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지만 고풍스럽게 달리는 열차로 한 남자가 뛰어든다. 빠른 속도로 객실 안 승객을 위협하고 물건을 빼앗아가는 남자는 열차 도둑.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덤벼드는 자에게 권총을 쏜 후, 경쾌한 발걸음으로 범죄 현장에서 이탈한다. 만주벌판 사이에서 삼륜차를 타고 추격자에게서 벗어나며 이 이상한 남자는 꽤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일본군, 현상금 사냥꾼, 마적이 모두 그를 잡지 못해 안달인 것을 보면.
잔혹한 코미디(〈조용한 가족〉)으로 데뷔, 블랙코미디(〈반칙왕〉), 공포(〈장화, 홍련〉)를 거쳐 느와르(〈달콤한 인생〉)까지 만든 김지운 감독의 신작. 천만 관객을 주무르는 대형 흥행 감독은 아니지만 기복 없는 흥행감각과 웰메이드 영상감각을 갖춘 김지운 감독이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규모가 큰 영화를 스타군단을 끌고 와 만들자 예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제목조차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인 김지운의 신작은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을 기용해 찍은 무려 서부극 영화.
서부극의 틀을 빌린 선악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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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서부극. 오 년 전이었음 한국영화에서 가당키나 한 장르냐 냉정한 이성주의자들의 공분을 샀을 (한국영화의) 파격적인 장르 설정은, 용감하게도 한강을 배경으로 사람을 납치하는 괴물을 등장시킨 무려 괴물영화 〈괴물〉과 영화 외적인 논란으로 더 유명했던 무척 괴물스러운 영화 〈디 워〉의 성공으로 2008년 한국 관객에게 과거와 같은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더구나 짙은 상아색 코트를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좋은 놈(정우성)이 소총을 빙빙 돌리며 더 멋들어진 총격전을 펼치고, 아무래도 영화의 무대인 일제 시대 만주에는 있었을 것 같지 않은 세련된 검은 옷을 입은 나쁜 놈(이병헌)이 더 그 시대와는 안 맞는 (장안의 화제인 전스틴 진버레이크를 연상하게 하는) 넘긴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마적 떼를 지휘하며, 고구마 장수 복장을 절묘하게 소화하며 오랜만에 〈넘버3〉시절 코미디 말투를 구사하는 이상한 놈(송강호)을 차례로 박아놓은 경쾌한 예고편을 볼라치면 ‘서부극’이라는 소개는 저 멀리 사라지고 한 편의 화려한 액션 영화겠구나 싶은 기대가 들어버린다.
모뉴먼트 밸리에서 마카로니를 볶아 만주까지, 재구성된 판타지
등장인물의 이름과 외모가 노골적이니, 영화도 그럴까. 이놈은 독수리 오형제고 저놈은 베르크캇체이니 고생 끝에 변태 악당은 응징 당하고 상황종료, 에브리바디 해피엔딩, 뭐 그런 뻔한 결말. 문제는 〈좋은 놈, 나쁜 놈,〉 끝에 〈이상한 놈〉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제목은 한국에서 〈석양의 건맨〉(또는 〈(속)석양의 무법자〉)으로 알려진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 최종편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영문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유식하게도 멋들어진 의역 제목 뒤에 숨겨진 영어 제목을 찾아 단어 하나를 바꾼 후 부자연스러움을 각오하고 직역해 국문 제목을 만드는 유머감각. 강렬하지만 솔직히 좀 이상한 제목을 그렇게 만들었고 깐느 영화제에서 공개한 포스터는 〈석양의 건맨〉 오리지널 포스터와 더 흡사하니 이 유머감각의 결론은 〈놈놈놈〉은 ‘무법자 3부작’에서 받은 강력한 영향을 포스트 모더니즘스럽게도 전혀 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어진다. 당연히 세르지오 레오네가 시작한 ‘무법자 3부작’, 전설적인 마카로니 웨스턴의 모든 특징을 〈놈놈놈〉이 그대로 계승한다는 뜻이 되겠다.
자,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추리해 볼 때가 되었다. 영화의 정체는 만주를 배경으로 한국 배우를 기용해서 만든 변종 마카로니 웨스턴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단지 이 전제 만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마카로니 웨스턴이 무엇이냐. 모뉴먼트 밸리에서 존 웨인이 용감하고 모범적인 총잡이로 등장해 인디언과 악당을 쓸어버리던 정통 서부영화 전성기가 지났을 때, 이탈리아 감독이 스페인에서 찍은 서부영화 아니냐. 서부 유럽에다가 셋트를 만들고 “여기가 미국 서부”라고 사기를 치던 이탈리아 감독이 가증스러워 미국 평론가들이 ‘스파게티’(혹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폄하하던 장르가 아니냐.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극이 ‘정통’일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 만주에서 찍은 한국 영화가 스페인에서 찍은 이탈리아 영화처럼 마카로니 웨스턴인 것은 당연한 거다. 모로코에서 찍은 미국 SF 영화 〈스타워즈〉가 마카로니 웨스턴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처럼.
모두가 무법자, 마초 승부사의 만주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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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제목과 관련한 모든 것이 유머다. 제목에서 외모에서 캐스팅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나눠놓았지만 별다르게 좋은 놈과 나쁜 놈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이라 관객에게 호감을 주건 주인공의 상대편이라 관객에게 쾌감을 주건 준법에 관심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모두 같을 것이고, 도덕적으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모뉴먼트 밸리의 존 웨인이 진취적이고 용감한 모범적인 미국 시민이었던데 비해 ‘무법자’ 시리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근본적으로 영화 속 다른 자와 별다를 것이 없는 ‘무법자’였다. 다만 더 총을 잘 쐈고, 더 오래 살아남았으며, 더 멋지게 인상 쓸 줄 알았을 뿐이다. 살아남은 자의 조건은 〈놈놈놈〉에서도 똑같겠지.
멋들어진 화면과 경쾌한 리듬을 타고, 올 한국영화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인 〈놈놈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각 있는 솜씨로 다듬어 낸 마카로니 웨스턴을 볼 수 있는 지금, 무법자에 대한 기대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2008년 7월 3일 목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