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여자를 좋아한다니, 이 무슨 당연한 소리냐고 할 테지만, 그 아빠가 이젠 여자의 몸이 된 트랜스젠더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여기에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는 배우가 이나영이라는 사실이 더해지면서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는 배가 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소재자체가 지닌 독특함만큼이나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리라 기대케 하는 영화는, 아쉽게도 그런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준다. 여러 가지 재료가 토핑 된 케이크에서 맨 위에 있는 크림만 살짝 떠먹은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영화 스틸 촬영과 개인전 준비로 바쁜 사진작가 손지현(이나영)은 특수 분장사 준서(김지석)와 1년째 사귀는 중이다. 하지만 지현에겐 한때 남자였던 비밀이 하나 있다. 이 사실을 숨기고 준서와 사랑을 키워가던 어느 날, 자신을 친 아빠라고 주장하는 유빈(김희수)이 나타나면서 지현은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갑작스러운 유빈의 등장에 고모라고 둘러대던 지현은 아빠를 꼭 만나고 싶다는 유빈의 간절한 마음에 결국 잠시 유빈의 아빠가 돼 주기로 결심, 남장 분장을 한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누가 봐도 여자인 지현이 준서와 사랑을 키워나가는 게 하나. 지현을 아빠라고 주장하는 유빈의 등장으로 지현의 과거가 밝혀지고, 이로 인해 지현의 사랑이 위기를 맞는 게 또 하나. 유빈과 지현이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가운데 지현의 사랑도 변화를 맞는 게 마지막 하나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라는 파격적인 소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영화가 시작 되고 3분의 1이 지난 지점에서부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발생한다. 3분의 1지점까지 통통 튀는 유머와 재치 있는 대사로 유쾌하게 달리던 영화는 ‘이나영의 남장 연기’라는 이 영화 최고의 필사기를 꺼내 든 이 지점에서부터 코믹 영화 특유의 리듬감을 잃고 만다.
여기에는 트랜스젠더라는 소재를 어느 수준까지 담아낼 것인가를 제대로 조율 못한 게,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영화는 주인공이 트랜스젠더라는 설정을 강조하지 않는다. 상업 영화 안에서 이것이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음을 우려해서인지, 그 소재의 무게감을 줄이고 코믹함에 방점을 찍는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이 소재가 양산해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스스로 유기한다. 독특한(?) 과거를 지닌 주인공의 설정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만으로도 재미있는 유머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텐데, 영화는 그런 가능성을 배우들의 개인기와 코믹적인 요소로 모두 대체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관건은 이제 소재의 기발함이 아니라, 배우들의 앙상블을 빚어 낼만한 신선한 아이디어와 배우 개개인의 역량일 텐데, 그마저도 단발적인 유머에 그칠 뿐 대체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특히 처음으로 코믹 영화의 원톱으로 나선 이나영의 ‘웃음 유발 명중률’이 대체적으로 낮다는 것이 많이 아쉽다. 새로운 장르를 대하는 이나영의 의지는 충분히 읽히지만, 코믹 연기라는 게 어디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것인가? (우는 연기보다 더 어려운 게, 사람 웃기는 재주라고 말하는 코미디언들의 이야기가 괜한 소리가 아니다.) 이나영은 수염을 붙이고, 짧은 가발을 쓰고 나름의 원맨쇼를 펼쳐 보이지만 그것이 유머러스하지 못할 뿐 아니라, 때때로 ‘손발이 오글거리는’ 순간을 안긴다. 예컨대, 가요무대에 오른 좋아하는 가수의 농익지 못한 ‘쌩 라이브’를 가슴 졸이며 보는 느낌이랄까.
극의 한 축을 이루는 지현과 준서의 러브스토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역시 이 영화의 패착이다. 영화가 유머에 전착하는 사이 두 사람의 갈등은 단순화 돼 버리고 마는데, 그 갈등마저도 충분한 설득력 없이 성급하게 해결되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극에 활기를 불어 넣는 건, 지현의 친구로 나오는 고교 동창생 영광역의 김흥수다. 바람기 많은 유부남이자 지현의 과거를 미끼로 실적을 올리려는 카 세일즈맨으로 등장하는 김흥수의 감칠맛 나는 연기와 질펀한 입담은 이 영화에서의 발견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렇다고,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에서 이나영의 중요성과 활약을 간과할 생각은 없다. 이나영의 연기 변신이 성공적으로 평가받든 아니든, 영화에서 꽃미남 의대생으로 분한 그녀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건 확실하니 말이다. 또한 영화의 흥행 성패와 관련 없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이나영 개인에게는 꽤나 의미 있는 영화로 기억될 여지도 커 보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비몽> 등에 출연하며 다소 우울한 이미지를 고수해 온 그녀에게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그녀의 연기 폭을 보다 넓히는 전환점이 될 지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이나영으로 인해 주목받고, 그녀로 인해 또 일부분 실망은 주지만, 신기하게도 그녀에게는 나쁘지 않을 영화로 기록 될 가능성이 큰, 참으로 특이한 영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는 이나영이란 배우가 그동안 쌓아 온 독특한 이미지 덕이라고 밖에 해석이 안 된다. 새삼, 그동안 그녀가 보여 온 행보와 그녀의 개성이 얼마나 독특한 위치에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 글_ 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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