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취재 차 외국에 나갔던 한 기자의 2002년 이야기. 외국에 나갔다가 준비한 옷이 세탁 중이었던 이 기자는 숙소에서 가까운 가게에 다녀오기 위해 영화사 홍보물 중에 섞여 있던 티셔츠를 입었다. 그런데 밖을 돌아다니던 그 짧은 순간에 한 정체불명 남자가 뒤를 밟더라는 것. 외국에서 두려워진 기자는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지만, 정체불명 남자 역시 빠른 속도로 따라오더란다. 순식간에 속도를 내 기자를 붙잡은 그 남자, 공포에 질린 기자에게 하는 말은 입고 있는 티셔츠를 자신에게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고. 별 신경 안쓰고 입었던 옷이 영화사에서 2001년 개봉한 〈소림축구〉 홍보용으로 만들었던 주성치의 유니폼이었기 때문.
주성치 님이 재림하셨다. 주성치 님의 신작 〈장강7호〉가 지난 1월 중국에서 개봉했고, 중국 관객은 흥행 1위라는 결과로 화답했다. 그 소식에 열광하는 한국 팬에게 〈장강7호〉는 놀라운 영화가 될 공산이 크다. 오랫동안 주성치 님의 팬이었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도학위룡〉에서 〈식신〉에 이르는 고강도 코미디와도 다르고, 규모를 키워 개봉해 주성치 블록버스터 최신 팬을 만들었던 〈소림축구〉〈쿵푸허슬〉과도 다른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장강7호> 기다리다 똥줄 탈듯, 주성치님 재림하시길 바라며 준비자세 함 취해봤다.
중국식 허풍으로 일가를 이루다
전성기 홍콩 영화계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다고 할 만한 스타가 둘 있다. 하나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아크로바틱 쿵푸 액션을 조합해 일가를 이룬 성룡이고, 다른 하나는 헐리웃 영화의 장르 키치적 장르 컨벤션을 화장실 개그와 조합해 중국식 허풍으로 마무리해 독보적인 코미디를 일군 주성치다. 둘의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고, 어떤 장르의 껍질을 씌우건 간에 각각 ‘성룡 영화’이며 ‘주성치 영화’다. 홍콩 영화 전성시대부터 현재까지 성룡은 자신의 스턴트 팀 ‘성가반’을 이끌며 여전히 ‘재키챈 무비’를 만들고 있고 주성치는 언제나 자신의 영화에서 얼굴을 보이는 ‘주성치 사단’과 함께 여전히 ‘주성치 코미디’를 만들고 있다.
홍콩 영화계가 신무협을 지나 홍콩 느와르로 아시아를 제패하던 시절, 오우삼이 주윤발을 앞세워 〈영웅본색〉〈첩혈쌍웅〉으로 한 껏 폼 잡는 사나이 액션을 완성할 때 주성치는 〈지존소자〉〈무명자〉와 같은 패러디로 자신의 코미디를 시작했다. 더러운 범죄와 심각한 음모가 위협적인 가운데 나선 주성치의 가벼움이 자신의 이름을 알린 시절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주성치의 이름을 알린 〈도협〉에서 유덕화와 함께 공연하고 홍콩 느와르가 도박판으로 확장하는 한복판에 위치를 잡는다. 헐리웃 도박 영화가 홍콩 신무협의 거창한 액션과 만나서 심각한 폼으로 완성된 〈도협〉은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주성치 만의 영화는 아니었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될 유덕화의 비중이 다른 누구보다 큰 시절, 주성치는 유덕화의 파트너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고 있었다. 주성치가 ‘주성치’에서 ‘주성치 님’이 된 것은 그 다음의 일. 파트너로 머물렀다면 그는 재능있는 배우, 한 시대를 기억하게 한 스타일 수 밖에 없었겠지만 히트작 〈도협〉에서 맡았던 자신의 캐릭터 ‘싱’을 주인공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주성치는 독자적인 팬을 거느린 ‘님’으로 거듭난다. 심각한 홍콩 느와르 도박 액션을 거창한 코미디로 바꾸어 버린 〈도성〉이 바로 그것. 헐리웃 갱스터 영화가 프랑스에서 퇴폐적인 매력을 가진 ‘필름 느와르’로 재해석되고 홍콩식 발레 안무 무협과 합쳐지며 거창한 ‘홍콩 느와르’로 발전할 때, 주성치는 이 중국식 거창함이 탁월한 코미디로 발전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후 자신이 속해 있던 홍콩 영화의 장르를 자기식 코미디로 소화한 〈도학위룡〉 시리즈를 지나 주성치는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다진다. 당시에 가장 각광 받는 장르 영화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오지만 거창한 중국식 개그와 슬랩스틱과 상황극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코미디로 비꼬는 솜씨는 이 당시 완성 단계에 이른다.
