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데뷔한 지도 30년이 됐다. 그동안 스페인의 대표 감독으로, 강렬한 원색 표현으로, 다양한 성적 취향의 재기발랄함으로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왔던 그가 <브로큰 임브레이스>를 통해 지독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감독은 영화 속 영화들을 통해,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반짝반짝 빛났던 자신의 과거를 되새긴다. 배우와 감독의 사랑이라는 설정에서는 페넬로페 크루즈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엿볼 수 있다.
레나(페넬로페 크루즈)는 대재벌 어니스토(호세 루이스 고메즈)의 비서로 일하던 중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그의 정부가 된다. 하지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위해 감독 마테오(루이스 호마르)를 만나 오디션을 본다. 레나의 신선함에 매력을 느낀 마테오는 레나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지만, 정부인 어니스토는 레나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신경 쓰여 직접 제작자로 나선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마테오와 레나는 서로의 매력에 빠져들고 이를 눈치 챈 어니스토는 아들을 시켜 둘을 감시한다. 그럴수록 레나와 마테오의 비밀스러운 사랑은 더욱 강렬해지고, 결국 두 사람은 어니스토를 뒤로 하고 멀리 떠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어니스토는 레나를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레나와 마테오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이탈리아 여행>을 보고 있다. 이혼 위기의 여자가 폼페이 유적지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화석이 된 미라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영화를 보던 둘은 죽은 남녀와 같은 자세를 취한다. 서로를 꼭 끌어안는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제목처럼 ‘부서진 포옹’이 될 듯 불안하기만 하다. 사실 이 장면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오래 전에 본 사진 속에서 떠올린 장면이다. 해변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 안에 포옹하는 연인의 모습이 함께 담겨 있었다. 연인의 포옹하는 모습은 감독에게 영화적 영감을 줬고, <브로큰 임브레이스>로 이어졌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귀향> 등의 작품들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스릴러의 요소를 가미해 이런 영화들과는 그 궤를 달리 한다. 여성의 신체에 집착하지도 않고,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그대로 가져오지도 않는다. 평소 강렬한 색상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던 오프닝도 오디션을 보는 듯한 사실적이고 건조한 카메라 시점으로 바뀌었다. 또 원색의 사용도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줄었다. 하지만 영화 속 영화에서는 기존의 강한 원색을 그대로 살려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준다.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서로를 가지고 싶어 했던 세 사람의 어긋난 감정과 욕망을 다루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나 느낌을 슬그머니 드러낸다. 감독과 배우의 사랑은, 페넬로페 크루즈에 대한 감독의 남다른 애정의 표현이고, 영화감독 마테오가 시나리오 작가 해리 케인이라는 가공의 인물에서 다시 감독 마테오로 돌아오는 부분에서는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초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영화 속 영화인 <걸즈 앤 슈트케이스>가 감독의 대표작인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여러 제작 여건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브로큰 임브레이스>가 그저 감독 자신의 속내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영화에 그치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세 사람의 삐뚤어진 욕망과 저돌적인 욕구는 서로에게 다른 결말을 가져다준다. 사랑을 놓치고, 세상을 등지고, 눈을 잃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이렇게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 과거의 기억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걸스 앤 슈트케이스>의 재편집 장면에서 의미심장한 의미로 다가온다. 레나에겐 영화를 찍던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마테오는 해리 케인을 버리고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순간으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자신에게는 과거 전성기 시절, 그 현장에 있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과정이 된다.
2009년 11월 16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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