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공간은 무대가 되고 대화는 노래로 대신한다. 독창으로 시작해서 군무로 끝나는 <헤어스프레이>는 무대적 기교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명백한 뮤지컬 영화다. 시종일관 유쾌함을 달고 다니는 춤과 노래의 향연은 자본주의의 물결이 급속하게 시장을 장악하던 60년대 미국 TV쇼의 아메리칸 드림 위로 스텝을 밟는다. 게다가 매스미디어를 장악한 자본력이 노골적으로 활용되던 쇼프로그램의 단상 위를 가로지르는 건 인종 갈등과 세대의 변화다. 구닥다리같던 한 시대와 종언을 고하는 변화의 물결, 그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는 건, 바로 <헤어스프레이>다.
<헤어스프레이>는 시선을 가득 메우는 육중한 캐릭터를 앞세우며 상쾌한 활력를 분사한다. 마치 좌절 따윈 필요 없을 것 같은 무한 긍정 캐릭터 트레이시(니키 블론스키)는 <헤어스프레이>의 발랄한 근성을 구석구석 채워 넣는다. 누구도 결코 침을 뱉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해맑은 미소로 ‘굿모닝 볼티모어(Good Morning Baltimore)’를 열창하며 <헤어스프레이>의 기상과 함께 등장하는 트레이시는 비호감의 육중한 몸매마저 호감으로 역전시켜버린다. 특히나 비만지수와 유연성의 역학 관계 따윈 무시한듯한 화려한 댄스 실력은 깜찍한 캐릭터의 매력을 분사하고, 이는 헤어스프레이로 부풀린 트레이시의 머리마냥 <헤어스프레이>의 흥겨움을 부풀린다.
원작의 양기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현대에서 다시 재현된 <헤어스프레이>의 스크린판 무대는 지루한 인터미션(intermission) 따위는 불필요하다는 듯 군살 없는 플롯의 스텝을 뽐낸다. 트레이시를 원 톱으로 색색의 막대 사탕처럼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를 풍만하게 전시하고, 이야기 전개와 함께 충만 되는 활력의 에너지를 역동적인 댄스 플로어 무대 위에서 풀어헤친다. 그 와중에 피부색과 외모에 대한 차별을 타파하고자 하는 공익의 목적까지 발랄하게 거머쥔다.
물론 현실로부터 반 허공에 떠있는 듯, 거침없이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캐릭터들은 마치 환각제라도 반 병 들이킨 것처럼 종종 이질적이다. 또한 인종 차별과 외모 지상주의적 풍토를 너무나 쉽사리 헤쳐나가는 인물들의 긍정은 비현실적인 행보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헤어스프레이>는 그것이 환각의 상일지라도 마음껏 도취되고 싶은 충동감을 헤어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그것이 헤어스프레이로 잔뜩 부풀리고 경직된 머리결처럼 허상 같은 설레임이자 2시간여의 러닝타임에 귀속된 제한된 즐거움일지라도 그것을 차마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사실적 풍경의 무대 위를 활보하는 인형 같은 캐릭터들의 열연은 관람의 묘미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참신하면서도 세련된 무대적 연출을 통해 마이너리티의 메인스트림 성공담을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의 즐거움. 그리고 이미 학습된 장르적 표현 방식과 순행적인 이야기 패턴의 평이함을 특별한 쾌감으로 상승시키는 캐릭터의 매력, 그 부인할 수 없는 긍정의 힘이야말로 <헤어스프레이>를 부풀어오르게 하는 쾌감의 분사 지점일 것이다. 물론 신구 조화가 맞아떨어지는 배우들의 조합은 그야말로 백미다.
2007년 12월 6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