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로 잘 알려진 ‘셜록 홈즈’가 또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미 211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던 ‘셜록 홈즈’를 다시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더 이상 원작을 새롭게 해석할 것도, 캐릭터에 대한 다른 매력을 주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가이 리치는 최근 상한가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셜록 홈즈에 캐스팅하면서 새로운 영화로 만들었다. 빠른 두뇌 회전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기본 바탕은 같지만, 좀 더 자유로워지고 터프해졌다.
다섯 명의 여인들이 종교 의식의 제물로 받쳐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왓슨 박사(주드 로)는 마지막 희생자를 간발의 차로 구해낸다. 범인은 비밀 종교집단 소속의 블랙우드(마크 스트롱). 하지만 스스로 잡혀 교수형에 처하는 것까지도 계획의 일부라고 말하는 그는 보란 듯이 부활해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을 음모를 꾸민다. 홈즈와 왓슨은 다시 블랙우드에게 맞서지만, 주술과 과학을 잘 다루는 상대는 만만치 않다. 그러던 와중 과거에 헤어진 홈즈의 연인 아이린(레이철 맥아담스)이 등장해 사건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가까스로 블랙우드를 막아낸 홈즈와 왓슨. 하지만 그 뒤에는 더 큰 음모가 기다리고 있다.
굳이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을 직접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셜록 홈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추리 소설의 대표적인 주인공이며, 탐정이라는 직업을 보편화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CSI 과학수사대>나 <소년 탐정 김전일> <명탐정 코난> 등 많은 시리즈와 영화들이 ‘셜록 홈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심지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이나 프랑스의 ‘괴도 뤼팽’ 시리즈 역시 ‘셜록 홈즈’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인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셜록 홈즈의 팬들은 많다. 이번 리메이크는 단순히 또 한 편의 홈즈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홈즈 팬들로부터 합격점을 받는 과정이기도 했다.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는 우리에게 익숙한 홈즈와는 다른 모습이다. 섬세한 관찰과 명석한 두뇌로 사소한 증거만으로도 전후 상황을 꿰뚫어보는 천재적인 면모에 액션 히어로로서의 모습까지 더했다. 단지 머리만 쓰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날리고, 격투를 벌이는 ‘육식남’ 홈즈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이는 원작에 더욱 충실한 모습이다. 원작의 홈즈 역시 똑똑한 머리와 예술적 감각은 물론, 권투 선수 출신으로 곤봉과 검에도 능한 만능 무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영화는 액션 장면이 많다. 머리를 쓰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직접 몸을 날린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권투 클럽 장면도 마초적인 무술인 홈즈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봐오던 액션 히어로 영화를 답습하지는 않는다. 의문의 사건을 논리와 추리로 분석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홈즈와 왓슨의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특히 왓슨은 지적인 이미지에 격식을 차리고 절제를 아는 인물로 나와 자유분방한 천재 캐릭터인 홈즈와 대조를 이룬다. 원작의 왓슨은 엉터리 추리로 홈즈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캐릭터였지만, 영화에서는 조수보다 친구의 이미지가 더욱 부각된다. 친구 관계로서 두 사람은 긴박한 상황에서 멋진 호흡을 보이고, 옥신각신하며 유머 코드도 만들어낸다.
<셜록 홈즈>의 비주얼은 독특함을 지녔다. 특히 시대의 고증함과 함께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 미술이 인상적이다. 1891년의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고전적인 분위기와 현대의 감각이 어우러진 묘한 시대적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당시 미완성 상태였던 타워 브릿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긴장감이 넘치고, 배와 부두로 이어지는 액션 장면의 CG 역시 완성도가 높다. 여기에 템즈 강 주변과 리버풀, 맨체스터 강변 지대에서 촬영된 로케이션도 안정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액션의 비주얼도 남다르다. 어떤 액션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생각한 액션을 디테일하게 먼저 보여주는 방식으로, 고속과 정속을 오가는 표현이 박진감을 더한다.
<셜록 홈즈>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고전적인 캐릭터를 이용해 고전적인 배경에서 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풍긴다. 가이 리치 감독은 독특한 비주얼과 잘 구성된 이야기로 관객의 만족도를 충족시킨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 역시 유머와 액션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며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원작 ‘셜록 홈즈’에 근접하면서도 젊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로 완성됐다. 더욱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속편을 예고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게다가 속편에는 브래드 피트가 셜록 홈즈의 최대 적인 모리아티 교수로 출연할 예정이라니 벌써부터 기대 만발이다.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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