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다 할 수 있었던 브루스-물론 그로 인해 역시 무언가를 해야하지만-에 비해 에반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자신의 능력에 따른 무한한 책임 수행을 깨닫는 브루스와 달리 에반은 자신의 소망을 기도한 대가로 그것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한 계시에 따르고 예언을 수행해야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신(모건 프리만)은 그에게 미션을 안긴다. 이번 미션은 창세기 6장 14절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를 재현하는 것이다.
<브루스 올마이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짐 캐리의 애드립이 스크류됐고, 그 웃음은 충분히 먹힐만한 제구력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특별함은 웃음만이 아니었다. 신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그 특별한 관계 설정을 재치 있게 묘사하며 그를 통해 체험적 교훈을 간접 체득시켜주는 이야기적 기발함이다. –더불어 신을 흑인으로 설정해주는 센스!- <에반 올마이티>는 전작의 기본적인 설정을 고스란히 계승한다. 기도를 통한 인간의 소망을 신이 전지전능(almighty)으로 답변한다는 유사점은 <에반 올마이티>의 창세기 첫 줄에 해당한다. 하지만 두 영화는 각각 권리와 의무라는 책임의 대비를 통해 각기 다른 권위적 재미를 부여한다. 전자가 인생을 개편하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에서 권능을 탐한다면 후자는 세계를 개편하고 싶다는–change the world!- 공익적 소망이 권능을 부른다.
일단 짐 캐리 대신 시리즈의 바통을 이어받은 스티브 카렐의 연기는 안정감이 있지만 전편의 애드립성 웃음은 약화됐고, 그를 커버하기 위해 캐릭터를 우스운 모습으로 치장시켜야 한다. 또한 1억 7천만불의 제작비를 자랑하는 블록버스터 코미디는 직접 방주를 제작하는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브루스 올마이티>가 아기자기한 상상력과 짐 캐리의 쌩얼 웃음이 앙상블을 이루며 웃음과 교훈의 절묘한 조화를 꾀했던 사실과 비교했을 때 가격 대비 실속은 약해졌다. 전작에 비해 <에반 올마이티>는 소재의 독특함과 별개로 이야기는 전형적이며 캐릭터도 평면적이다.-게다가 스티브 카렐의 슬랩스틱은 짐 캐리의 그것과 비교하기 어렵다.- 또한 공익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만큼 상투적인 권선징악의 결말도 밋밋함을 느끼게 한다. 가장 큰 아쉬움은 전작에 비해 후속작이 성인 취향에서 유아 취향에 가까워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황당하다 말할 수 있는 비현실적 이야기가 환경 친화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도덕적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적당한 웃음의 수위나 평범한 가족 영화적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면 <에반 올마이티>는 무난한 권능을 부여할만하다. <에반 올마이티>는 상식적인 특별함과 비상식적인 평범함의 사이를 표류한다. 권능을 통해 교훈은 부여하지만 만족을 보장할 수 없는 <에반 올마이티>는 기대감의 적정선을 요구하는 영화다.
2007년 7월 10일 화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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