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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에피소드를 보시고 아래 사진을 한 번 볼라치면,
오타쿠다 !!
오해를 살까 봐 미리 짚어두는데, 반드시 나쁜 뜻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다. 한 분야에 무척 강한 집중력을 보이는 마니아 계층을 뜻하는 일본어. 비슷한 뜻의 마니아와는 이제 구별이 되는 단어가 되어서 옥스포드 영어사전에도 신조어로 실렸다고 한다. 보통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혹은 게임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경우 ‘오타쿠’가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여기선 매우 흡사한 외모를 가진 경우라 선택했다고 해 두자 …
그럴 리가 있나!
영화와 함께 자라난 소년
사진의 얼굴은 1964년에 멕시코에서 태어난 한 남자다. 어려서부터 만화와 판타지, 무엇보다 영화를 좋아했던 소년은 〈엑소시스트〉로 유명한 딕 스미스에게서 특수분장과 특수효과를 배우며 영화 일을 시작했다. 몇 편의 단편영화와 멕시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경력을 쌓던 남자의 마음 속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사람의 반생도 되지 않는 삶을 표피적으로 읽고 판단하는 일이 무척이나 엉터리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자면, 어린 시절부터 그가 푹 빠져있었던 만화와 판타지, 기괴한 환상을 영화 화면에 옮기고 싶은 욕망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욕망한 키치 문화의 잔상을 직접 만들어내려는 집념. 이 사람, 기예르모 델 토로가 외모 이상으로 ‘오타쿠’에게 인정받을 만한 다른 이유다.
데뷔작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장편영화 데뷔작 〈크로노스〉에서 델 토로 감독은 한 연금술사에 의해 세상에 나타난 〈크로노스〉라는 장치를 등장시킨다.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 도구를 완성한 연금술사가, 어느 날 흉측한 시체 만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옛 이야기로 시작하는 〈크로노스〉는 단숨에 손자와 함께 작은 골동품상을 운영하는 노인에게 점프한다. 당연하게도 이야기는 〈크로노스〉가 단순히 전설이 아니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더욱 당연하게도 괴상한 도구 〈크로노스〉는 골동품상 한 구석에 숨어있다. 고서적을 통해 〈크로노스〉의 존재를 알게 된 사악한 거부가 골동품상을 노리면서 이야기는 위기로 발전한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다고? 이렇게 닳고닳은 이야기는 성룡이 〈메달리온〉에서 써먹고, 그전에는 〈툼레이더〉시리즈나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에서 질리도록 써 먹은 이야기가 아니냐고? 사실 그렇다. 그리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전설의 유물이 신비한 효능을 가지고 있고, 주인공은 우연히 그 물건과 인연이 있으며, 악당은 비열한 수를 이용해 유물을 노리는 이야기를 기예르모 델 토로가 〈크로노스〉를 통해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공포물을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델 토로 감독의 다른 작품이 그런 것처럼 〈그로노스〉 역시 공포영화 장르로 구속하기엔 지나치게 무섭지 않다. 오히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은 익숙한 이야기의 변주에 가까웠다. 멕시코에서 이른 나이에 영화를 시작해 경력을 쌓으며 영화를 만든 델 토로 감독은 기본적으로 상업영화를 만들 줄 아는 장인으로 성장했다. 다소 익숙할지라도 여러 관객이 쉽게 즐기는 이야기, 많은 유능한 상업영화 감독이 그런 것처럼, 기예르모 델 토로도 자위적인 플롯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감독이었다.
대신 그리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은 멕시코 영화에 빼어난 화면을 선사했다. 때때로 유머를 구사하며 화려한 색감을 깊은 명암으로 구사하는 〈크로노스〉의 화면은 익숙하지만 무척 잘 어울리는 이야기와 만나 세계 영화 팬들에게 소개되었고, 멕시코 영화계는 무려 아홉 개에 이르는 멕시코 아카데미 상으로 감독의 데뷔작을 인정했다.
소년, 기괴함을 사랑하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고집하지 않는 감독이었고, 음산하지만 화려한 화면을 구사할 줄 아는 잘 훈련된 감독이었기 때문에, 기예르모 델 토로는 곧 헐리웃의 초청을 받았다. 헐리웃이 맡긴 작품은 헐리웃에서 무명에 가까운 감독들이 흔히 연출하곤 하는 B급 공포물이었고, 우리는 주연 여배우를 맡았던 미라 소르비노로 기억하고 있는 〈미믹〉이었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걸작이라 부르기는 많이 부족한 〈미믹〉은, 헐리웃에 갓 입성한 신인 감독이 부족한 예산과 제작자의 입김 속에서 만들었다는 전제를 깔아두면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의 영화다. 뻔한 이야기 전개야 그 바닥 영화의 생리라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델 토로 감독이 공을 들였음이 분명한 괴물의 분장은 단연 압권이었다. 특수분장과 특수효과로 영화계에 입문한 만큼 독창적인 분장은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의 서명과 같다. 제임스 카메론 영화의 특수효과나 얀 드봉 영화의 촬영처럼, 델 토로 영화의 색깔 중 하나는 독특한 이미지의 특수조형이다.
단순히 특수분장을 공부했다는 것만으로 독특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독특한 상상력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데뷔작인 〈크로노스〉에서 모든 사건의 근원이었던 연금술사의 괴상한 기계 〈크로노스〉는 황금색 풍뎅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정한 동작을 하면 가시가 튀어나와 사람의 피 속에 어떤 물질을 집어넣고, 사람은 점점 흡혈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느끼며 젊어진다. 얌전한 모양에서 가시가 드러나며 기괴한 모습으로 확장하는 〈크로노스〉의 곤충풍 디자인은, 헐리웃 데뷔작 〈미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하에서 서식하며 사람과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한 괴생명체 〈미믹〉에 가깝게 접근하면, 반으로 갈라지며 실제의 모습을 드러내는 영화 〈미믹〉 최고의 장면이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 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로 보였다가 반으로 갈라지며 징그러운 실체를 드러내는 델 토로 식 디자인은 헐리웃에서 맡은 두번째 작품 〈블레이드2〉에서 이어 받는다.
