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하는 진주도, 꼴찌 하는 진주도 똑같은 학생이다. 역도하는 소영이도,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 철구도 불투명한 내일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평범한 고등학생 희수와 규리는 비혼모 친구와 친구의 아이와 함께 학교를 다니고 싶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동네 공터를 거니는 고등학생들도 무척이나 할 말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필리핀인 엄마를 둔 육상부 차은이는 계속해서 달리고 싶다. 이들 '1318'들은 말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데 현실이 이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시선 1318>은 이렇게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시선1318>은 네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다. 2002년 <여섯 개의 시선>으로 시작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이 옴니버스 프로젝트는 2005년 <다섯 개의 시선>과 2006년 <세번째 시선>으로 이어졌고, <별별 이야기> 시리즈라는 인권 애니메이션으로 진화됐다. 시선 시리즈는 그 동안 임순례, 박찬욱, 박광수, 박진표, 류승완, 장진, 김동원, 홍기선 등 중견 감독들과 노동석, 김곡-김선, 이미연 등 신인감독들이 고루 기용해 왔다. 청소년들의 인권에 시선을 집중한 <시선1318>은 <오로라 공주>의 방은진, <삼거리 극장>의 전계수, <시월애>의 이현승,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이 참여했다. 이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인권은 청소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하고 있다.
뮤지컬 형식을 도입한 방은진의 <진주는 공부중>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중학생 진주와 같은 반에서 꼴찌를 도맡아 온 또 다른 진주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입시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고통의 무게는 같은 듯 또 서로 다르다. 그렇지만 영화는 두 명의 민주 모두 꿈 많은 소녀라는 점은 같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방은진 감독은 이들에게 모두 애정이 담뿍 담긴 시선으로 격려를 보낸다. 그러나 발랄한 분위기의 TV 광고를 연상시키는 관습적인 뮤지컬 장면은 그다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어떠한 비전도, 현실에 대한 직시도 없이 입시 지옥에 처한 아이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의 무성의하고 안일한 위로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전계수 감독의 <유.앤.미>는 좀 더 차분하다. 역도 유망주 소영이나, 부모의 뜻에 따라 외국 유학 길에 올라야 하는 철구는 모두 자신의 꿈과는 다른 길로 가는 중이다. 어쩌면 이들은 자신들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부모의 혹은 누군가의 대리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중간에 이들이 바라보는 바다 앞에서 소방수를 대신해 말라버린 갯벌에 물을 주는 행위로 명징하게 상징된다. 전계수 감독은 이러한 상징 그대로 무미건조한 두 10대의 둘의 일상과 마주침을 담담한 어조로 그리고 있다. <삼거리 극장>의 경쾌함을 기대했다면 다소 의외지만 10대와의 시선을 일치했다는 면에서 <진주는 공부중>과 확연히 비교되는 작품이다.
가장 의아한 것은 <릴레이>다. 10대 비혼모의 인권을 색다른 시각에서 그리려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릴레이>는 마치 <제니, 주노> 풍의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초반부 소동극에서 언론 인터뷰를 빙자해 선생님들의 보수성과 권위를 까발리는 블랙 코미디를 거쳐, 결국 비혼모 친구를 감싸 안으려는 감동 사회극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장르의 종횡무진은 분명 주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방해하는 한편 감독이 얼마나 청소년의 인권에 대해 고민했을까 하는 진의 또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이 중 군계일학은 단연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다. 수다쟁이 윤성호 감독은 마치 랩 배틀을 벌이듯 경쟁적으로 고등학생들의 수다를 전시하고 나열한다. UCC나 몰카, 폐쇄회로 화면을 연상시키는 날 것의 화면 위로 실제 고등학생들의 가감 없는 수다가 펼쳐진다. 지난 대선을 배경으로 한 이 수다들은 다분히 정치적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기성세대의 눈으로 걸러진 포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솔직하고,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이 재기발랄하고 귀여운 청소년들의 실제 모습과 대면하고 나면 그간 우리의 10대, 청춘 영화들이 얼마나 장르적으로 혹은 기성세대의 눈으로 요리되고, 재단되어 왔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용 감독은 이 제각각의 장르와 소재에 달뜬 이 옴니버스 모음을 따스한 감성으로 마무리한다. 실제 정읍여중 육상부 학생인 전수영을 차은 역에 캐스팅한 이 성장, 가족 드라마는 네 작품의 어떤 기성, 아마추어 연기자들보다 더 진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김태용 감독은 부안이라는 공간적 배경아래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차은이가 그간 무시해 왔던 필리핀 엄마와 교감을 나누는 순간을 마법과 같이 그려낸다. 지방의 육상부 여학생 차은과 피부색이 다른 필리핀 엄마 사이의 또 다른 <가족의 탄생>. 호들갑스러운 장르적 관습의 도입이나 커다란 사건 없이 김태용 감독은 우리의 감정을 고스란히 차은의 가슴 한 가운데에 가져다 놓는 마법을 부린다. <달리는 차은>은 김태용 감독의 차기작을 학수고대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보석과 같은 소품이다.
옴니버스 영화이기에 <시선1318>은 어쩔 수없이 작품간의 격차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입시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봤던 10대들과 관련한 다양한 담론을 환기시킨다는 면에서 분명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더욱이 색깔은 확연히 다르지만 영화보기의 재미와 감동을 다시금 일깨우는 윤성호, 김태용 감독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이유만으로도 티켓 값을 지불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더불어 정유미, 성지루, 문성근, 오지혜 등 기성 배우들의 색다른 모습과 손은서, 박보영을 비롯한 신인들의 풋풋함을 동시에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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