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선고를 받은 홀어머니 때문에 의가사 제대를 신청하지만 계속 거절당하는 재훈(이영훈)과 장교의 성추행을 참지 못하고 장교를 쏴버린 민재(진이한)는 고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민과 함께 탈영한다. 영화는 이들의 탈영을 6일에 걸쳐 기록한다. 첫날, 다리를 다친 동민은 자살을 하고, 민재와 헤어진 재훈은 입대 전 함께 일했던 소영(소유진)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재훈의 탈영 사실과 이유를 알고 재훈과 함께 길을 나서는 소영. 이때 갈 곳이 없어진 민재가 다시 합류하고 세 사람은 길이 끝나는 곳까지 함께 떠난다. 하지만 결국 중국 밀항선을 타기 직전 경찰에 의해 포위된다.
<탈주>는 외형적으로는 탈영을 다룬 영화다. 재훈, 민재, 동민은 각자의 이유로 탈영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유라는 것이 굉장히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들이며, 이송희일 감독은 이러한 문제들을 통해 탈영 자체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탈영 그 자체에만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규격화된 사회나 집단으로부터의 탈주는 규율을 어긴 ‘도망’이 아니라, 정당하지 못한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도발이다. 집단이나 조직은 그 경계 안에 있을 때는 어떠한 판단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경계를 넘어섰을 때에 비로소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선으로 집단 내부와 그 속에 속해 있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영화가 선택한 곳이 군대다. 2010년이라는 첨단의 시대에도 여전히 폐쇄적인 사회생활과 억압된 집단의 이기심이 팽배한 그곳. 강압적인 획일화와 명령과 복종을 강요받는 곳. 그래서 ‘탈주’라는 행위 자체도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읽히게 된다. 영화는 그래서 보다 첨예한 문제를 건드릴 수 있다. 일탈과 같은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나 조직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에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경계의 개념을 강화하고 그 안에 깃든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영화 속에 그려진 6일 간의 탈주는 영화적인 긴장과 사실적인 전개로 흥미를 더 한다. 말기 암인 어머니를 보기 위해 의가사 제대를 계속 신청하지만 매번 거절당하는 재훈이나 장교의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행동을 한 민재는 모두 탈영이라는 행위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군대)를 직접 고발한다. 여기에 사회로부터의 탈영(과 같은 의미의 행동)을 결심하는 소영의 에피소드도 있다. 88만원 세대의 고충과 옮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사회로부터의 탈주 역시 군대의 탈영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송희일 감독은 <탈주>를 통해 절박함을 보여준다. 사회의 부도덕함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만들어내는 판타지보다 도망자들을 통해 사회의 부정적인 이면을 들춰내는 사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무엇인가의 틀에 갇혀 있을 때는 그 안에서 생기는 문제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떤 형태로든)경계 밖으로 나와야만 우리가 갇혀 지낸 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다. ‘탈주’라는 행위 자체는 어디서부터 도망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시대와 가치관, 시스템, 사회, 이데올로기, 이념, 정치, 도덕, 경제, 문화 등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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