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없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러 영화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오랜 시간을 투자한 복수라는 측면에서는 <올드보이>가, 증거를 없애 용의자가 풀려나도록 애쓰는 부분에선 <시크릿>이 생각났다. 뭐 장르영화라는 특성상 영화의 특정 부분을 잡고 다른 영화들을 거론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용서는 없다>는 이러한 경향이 더 많다. 스포일러 때문에 다른 부분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애석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상황에 동기만 살짝 바꾸어 반복 재생산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과학수사대 최고의 부검의 강민호(설경구) 교수. 딸과의 시간을 위해 일을 정리하던 중에 마지막 사건을 의뢰받는다. 금강에서 발견된 여섯 토막의 여자 시체를 부검하는 일. 여형사 민서영(한혜진)은 사건의 증거와 부검 결과를 토대로 환경운동가 이성호(류승범)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며 사건을 자백하는 이성호. 하지만 자백만 있을 뿐, 증거가 없다. 그러던 와중 강민호의 딸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성호는 강민호에게 자신을 무혐의로 풀어주면 딸을 살려주겠다며 거래를 한다. 위험을 무릎쓰고 이성호의 증거를 없애기 시작하는 강민호. 하지만 그 뒤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복수가 도사리고 있었다.
<용서는 없다>는 잊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복수극이다. 장르적인 기본 골격을 잘 따르며 전체 이야기를 구성했다. 하지만 누가 범인인지를 쫓는 수사물은 아니다. 영화는 초반부에 범인을 밝혀 사건을 일단락 짓는다. 이야기는 이면에 있다. 왜 범행을 저질렀나를 따라가며 범행의 동기를 밝힌다. 속속 드러나는 과거의 이야기는 부검의 강민호의 과거와 현재를 묘하게 오버랩 시킨다. 그리고 여기에 증거 은폐를 위한 강민호 교수의 음모와 두 인물의 아슬아슬한 심리전이 옵션으로 제공된다.
기존의 스릴러와는 다르게 형사나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과학수사에 대한 열기를 이어받아 주인공을 부검의로 설정했다. 덕분에 과학수사의 과정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따라가고 있으며, 한국영화에서는 흔히 보지 못했던 부검 장면도 세세하게 제공된다. 그리고 영화의 중요한 요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의 출발과 마무리는 부검의라는 신분과 역할 때문에 생긴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으리라. 스포일러이기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위해 모든 설정과 과정을 늘어놓는다. 물론 반전 자체는 매우 흥미롭지만,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결과를 정해놓고 이에 수반되는 원인과 과정을 만듦으로서 생긴 과부하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도입부는 새만금 반대와 친환경운동과 같은 사회적인 이슈를 소재로 삼는다. 하지만 이내 개인의 복수로 방향을 선회한다. 새만금 지역은 시체를 버리기 좋은 장소와 표면적인 살해 동기를 끌어오는 정도로만 쓰일 뿐이다. 본색을 드러낸 이야기는 추가적인 덧글이 계속 붙는 듯한 전개를 보인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플래쉬 백으로 과거를 보여주면서 이유를 덧댄다. 사소한 것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붙이는 탓에 후반부 전체는 하나의 해설집을 보는 듯 흥미가 떨어진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형준 감독은 자극적인 아이템을 얻었지만, 전체적인 균형에서는 합격점을 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상의 표현은 모르겠지만, 편집 과정을 통해 완성된 영화는 전체 구성과 흐름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남기지 못했다. 배우들 역시 2% 부족하다.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설경구와 류승범의 팽팽한 심리전은 기대보다 치밀하지 못하다.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는 설경구는 캐릭터 몰입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특유의 자유분방함 대신 냉정하고 침착한 살인마를 연기한 류승범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했다. 그나마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 한혜진은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여형사 역할을 특유의 성실함과 적극성으로 연기해 안정적인 스크린 신고식을 치뤘다.
<용서는 없다>는 용서와 복수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두 단어에 대한 확실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족이라는 필연적 관계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하지만 부검의라는 캐릭터와 복수라는 대의명분에 치중한 감정은 공감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별한 상황에 다다르고 만다. 독특한 아이디어는 영화에 적절한 설정을 깔아줬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까지 책임질 정도의 영향력은 없었다. 하지만 반전의 신선함은 인정할 만하다.
2009년 12월 30일 수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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