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하나 있다. 그런데 그 방에 들어간 투숙객은 하나같이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것도 1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95년동안 56명의 투숙객을 객사(客死)시켰다는 돌핀 호텔의 1408호는 금기의 방이 됐다. 그런데 이 방에 묵겠다는 이가 있다. 오컬트 문학계의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크 엔슬린(존 쿠삭)은 방을 줄 수 없다는 호텔 매니저 올린(사무엘 L. 잭슨)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코 1408호에 체크 인을 한다.
사실 엔슬린이 1408호에 들어가기 전까지 <1408>은 어떤 두려움의 징조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에게 ‘1408호에 들어가지 마시오(Don’t enter 1408!).’란 도발적인 경고장이 날아오는 순간조차 감지되는 건 그것이 일종의 초대장이 될 것이란 예감뿐이다. 하지만 엔슬린이 1408호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치 들어서지 말아야 할 곳을 들어선 엔슬린처럼 관객 또한 방금 전과 전혀 다른 상황에 들어서게 된다.
<1408>은 초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의 본성 깊숙이 자리잡은 천연적인 공포를 끌어낸다. 방에 갇힌 채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엔슬린은 기묘한 체험을 거듭하며 심리적인 패닉 상태로 빠져들어간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엔슬린을 통해 자라나는 공포는 관객석까지 전이되는 느낌이다. <1408>의 공포가 주목할만한 건 물리적인 타격이 없음에도 피하고 싶은 심리적 반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건 <1408>이 구체적인 존재감에서 비롯되는 공포 대신 공간의 징후적 기운을 통해 실체가 없는 공포를 발산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 실체를 구현하고 점층적으로 키워나가는 건 바로 인물로부터다. 마치 메아리로 돌아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인물의 내부에서 확장된 공포가 환각과도 같은 초현실성과 맞물리며 공포를 더욱 배가시킨다. 또한 공간적 폐쇄성으로 인한 심리적 두려움과 인물의 과거에서 비롯되는 착란 기질을 적절히 융해하며 비현실적인 현상을 설득력 있는 서스펜스로 응집시킨다.
마치 <오멘>이나 <엑소시스트>같은 오컬트 성향의 초자연 공포물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1408>은 종교적 색채가 배제된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차별적이다. 한편으론 밀폐된 공간의 초현실적 체험이란 점에서 TV시리즈를 옴니버스 영화로 만든 83년 작 <환상특급> 중, 죠 단테 감독의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또한 호텔이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는 점은 <샤이닝>과도 유사하다. 또한 존 쿠삭의 빼어난 연기는 <아이덴티티>를 기억나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1408>은 위에서 언급한 어느 작품들보다도 독창적이다. 날카로운 칼 끝을 들이밀거나 징그러운 형체로 겁주지 않아도 공포는 성립된다. <1408>은 원초적인 사악함으로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능숙하게 다룬다. 물론 그 영리하고도 신비로운 체험은 간접적으로 충분하다.
2007년 7월 20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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