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의 연기에 대해 말들이 많다. 저 멀리 중국 대륙에까지 그 기개를 떨친 김희선 그리고 고소영 낭자의 국어낭독 신공에 필적할 만한 출중한 낭독으로 화려하게 은막을 장식하며 데뷔했다는 게 요지다. 물론, 그녀의 연기 공력이 일천한 건 사실이다. 허나...
<중천>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보는 이의 가슴을 동하게 한 인물이 있었던가? 아쉽지만 없었음이다. 감독의 연출력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각본 역시 이에 한몫했다. 현실 저 너머의 상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무협액션대작인 <중천>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비극적 로맨스’다. 관객의 심금을 울리며 <중천>의 최대 관건이 될 두 배우의 면면을 헤아려볼 때 분명 위험천만한 시도이다. 영화의 각본은 결국,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숱한 이들의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등장인물들의 기구한 사연을 전하며 풀어가는 서사방식은 물론이고 이들이 토해 내는 대사들은 마르고 닳도록 들어온 진부한 썰 그 자체다. 다시 말해, 처연한 사랑의 운명을 짊어진 소화(김태희)와 이곽(정우성) 그리고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동지에서 적대적 관계로 돌변한 반추(허준호)와 이곽, 이들이 각각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소꿉놀이와 전쟁놀이를 소재로 삼은 아동용 소설책에서 흘러나온 그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 간단명료하다. 인물의 감정 및 심리변화의 파고가 당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중천>의 캐릭터가 생기 없고 평면적 인물로 와 닿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곧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반감 시키는 결정적 패착으로 기능한다. 물론, 죽은 자가 잠시 머문다는 ‘중천’이라는 상상적 공간을 채운 고풍스럽고 환상적인 미술과 3만 명의 원귀와 일당백의 정신으로 맞장을 뜬 이곽의 전투신 등은 빼어나다. 허나, 시선을 붙잡는 볼거리는 꽤 되지만 가슴을 뒤흔드는 아련한 정서와 긴장감이 앙상하기 짝이 없는 영화의 말로는 공허한 비주얼의 전시장으로 귀결될 뿐이다. 기왕의 한중합작 무협물이 그랬듯 <중천>의 야심찬 시도는 또 반쪽의 성취에 그친 것이다. 주최측에겐 이 점이 딜레마이자 난제인 건 안다만, 언제까지 그림은 좋고 이야기와 캐릭터는 부실하다는 똑같은 꼴의 이야기를 답습해야 할지 난감하다. 차라리 '화면 때깔은 촌빨의 극치!지만 이야기의 밀도는 끝장!'이라는 정반대의 입장을 지닌 영화를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국제적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들 영화를 바라보자면 영화안팎의 기술적, 산업적 성과는 일정 부분 진화와 발전을 이뤘다 볼 수 있지만, 진정 서로가 도모해 길어 올려야 할 중차대한 요건인 ‘영화적 상상력’은 여전히 빈곤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덧붙여...
이런 영화를 볼때마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2001)>가 참 잘 만든 영화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다. 참고로 당 영화의 조동오 감독은 <무사>의 조연출을 맡았었다.
2006년 12월 20일 수요일 | 글: 서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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