햇볕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데이워커 블레이드를 제거하기 위해 흡혈귀 계에서 조직한 특수부대가 강력한 변종 흡혈귀 리퍼를 상대하기 위해 적이었던 블레이드와 결합한다는 〈블레이드2〉의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진정한 적인 리퍼의 디자인에 델 토로 감독의 서명이 진하게 새겨져 있다. 마늘도 은총알도 통하지 않는 변종 흡혈귀 리퍼는 왜소하고 대머리에 창백한 피부를 지니고 있어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긴 손톱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리퍼의 디자인은 〈블레이드〉식이라기 보다는 〈노스페라투〉에 가깝다. 그러나 리퍼와 상대를 하기 시작해서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이 괴물은 〈노스페라투〉의 창백한 대머리와는 족보가 다른 흡혈귀라는 것을 알게 된다. 턱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기괴한 모양으로 공격을 하는 리퍼의 모습은 〈크로노스〉〈미믹〉에서 이어지는 공포의 절지동물 자체다.
소년, 쓸쓸함에 대하여
대부분의 필모그래피를 거칠게 정리하면 ‘공포영화’라는 장르로 구분하기 쉬운 델 토로의 영화는 사실, 무서운 구석이 별로 없다. 가장 장르 공포물에 가까운 〈미믹〉만 해도 몇 몇 장면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공포물의 방식으로 관객을 놀래키거나 심장 떨게 만드는 장면이 없고, 다른 작품도 공포영화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공포물의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미묘한 장르의 경계선에서 영화를 만드는 대신에 기예르모 델 토로는 영화에 쓸쓸함을 남겨 놓는다. 주류에 끼지 못해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쓸쓸함, 좌절하고 어느 순간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델 토로 영화마다 남아 있는 독특한 감수성은 장르 사이를 유영하는 영화를 독특한 경지로 발전시킨다. 피 칠갑으로 두 시간을 싸우던 〈블레이드2〉는 마지막 순간, 버림받은 기형아의 슬픔으로 반전되고 반복해서 나타나며 한 번쯤 끔찍한 공포를 만든 〈악마의 등뼈〉는 홀로 돌아다닐 수 밖에 없는 소년의 외로움으로 돌아선다. 지구를 위해 싸우고 있지만 사실 〈헬보이〉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소년=보이일 뿐이다.
소년, 고향으로 돌아오다
독특한 비전을 영화로 만드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을 헐리웃에서의 성과로 판단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 수도 있겠다. 첫 헐리웃 작품 〈미믹〉을 맡았을 때 기예르모 델 토로는 멕시코에서 재능을 보려고 데려온 신인에 지나지 않았고, 많은 거장들이 헐리웃 첫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제약 아래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가 〈하드타겟〉으로 헐리웃에서의 오우삼을 판단하지 않고 〈이쉬타르〉로 헐리웃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를 판단할 수 없으며 〈캐논볼〉을 성룡의 헐리웃 데뷔작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미믹〉도 델 토로에게는 그런 영화일 수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의 원형을 보기 위해서는 멕시코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데뷔작으로 홈런을 친 〈크로노스〉이후, 헐리웃에서 데려오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든 독창적인 이미지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장편 데뷔작 〈크로노스〉가 1993년 작품이고 헐리웃에서 만든 작품의 수가 멕시코에서 연출한 영화보다 많기 때문에 이번에 영화관에 걸리는 〈판의 미로〉를 제외하면 볼 수 있는 영화는 〈악마의 등뼈〉 하나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악마의 등뼈〉는, 전형적인 공포물의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다. 제목인 〈악마의 등뼈〉는 영화의 무대가 되는 고아 학교에서 수입원으로 만들어 파는 약물의 별명. 영화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전쟁 고아들이 모여 사는 기숙학교를 무대로 한 고아소년을 쫓아간다. 부모를 잃고 기숙학교에 도착한 소년 카를로스는 다른 소년들이 ‘통곡하는 자’라고 부르는 유령을 만나게 되고, 이 유령 뒤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야기만 보면 마치 〈서스피리아〉의 소년 버전을 연상하게 하는 〈악마의 등뼈〉는 델 토로의 다른 영화처럼 무척이나 쓸쓸한 영화다.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 주변이 그렇거니와, 내전의 희생자들인 인물이 그렇기도 하고, 드러나는 비밀이 그렇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박혀있는 불발된 폭탄과 머리에 있는 상처로 연기처럼 피를 뿜고 있는 유령의 처연한 모습이 더욱 그렇다. 압도적인 비주얼로 쓸쓸함을 상기시키는 〈악마의 등뼈〉를 보통 기예르모 델 토로 최고의 작품으로 뽑는 이유를, 유령을 마주하는 순간쯤 되면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다시 헐리웃에서 신작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의 세번째 멕시코 영화 〈판의 미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쟁을 배경으로 부대 저택으로 이사한 군인의 딸 오필리아가 주인공인 〈판의 미로〉는, 기괴한 모습의 요정 판이 오필리아에게 접근하면서 환상과 음침한 쓸쓸함으로 발전하는 이야기다. 현실과 환상, 아이와 초자연적 존재가 마주하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독특한 이미지는 〈크로노스〉〈악마의 등뼈〉에 이어 〈판의 미로〉를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재능 있는 영화 감독이 가장 자신 있는 이야기로 돌아온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