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이를 너무 맹신한 자에게 돌아가는 건, 창조의 달콤함이 아니라 짝퉁이라는 손가락질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창작자가 ‘모방한 적 없다. 우연일 뿐’이라고 주장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표절이네 아니네. 네 탓이네 내 탓이네, 심한 경우 인신공격이 오간다. <베스트셀러>는 이 복잡 미묘한 ‘표절’에 카메라를 댄 영화다. 표절은 영화에 등장하는 문단 뿐 아니라 최근 가요계에서도 쉬지 않고 불거지는 골칫거리. <베스트셀러>의 흥미는 이러한 핫이슈를 끌어안았다는 점이다. ‘여배우가 실종’된 충무로에서 엄정화가 원톱으로 나섰다는 것 역시 이 영화가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희수(엄정화)는 신작소설이 표절시비에 휘말리면서 한순간에 명성을 잃는다. 남편(류승룡)과의 사이도 파탄나면서 더 깊은 슬럼프에 빠진 그녀는 편집장의 권유로 딸(박사랑)과 시골에 위치한 별장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도 마음을 잡지 못하는 희수. 그러던 중 딸로부터 ‘낮선 언니’가 이야기 해줬다는 살인사건을 듣게 되고, 이를 소설로 완성해 다시 재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 소설마저 표절로 판명나자 그녀는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별장으로 내려간다.
<베스트셀러>는 흡사 ‘전반전, 휴식, 후반전’이 있는 축구를 닮았다. 축구감독이 다양한 전술 변화로 상대를 공략하듯, <베스트셀러>는 다양한 장르 변화로 관객을 맞는다. 공포로 달리다가 극 중반 스릴러로 분위기 반전을 꾀한 영화는 급기야 기이한 소동극을 삽입해 변종 장르로의 탈주를 시도한다. 교체선수가 있는 것도 유사하다. 전반 백희수의 대결 상대가 귀신이라면, 후반에는 귀신 대신 사건의 열쇠를 쥔 새로운 인물 4명이 교체 투입돼 반격을 노린다. 통일성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한 승부수다. 하지만 이것이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균형감 있는 페이스 조절로 전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때 발생하는 이질감의 좁힌다. 특히 후반 투입된 새로운 인물들의 연기 호흡이 전술의 효과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아마 <베스트셀러>가 초반 공포물의 분위기를 끝까지 고수했다면, 표절을 내세운 이 영화는 <패닉 룸> <시크릿 윈도우> <사일런트 힐> 등의 영화를 표절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꽤나 시달렸을 거다. 귀신들린 집이라는 설정부터, 좁은 공간에서 주인공과 악당이 벌이는 사투, 벽장 호러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 등 기시감 있는 설정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하며 그러한 위험을 나름 현명하게 피해갔다. 이 과정에서 표절이라는 소재가 약화되긴 했으나, <베스트셀러>는 표절을 이야기의 기반에 깐 영화이지 표절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영화는 아니다. 애초에 그럴 거였으면 스릴러가 아닌, 법정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게 더 맞다. 그러니까 표절문제에 더 깊이 파고들지 않은 게,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극 마지막 나오는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몇몇 씬은 피해갈 수 없는 명백한 단점이다. 잘 달리고도 그만큼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건, 전체적인 완성도를 저해하는 이런 ‘옥에 티’에서 기인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특히 원톱으로 나선 엄정화가 중심을 잘 잡고 있는 느낌이다. 그동안 저평가 받는 배우 중 한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로 어느 정도 연기력을 인정받지 않을까 싶다. 조연 연기자들의 실력도 좋다. 이 중에 특히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있는데, 누군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대충 감이 올 게다.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