들은 오히려 이야기의 몰입감을 방해한다. 와이어와 편집으로 볼거리를 만든 액션 장면 역시, 1990년대 영화였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웠겠지만, 2010년의 관객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영화가 의도했던 CG를 통한 스펙터클과 역사적인 캐릭터, 사건을 풀어가는 재미 등의 모든 형식은 대체로 잘 지켜졌지만, 각각의 디테일이 보여준 완성도는 조화롭지 못했다.
다소 눈에 거슬리는 CG를 제외한다면 <적인걸>은 캐릭터와 사건 모두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 스타일이 미드 <CSI>나 국내 케이블 드라마 <별순검>을 연상하게 하지만, 시대적인 사건과 역사적인 인물로 연결되는 음모는 단순히 사건 자체를 풀어가는 것과는 차별화된 재미를 준다. 또한 여전한 건재함을 과시한 유덕화와 유가령, 양가휘의 모습이 반갑고, 이들과 짝을 이룬 신세대 스타 이빙빙, 등초의 호흡도 나쁘지 않다.
2010년 10월 1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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