샅바에서 ‘샅’은 남성의 거시기를 상징한다. 즉, 종족의 왕성한 번식을 뜻하는 정력을 말한다. 옛날에는 천하장사의 샅바를 아낙네들이 조각조각 찢어 나눠 몸에 지니고 다녔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오동구는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씨름판에 뛰어들어 결국에는 천하장사가 된다.
이해영, 이해준 감독의 <천하장사 마돈나>는 제목에서부터 아이러니하다. 천하장사는 남성미의 정점을 상징하고 마돈나는 여성해방을 한답시고 란제리를 입고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주인공 오동구는 그 사이에서 남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일상에서의 조화와 균형을 찾고자한다. 씨름이 힘의 스포츠가 아니고 균형과 조화의 경기이듯 말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다룬 퀴어영화로 일단은 읽힌다. 하지만 영화는 동구의 일상 안에 다분히 모험적인 시도들을 하고 있다. 스포츠영화의 짜릿한 쾌감은 대중영화의 재미를 보강하고 씨름부원들의 개성은 동구의 남다름을 결코 모나지 않은 차이로 받아들이게 한다. 특히 몸은 천하장사고 마음은 마돈나인 동구의 그 다름은 막연하게 미래를 생각하는 친구들 속에서 빛을 발해, 감동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영화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동구의 성장을 바라본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의 바람은 성적 소수자의 인권문제로 직결되기보다 계급의 문제로 치환된다. 가족 속에서의 동구는 집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야 할 처지다. 아버지는 강제 퇴직한 노동자다. 노동자와 기업주의 계급적 갈등은 집 안에서 똑같이 되풀이된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는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동구는 죄의식에 휩싸인다. 아버지의 포크레인이 동구의 생명을 위협하는 거대생명체로 묘사된 것은 의도된 설정이긴 하나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정체성이 세습되고 있고 강요되고 있음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차이가 곧 계급의 상하관계로 부당하게 사회에 적용된다고 씨름복을 입은 동구의 반 누드는 항변하고 있음이다.
남성으로 사는 것과 여성으로 사는 것. 영화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 끝까지 동구의 선택을 존중한다. 정형화되지 않은 캐릭터들과 사건의 전개가 이뤄놓은 대중적인 재미가 관계의 성찰로 인해 상쇄될 위기에 처하는 듯싶었으나, 객관성과 따뜻함 사이에서 두 감독은 상당한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적절하게 안배된 영화의 빈틈은 만듦새의 허술함으로 읽히기보다 동구의 육중한 몸에 우리 자신을 대입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비주류의 성향이 대중성과 조우했을 때 얻게 되는 이 발랄한 에너지는 <천하장사 마돈나>가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대안적인 대중영화임을 증명할 것이다.
글_ 2006년 8월 16일 수요일 | 최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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