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현실로 야기된 탈북자 문제와 그에 따른 사회적 편견이라는 예민한 소재를 떠나서 <국경의 남쪽>은 차승원의 첫 번째 멜로에 방점을 찍고 처음부터 끝까지 멜로의 감정선을 따라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넘어온 선호에게 탈북의 의미는 이념과 사상 그리고 삶의 방식을 뒤바꾸는 복잡한 알레고리가 아니라 가족은 함께 있어야 가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의 탈북이다. 따라서 그가 연인 연화(조이진 분)에게 동반 탈북을 강요하는 장면에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오는 긴장감보다 혹시라도 연인과 영영 이별할 것만 같은데서 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안판석 감독은 동치미 국물처럼 시원시원한 성격의 연화와 순수한 순진청년 선호의 사랑을 영화의 가장 앞에 내세워 민감한 소재에서 오는 중압감을 가볍게 떨쳐버리는 영악함을 보인다.
<국경의 남쪽>은 신파멜로의 전형적인 틀 안에서 자잘한 에피소드 대신 선호와 연화의 만남과 이별을 굵직굵직하게 따라가고 있다. 섬세하게 삶을 직조하듯 선호 가족의 남한 적응기를 묘사하다 보면 사회적 알레고리는 본의 아니게 덩치가 비대해져 ‘멜로’를 후자로 만들 공산이 크다. 이 말은 결국, 영화가 선택한 연출 스타일과 편집방식은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말로 치환될 수 있다. 그러나 ‘차승원의 첫 번째 멜로’라는 저 자신감 넘치는 카피는 관객에게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배우 차승원이 가지는 고유한 브랜드네임 퀄리티는 멜로의 선택에 있어서도 일정 부분 차별화를 선언하고 있고 이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되돌아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코미디에서 복잡한 심리가 교차하는 스릴러 장르로 영역을 확대한 차승원의 선택은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치를 뽑아내며 대중과의 돈독한 신뢰감을 쌓아가는 길이었다. ‘차승원의 첫 번째 멜로’ 이 말은 차승원이 선택한 첫 번째 멜로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대중의 암묵적인 동의를 이끌어내는 영리한 문구임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과 북이 아직도 정치적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사랑의 파노라마는 그 시작부터 기존의 트렌드 멜로의 답습을 과감히 밀쳐내고 있음이다. 그러나 국경을 분기점으로 해서 정반대의 삶을 걸어가는 한 탈북자 청년의 고단한 일상 위에 사랑의 애달픔이 적절히 수반되어졌는가는 사실 의문이다.
북한에서 나름대로 상류층의 삶을 살던 선호와 연화가 그 모든 특권을 버리고 남한으로 탈북한 이유는 가족과 사랑 때문이다. 이 단순 명쾌한 이유를 근거로 영화는 그들의 남한정착기를 시종일관 당연하단 식으로 뒷전으로 밀어 놓고 오직 멜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차승원식 멜로가 억지로 꾸미지 않는 진솔함이 무기라 해도 또는 그들도 다르지 않다는 편견타파주의 시선으로 감독이 그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더라도 선호와 연화, 그들이 선택한 만남과 이별은 국경을 넘었는가? 넘지 않았는가라는 단선적인 사실에서부터 오는 이별과 사랑의 아픔이란 데는 변함이 없다. 더불어 차승원이 선택한 멜로라도 강한 북한사투리 억양은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들이 처한 현실이 분단문제에서 파생된 비극이란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인지하게끔 만든다.
감정의 큰 변화에 기대, 탈북자 청년의 남한정착기를 단순히 멜로 장르의 범주 속에서 이해하기에 영화는 너무 많은 여백을 남겼고 그 여백은 미처 채우지 못한 빈틈과 같아 루즈하기까지 하다. 영화의 전체적인 기조가 멜로에 있어 지금의 영화 스타일이 최선이었다 치더라도 좀 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은 연출방식은 너무 ‘쉽게’ 다른 멜로를 선택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차별화를 선언한 차승원의 첫 번째 멜로영화가 무엇이 다르며 어떤 감동과 이미지를 남겼는가는 보는 이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선 아쉽기 그지없다. 다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차승원의 선택이자 멜로영화임을 암시하는 영화 카피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관객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을 저절로 갖게끔 만들어주고 있음은 확실하다.
사진: 권영탕 기자
| |||||
| |||||
|