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연우(박병은)는 지구인 공무원 아내와 소통이 단절된 채 살고 있다. 무료한 일상에 지친 그는 우연히 자신과 교감이 가능한 세아(장소연)를 만나게 되고 이내 가까워진다. 연우의 아내 혜린(조시내)은 외계인을 감시하는 비밀정부요원이라는 사실을 남편에게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혜린은 자신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한실장(선우)에게서 첫 암살 지령을 받는다. 그러나 상대는 세아. 그 때부터 이들의 관계는 혼란에 빠진다.
여전히 안슬기 감독은 <지구에서 사는 법>에서도 가족을 통해 사람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다만 전작 <다섯은 너무 많아> <나의 노래는>의 가족은 부부로 바뀌었고, 일상적인 사건들은 비일상적인 사건들로 채워진다. 이를 토대로 감독은 극중 소통이란 문제를 다루면서 관객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연우와 혜린은 사랑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서로 소원해진 관계를 만회하기 위해 연우는 세아로부터 지구인들이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배우고, 혜린은 연우에게 대학원을 다니면서 무료한 삶을 탈피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너무나 멀어진 관계 때문에 소통을 위한 각자의 노력은 서로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의 관계를 보여주며 소통만이 관계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관객에게 전한다.
안슬기 감독의 영화가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는 선생이란 직업 때문이다. 그가 일부러 의도해서 찍은 것은 아니지만 세 작품은 모두 겨울이란 계절과 연관성을 이룬다. 주인공에게 닥친 갑작스런 가족 관계의 변화, 그리고 서로 다투며 힘들어하는 그들.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면 따뜻한 봄이 온다는 삶의 진리처럼 힘든 시간을 보낸 영화의 주인공들도 마지막엔 희망을 꿈꾼다. 그러므로 소통을 이루기 위해 서로 고군분투하는 연우와 혜린의 모습 자체가 희망이라 말할 수 있다.
<지구에서 사는 법>은 불륜을 다룬 여타 영화들과는 달리 소재의 특이성으로 차별화를 둔다. 서로 말을 하지 않고 텔레파시로 대화를 하는 외계인들, 옷을 입고 정신적인 교감으로 사랑을 나누는 행위, 외계인의 숨겨진 정체와 비밀정부요원의 암살 장면 등 SF요소를 첨가하며 영화의 형식적 새로움을 선보인다. 그러나 SF요소들은 극중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고 감정의 집중을 저해시킨다. 특히 혜린이 연우와 세아의 관계를 알아버린 순간부터 영화는 초반에 보여줬던 긴장감을 잃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시도는 좋았지만 SF요소가 극중 이야기와 자연스러운 합을 이루지 못한다.
글_ 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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