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권위의 상징인 번개를 도둑맞고 화가 난 제우스는 포세이돈의 아들 퍼시 잭슨(로건 레먼)을 도둑으로 지목, 2주후 자정까지 번개를 가져오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퍼시는 자신이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고등학생일 뿐이다. 이를 계기로 자신이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데미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퍼시는 하데스에게 납치된 엄마를 구하고, 신들의 전쟁을 막기 위해 직접 번개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의 여행에 동료 데미갓인 켄타우로스 그로버(브랜든 T. 잭슨)와 여신 아테네의 딸 아나베스(알렉슨드라 다다리오)가 동행한다.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은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새로울 건 없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그동안 많은 영화들이 그리스 신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시잭슨과 번개도둑>만의 특색을 찾자면,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신들의 세계와 현재의 세계를 하나의 공간에 접목시켰다는 점일 게다. 즉, 신과 인간이 낳은 자식이 현대 사회에 존재하다는 소재가 신선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림포스 신전이 있다는 설정이 발칙하며, 메두사를 물리칠 때 사용됐던 (신화 속)방패가 아이팟으로 대체된 점이 기발하다. 날개 달린 스니커즈라든지, 할리우드 배우들의 결혼 생활을 풍자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관계들 역시 웃음을 안기는 요소다.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성인 배우들의 ‘연기’ 변신과 이에 동반된 ‘외모’ 변신이다. 007 시리즈 5대 제임스 본드였던 꽃 중년 피어스 브로스넌이 ‘반인반마(半人半馬)’인 켄타우로스 케이런으로 변신해 말 그대로 ‘야생마’적인 매력을 선사하고, 지옥의 신 하데스를 맡은 스티브 쿠건이 록스타 분장을 하고 나타나 기존 하데스의 이미지를 코믹하게 전복시킨다. 하지만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는 뭐니뭐니해도 메두사로 분한 우마 서먼이다. 우글거리는 독사들을 머리카락 대신 달고 있는 우마 서먼은 망가지기를 두려워 않는 과장된 표정연기와 우스꽝스러운 몸동작으로 ‘빵’터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장담하건데, 이 작품은 우머 서먼의 출연작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로 평생 기억될 것이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어른 관객까지 흡수하기엔 영화의 깊이가 너무 얕고, 싱겁다는 게 이 영화의 큰 아쉬움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성장 비밀은 심어두지만 그에 따른 고민은 잘 그려내지 못했고, 데미갓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는 창조했지만 그 캐릭터 개개인의 매력은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급박한 위기들을 일사천리로 간단하게 매듭지은 것도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말았다. 결국 영화는 ‘신과 인간의 경계에 놓인 주인공의 고민이 깊게 묻어났다면’,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데미갓들의 능력이 좀 더 차별화 되게 표현됐다면’, ‘긴박한 사건 전개로 긴장감은 줬다면’이라는, ‘if’에 대한 단어를 상영 내내 떠올리게 한다.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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