무차별 패러디로 진보하다
홍콩 영화가 힘을 잃어가던 1990년대, 주성치는 다시 한 번 도약한다. 자신이 소재로 삼는 대상을 홍콩 영화로 한정시키지 않은 것. 성룡 식 경쾌 형사물이나 홍콩 느와르를 차용한 후 코미디를 만들던 주성치는 〈007 북경특급〉〈홍콩 레옹〉〈홍콩 마스크〉〈파괴지왕〉〈희극지왕〉을 거치며 거침없는 패러디 솜씨를 보여준다. 물론 그 기반에서 뮤지컬과 화장실 개그를 주성치 식으로 변주한 코미디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주성치 골수 팬을 만들며 컬트적인 인기를 이어갔다. 이 시절 주성치 코미디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 〈서유기 선리기연〉과 〈서유기 월광보합〉으로 이어지는 주성치의 〈서유기〉 연작. 중국 고전 〈서유기〉에서 주인공을 가져왔지만, 원작을 아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뒤통수부터 후려치는 주성치 〈서유기〉 연작에서 주성치가 선보이는 무차별 코미디에 수많은 팬이 ‘주성치 님’을 추종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서서히 그리고 튼튼하게 자신의 영역을 쌓아가던 주성치가 또다시 도약을 하게 된 때는 2000년이 넘어서면서부터다. 이미 임계점에 이른 장르 패러디, 화장실 개그, 상황 코미디에 헐리웃 스타일의 특수효과를 더하기 시작한 것. 그 결과는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의 무서울 만큼 거창한 주성치 코미디를 낳았고, 주성치가 내내 추구한 중국식 허풍이 절묘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형상화되는 모습에 수많은 팬이 열광했다.
나이가 든 주성치, 가정을 생각하다?
그런 팬에게 〈장강7호〉는 이질적이다. 해가 갈수록 강도를 높여가던 주성치 스타일 개그의 강도가 한풀 꺾인 탓이다. 일용직 노무자로 등장하는 주성치가 여전히 사회 주변부 인물인 것은 그대로이지만 한 아이를 거느린 아버지로 변신한 까닭이다. 허풍 강하던 〈소림축구〉〈쿵푸허슬〉의 컴퓨터 특수효과가 마치 〈그렘린〉이나 스필버그가 제작했던 〈8번가의 기적〉처럼 귀엽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점점 과격하고 강렬하게 도약할 것 같았던 주성치 영화가 가족 영화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주성치는 1962년 생. 한국으로 치면 불혹을 훌쩍 넘겨 곧 쉰을 바라보는 나이다. 아이가 있었다면 〈장강7호〉보다 훨씬 장성했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는 미혼이고, 여전히 현역이다. 이 정도 나이에 가족영화를 생각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게다가 〈장강7호〉는 강도가 낮아졌지만 여전히 주성치 영화다. 아이를 체벌하기 위해 처음으로 든 도구가 각목이고, 아이와 가난한 집에서 발가락으로 바퀴벌레 잡는 놀이를 하며 생활의 디테일을 표현하는 여전한 주성치 영화다. 자신의 영화 〈쿵푸허슬〉을 패러디하고 헐리웃 영화 〈미션 임파서블〉을 패러디 하며, 스필버그의 〈E.T.〉와 디즈니 캐릭터를 믹스한 〈장강7호〉는 외계에서 데려온 익살스러운 주성치 영화다.
그래서 팬들은 ‘주성치 님의 신작’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2008년 3월 18일 화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