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낸다. 시대의 변화와 풍파에 순응을 하거나 그것들에 저항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시대를 무시한 채 도를 닦거나.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은 암울한 시대일수록 더욱더 극명하게 표출된다.
그런데 여기, <모던보이>안의 이 남자는 시대 따윈 상관없어 보인다. 그래서 대한의 국민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힘들었을 일제 강점기라도 별 다른 맘고생 없이 잘 먹고 잘 입고, 결과적으로 잘 산다. 자신의 전부를 걸게 될 어떤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해명(박해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임에도 조선총독부 1급 서기관으로 일하며 상위 1%안의 부유한 생활을 하는 모던보이다. 좋은 차와 내다 팔면 목돈 제대로 될 것 같은 고가의 장신구들. 그리고 명랑한 1:9 신식 웨이브 헤어스타일로 치장한 미소에 뻑가며 안기는 아름다운 모던 걸들을 소유한 낭만의 화신. 이러한 모든 것을 가진 모던보이가 어느 날 절친한 일본인 검사 신스케(김남길)와 찾아간 모던 구락부에서 본 난실(김혜수)에게 빠져 버린다. 결국 비루한 거짓말과 찬란한 구애로 그녀를 얻지만, 안도하는 순간 그녀가 정성스레 싸준 도시락은 신념을 다한 폭탄으로 변신한다. 자신의 전부를 걸겠다 확신한 그녀는 이름이 열 개도 넘는 묘령의 여인이 되어 그의 모든 것을 가지고 사라지고. 해명은 난실을 미친 듯이 찾아다닌다. ‘니가 가져간 내 물건 다 내놔! 나쁜 기집애’ 이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했던 난실의 마음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서.
영화 <모던보이>는 1937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치욕스럽고 거침없이 암울했던 아픈 시대.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시대에 앵글을 맞추기 보다는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에, 그리고 시대도, 부모도, 자신도 다 던져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넘칠 만큼 안겨주는 사랑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전작 <해피엔드>와 <사랑니>에서 인물의 심리와 관계에 집중하며 세밀한 연출 감각을 선보였던 정지우 감독은 이번 <모던보이>에서 시대를 고증하고 묘사하는데 있어 자신의 섬세함을 영화 전반에 확장시킨다. 조선총독부와 미스코시 백화점, 숭례문과 지금의 서울역이 되어있는 경성역, 여기에 명동성당까지. 이렇게 당시 경성을 이루었던 주요한 장소들을 배우들의 의상과 소품, 음악, 그리고 그들의 실제 생활공간과 함께 버무려 놓아 영화제목에서 느껴지는 모던함을 영화전체에 주입시켰다.
그리고 다소 부족해 보이는 해명과 난실의 사랑, 해명과 신스케의 우정에 대한 디테일하고 끈끈한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을 대신해 ‘해명’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자아의 한 부분에 대부분을 집중한다. 이러한 집중과, 해명이 사랑을 이유로 변화하는 과정은 시대라는 것 따위는 전혀 상관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던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부딪히며 좌절하고, 그로 인해 더욱더 사랑에 애틋해져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시대의 조건이라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혀 무관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짊어지고 해명을 연기한 박해일의 연기는 영화에 대한 이해와 몰입을 하는데 있어서 적절할 만큼의 만족감을 안겨준다. 한번 본 여자에게 온 몸과 마음을 바치며 오직 한 가지 면에만 무모할 정도로 집착하는 해명의 모습은, 감정의 수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의 사랑이 애틋해 보이지 않을 수도, 혹은 ‘도대체 저 여자가 뭐 길래 저러는 건데?’라는 감정의 분산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종일관 점층적으로 고르게 유지되며 유쾌함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박해일의 감정 선은 그러한 초유의 사태를 막고 ‘이휴.. 뭔지 몰라도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라는 동정의 시선을 스크린으로 던져준다.
그리고 이러한 해명의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조난실로 분한 김혜수의 발군의 표현력이다. 솔직히 연기적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소의 눈물연기나, 과정에 있어서 해명에 대한 아픈 사랑을 표현하는데 분명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김혜수가 표현한 조난실은 달리 다른 여배우를 이입시키기 어려울 만큼 김혜수식 표현 방식에 깊이 박혀있고, 스크린을 꽉 채운 그녀의 농염한 춤과 노래는 순간을 흡입하기에 충분하다.
<모던보이>의 사랑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 방식과 비교하면 굉장히 무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사람은 있고, 그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한 꿈을 그린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리는 꿈은 어떤 이유나 목적도 수반되지 않는다. 이처럼 <모던보이>안의 해명과 난실도 함께 꿈을 꾼다. 그들의 꿈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다름과는 상관없는, 오직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 두고 살고 싶은 지극히 평범한 사랑의 소망이다. 하지만 시대를 떠안아야만 했던 어떤 이들에겐 평범한 이것이 가장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은 때론 자신에게, 때론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고 연민을 안기며, 더욱더 애틋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한다.
2008년 9월 29일 월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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